[메아리] '괴담 전쟁'의 이면

정진황 2023. 7. 12. 18: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도로 곳곳을 장악한 괴담 현수막
양평고속도 특혜 의혹마저 괴담?
분별력 시험하는 용어전쟁 양상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도로변 곳곳에 눈을 어지럽히는 현수막이 난무한다. 온통 괴담이다. ‘민주당에게 괴담은 필살기’ ‘광우병, 사드, 천안함 괴담, 다음은?’ 등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논란이 불붙으면서 국민의힘은 괴담과의 전쟁 중이다. 정치 영역에 들어선 순간 과학적 접근은 설 자리가 흔들린다. 안전성을 둘러싸고 과학자들끼리도 편이 갈리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중립성마저 도전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괴담과 의혹 사이 어딘가에서 진실이 몸부림치고 있는 인상이다.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드리워진 ‘신의 손’ 의혹은 어떤가. 야당은 ‘김건희 로드’ ‘고속도로 게이트’로 벌써 현수막을 깔았다. 사실관계가 제대로 드러나기도 전에 국정조사, 특검을 입에 올리고 있다. 조만간 고발도 이어질 게 눈에 선하다. 애초 양서면을 종점으로 한 고속도로 원안이 변경돼 김건희 여사 일가 땅이 있는 강상면으로 틀었으니 권력의 ‘보이지 않은 손’이 작용했는지에 시선이 쏠리는 건 자연스럽다. 오랜 경험상 권력을 이용한 이권 획득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경로 변경 종점 근처에 있는 김 여사 일가 땅을 인지했는지 여부가 도마에 오르고, 국토부는 이를 부인하는 자료를 내는 등 여러 논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주민 편의나 교통수요 측면에서의 타당성 여부가 경로 변경의 적합성을 따지는 게 본질이지만 권력이 끼어드는 순간 정치 사건이 됐다. 권력의 작용 여부를 떠나 국토부가 알고도 했다면 무신경이고, 몰랐다면 바보가 될 판이다. 엎질러진 물을 담고자 한 장관의 백지화 발표마저 또 다른 문제, 역풍을 낳고 있으니 정치 소모전에 지친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여권은 민주당 전 군수까지 끌어들인 되치기 등 물타기로 진흙탕 싸움을 연출하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양평 군민의 숙원사업까지 괴담의 제물로 삼고 있다”고 야당을 비판했다. 하지만 정치 코멘테이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말이 옳다. 홍 시장은 이를 두고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라고 했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오해를 살 만한 종점 변경이라는 것이다. 오해를 사는 수준에 그칠 일이라면 여권 입장에서 다행이겠으나 사안의 본질은 여전히 신의 손 작용 여부에 있고, 야당은 끝까지 밀어붙일 심산이다. 신의 손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건 수사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문제는 없다는 걸 입증할 방법이나 재간이 있느냐다. 논리학이나 법률에서 흔히 다뤄지는 부재(不在) 증명의 어려움이다. 그간 의혹의 확대 재생산도 여기에서 비롯된 바가 큰 점에 비춰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제기도 명쾌하게 결론이 날지 미지수다. 그럼에도 서울-양평 고속도로 의혹마저 괴담 수준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괴담과 합리적 의심을 기반으로 한 의혹 사이의 간격은 크다.

요즘 정치 사회 다방면에서 빚어지는 가치 전쟁과 맞물려 용어 전쟁이 격렬하다. 그 하나가 괴담이다. 괴담이라는 말 자체가 있을 법하지 않은 얘기, 믿지 못할 얘기, 사실과 다른 얘기를 퍼뜨리고 다닌다는 인상을 씌운다. 수십 년간 양당구조에서 보수정당은 학습 효과의 결과로 괴담을 들고 나왔을지 모르겠다. 야당의 주장, 의혹 제기에 대해 신뢰를 떨어뜨리는 수단으로 선동만큼이나 괴담을 거론한다. 물론 과거 야권이 의혹의 확대 재생산을 통해 ‘재미’를 본 측면도 없지 않다. 문제는 용어 사용의 적절성과 그 이면이다. 대중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는 고민의 소산이겠지만 남발되는 양상을 보면 ‘가스라이팅’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치권의 책임의식을 요구하는 건 무리인가. 국민이 분별력을 키우는 도리밖에 없는 것인가.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