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별세···“문학은 프로파간다가 될 때 그 가치를 잃는다”
체코계 프랑스 작가 밀란 쿤데라가 프랑스에서 사망했다고 유럽 매체들이 12일 전했다. 스탈린의 전체주의에는 반대한 공산당원이자 체코 민주화운동 ‘프라하의 봄’에 참여한 활동가였다. 향년 94세.
“쿤데라가 어제(현지시간 11일) 파리에서 오랜 투병 끝에 사망했다”고 체코 모란비아 도서관 대변인이 발표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12일 보도했다. 쿤데라 고향 브루노에 있는 이 도서관은 쿤데라 아카이브를 운영한다.
쿤데라는 1929년 4월1일 브르노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루드비크 쿤데라는 음악학자이자 피아니스트였다.
쿤데라 전집 세트를 낸 ‘민음사’가 정리한 작가 연보를 보면, 쿤데라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배운 피아노와 음악학은 나중 작품에도 영향을 끼쳤다. 1979년 장편 <웃음과 망각의 책>이 한 예다.
1948년 브르노의 트리다 김나지움에서 중등 교육을 수료했다. 이 무렵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 가입했다. 공산당원이었으나 1948년 스탈린의 권력 장악에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프라하 공연예술대학교 영화학부에서 영화 연출과 시나리오 공부도 했다. 1950년 ‘반공산당 활동’이라는 죄목으로 공산당에서 추방당했다. 이후에도 입당과 탈당을 반복했다. 1952년 프라하 공연예술대학교에서 강사로 채용돼 문학을 가르쳤다. 1958년에 교수로 일한다.
작품 발표는 1962년부터 시작했다. 이해 희곡 ‘열쇠의 주인들’, 이듬해 단편집 <우스운 사랑들>을 출간했다. 1967년 첫 장편 소설로 공산당을 풍자한 <농담>을 발표한다. 유머 감각이 부족해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갇힌 체코 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이듬해 프랑스어로 번역되면서 국제적으로 알려진다. 프랑스 대표 시인 중 하나인 루이 아라공은 쿤데라를 “금세기 최고의 소설가 중 한 사람으로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해 주는 소설가”라고 <농담> 서문에 썼다. 이 작품은 체코 작가 출판사상을 받았다.
1968년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운동인 ‘프라하의 봄’에 참여했다. 그는 평소에도 언론 자유와 평등을 강조했다. 쿤데라는 ‘프라하의 봄’이 소비에트 침공으로 좌절되는 8월까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운동을 벌였다. 침공도 지속해서 비판했다. 이후 숙청 과정에서 해직, 저서 압수 등을 당했다. 집필과 강연 활동도 제한당했다.
1970년 공산당에서 두 번째로 추방당한다. 저작도 출판 금지된다. 출판 금지는 1989년 ‘벨벳혁명’으로 체코가 자유화된 뒤에야 풀린다.
1970년 “거짓말, 농담, 웃음 등,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포착”한 일곱 작품을 실은 단편집 <우스운 사랑들>을 프랑스에서 낸다. 쿤데라는 나중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1973년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바쳐 아들을 사랑한 어머니와, 그 애정의 안온하고도 갑갑한 테두리 밖으로 뛰쳐나오기로 결심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삶은 다른 곳에>는 프랑스 메디치 상 외국 작품 부문을 수상했다.
1975년 아내 베라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한다. 브르타뉴의 렌 대학교에서 객원 교수로 지내며 비교문학을 가르쳤다. 1979년 체코 국적을 상실한다. 1980년 파리 대학으로 옮긴다. 1981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1982년 대표작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집필을 마무리해 1984년 출간한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역사의 상처라는 무게에 짓눌려 단 한 번도 ‘존재의 가벼움’을 느껴 보지 못한 현대인의 삶과 사랑을 다룬” 소설이다. 쿤데라는 이 작품으로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오른다. 이 작품은 1988년 쥘리에트 비노슈와 대니얼 데이 루이스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진다. 쿤데라는 미국 영화감독 필립 코프먼의 이 영화를 두고 “작중 인물의 성격이나 소설의 근본적인 주제와 영화 사이에 유사성이 없음을 애석해하며, 이를 계기로 그의 저작물의 어떤 변용도 허락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체코에서 금서였던 이 책은 2006년에야 체코에서 출판된다.
이 책은 한국에서도 100만부 이상 팔릴 정도로 인기였다. 2011년 당시 책 번역가 이재룡 숭실대 교수는 “1980년대 후반 쿤데라가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는데 체코 출신의 프랑스 망명 작가란 아우라와 함께 억압적 체제와 개인의 갈등을 다룬 작품세계가 국내 정치 상황이나 독자들의 입맛과 맞아떨어지면서 인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쿤데라는 자신의 작품이 반체제나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은 경계했다. 그는 1980년대 파리 리뷰에 자신의 주제는 정치나 사회 비판이 아니라 “현대 세계 인간 존재의 복잡성”이라고 말했다. 1981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와 인터뷰할 때는 “예술과 문학은 공산주의든 반공주의든 프로파간다(선전)이 될 때 그 가치를 잃는다”고 했다.
1990년 “불멸을 향한 인간의 헛된 욕망과 그로 인해 더욱 심화되는 고독에 천착”한 <불멸>을 발표한다. 1993년 <배신당한 유언들> 1994년 <느림>, 1997년 <정체성>, 2000년 <향수> 등을 낸다.
2005년 에세이집 <커튼>, 2009년 에세이집 <만남>을 낸다. 2014년 마지막 소설 <무의미의 축제>를 출간했다. 2019년 체코 국적을 회복했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그랑프리, 유러피안문학상, 커먼웰스상, 프란츠 카프카 상등 여러 상을 받았다. 노벨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됐으나 수상하진 못했다.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7121911001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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