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끊임없이 '죄송'할까
" 제가 실수도 많이 하고 일을 잘 하지 못해 늘 주변 사람들에게 죄인같은 느낌이에요. 나 한 사람 때문에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남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게 되고 계속 입에서는 미안하다는 말이 나와요. 사람들이 뭐가 미안하냐고 하는데 저는 제가 알아서 일을 못해 내는 게 너무 죄송하고 미안해요. 제가 능력이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잘 처리를 해서 딱 마무리를 지을 텐데 그게 늘 아쉬워요."
위의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죄책감일까, 수치심일까?
끊임없이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상담자 A씨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로부터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으로 살지 말아라', '네가 할 일은 네가 하고 남들에게 미루지 말아라' 같은 말을 끊임없이 들으며 살아왔다고 한다.
집안의 첫째인 상담자는 안그래도 소심한 성격 탓에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남들 눈치, 엄마 눈치를 보며 항상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혹여 잘못이라도 저지를 경우 엄청난 비난과 벌을 각오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취업 뒤다. 실적과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경쟁적 직장 환경은 A씨가 견디기에는 매우 힘들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끊임없이 '미안'과 '죄송'을 입에 달고 살았다. 직장 내 사람들이 오히려 뭐가 그렇게 미안한 게 많냐고 지적할 정도라고 한다. 너무 사과가 입에 붙다 보니 자신을 오히려 얕잡아 보는 사람들도 생겨 스트레스는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횟수도 늘었고, 최근에는 약간 알코올 의존적 성향까지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A씨는 왜 끊임없이 자신이 잘못했다고 느끼는 것일까? 직장 동료들이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정도면 업무상 과실로 크게 피해를 끼치고 있지도 않은 상황인데 말이다. 상담자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사실 일을 제대로 못해내고 있다는 '죄책감'이 아니라 '수치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심리학자 헬렌 블록 루이스(Helen Block Lewis)에 따르면 수치심과 죄책감의 핵심적인 차이는 자기(self)이다. 수치심은 자기 자체(entire self)가 문제다. 반면 죄책감은 자기가 한 일(doing)이 문제다. 즉, 수치심이 초점을 맞춘 것은 끔찍한 일은 한 '나 자신'이지만, 죄책감은 내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때문에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훨씬 파괴적이다. 자기 전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매번 땅으로 꺼져버리고 싶은 회피적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아니면 방어의 일환으로 모욕감과 노여움, 분노감을 느끼면서 타인에게 잘못을 떠넘기고 비난할 수도 있다.
반면 죄책감은 괴롭기는 하지만 수치심보다는 덜 고통스럽고 파괴적이며, 고백이나 사과, 보상과 같은 후속 조치가 취해지기도 한다.
A씨와 비슷한 이들의 성향을 좀 더 들여다 보면 깊은 스스로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들에게 거절당하면 어쩌나, 사람들의 기대에 못 미쳐서 실망을 주면 어쩌나 하는 염려로 미리 자신이 자기를 낮추어 벌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행동이나 업무의 결과에 만족하는 경우는 드물다. 완벽하게 일을 해내고도 '조금 괜찮은 것 같아요' 라고 긍정적 반응을 겨우 보인다. 그러다 보니 늘 주변 사람들이 잘한다고 해도 부족함을 떠올리고 조금만 실수를 해도 자신을 자책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수나 오류를 내고 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불편함은 다음에 더 잘하기 위한 전환의 기회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한번 실수를 할 경우, 지나치게 바로 깊은 수치심에 빠지는 이들도 있다. 이같은 상황을 다시는 겪고 싶어하지 않으며, 바로 회피로 해결책을 찾는다. 회피적 수치심은 자기비하로 이어지면서 스스로를 무능력자로 낙인찍어버리기도 한다.
힘든 시간을 위로받기 위해 술을 마시고 특히 과음으로 현실을 회피하기도 한다. 압박감을 견디기 위해서는 독주의 힘으로 불안의 무게를 눌러야 하기에 스트레스에 취약할수록 점차 술, 게임 , 도박 등 회피 수단의 행위에 기대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만약 지나치게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면, 본인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이 적을수록 수치심은 쉽게 우리를 공격한다. 실수나 잘못을 한다면 '그 행동'만 벌하고 고치면 된다. 매번 자기 자신을 벌하고 수치심에 휩싸인다면 마음의 힘은 버티지 못하고 쉽게 무너져 내린다. 자신은 벌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하는 대상임을 언제나 잊어서는 안 된다.
윤희경 센터장 (pmsy3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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