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의 질문] 성낙인 교수 "윤 대통령 자유만 강조하면 오해 불러...사회연대 정책도 펴 나가야"

김성환 2023. 7. 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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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학자 성낙인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
어려운 이웃 배려하면서 자유가 불타올라야
여소야대 상황서 이원정부제 불가피 
총선 차출설 한동훈 장관, "정치 안 했으면" 
남북관계 특수성 문제 건드리면 안 돼
성낙인 서울대 명예교수가 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자주 강조한다. 검찰총장 퇴임 때부터 정치에 뛰어들어 대통령이 된 지금까지 일관적이다. 특히 윤 대통령은 동시대 민주화의 상징과도 같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광주의 오월 정신으로 회복한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가 바로 헌법 정신”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최근 임명한 차관들에게도 윤 대통령은 “내정도 외치도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는 헌법 전문과 4조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해석과 이명박 정부 때부터 반복된 중·고교 역사교과서 반영 여부 등을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세력 간 갈등이 첨예한 사안이다. 특히 진보 진영에서는 유신헌법 때 처음 들어온 자유민주주의의 시대적 배경과 연결해 윤 대통령의 정치적 퇴행을 우려한다. 이에 대해 헌법학자인 성낙인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6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자유주의만이 나라의 갈 길처럼 오해를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면서 “자유가 평등이나 사회연대라는 가치와 함께 간다는 사실을 윤석열 정부는 정책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선 민심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우려에 대해 “제도화된 권력보다 통치자가 개인적 카리스마로 더 강한 권력을 누린 경우가 이어지면서 권력의 인격화라는 개념이 등장했다”며 “이를 극복하면서 안정적 통치를 할 수 있는 대통령이 필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75주년 제헌절을 앞두고 성 명예교수로부터 현재의 정치상황에 대한 헌법학자로서의 견해를 들어봤다.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 또는 다원적 민주주의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주자 시절인 지난 2021년 7월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해 작성한 방명록. 광주= 뉴스1

-윤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지만 이를 정치적 퇴행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헌법상 자유민주주의 개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프랑스 헌법학자 및 정치학자 10여 명의 책을 분석했다. 공통적으로 국가형태를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체제로 나누고 있다. 오늘날 일반화돼 있는 민주주의란 자유민주주의 또는 다원적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등을 거치면서 사람을 살육하는 군부 독재 정권을 지켜본 청년 지식인들이 공산주의 등 인민민주주의에 대한 동경을 품었던 게 사실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은 모든 이데올로기를 체제 속으로 수용하는 데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인민민주주의를 배척한다.”

-윤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어떤 식으로 국정 운영에 반영해야 한다고 보는가.

“자유는 평등과 함께 가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는 가운데 자유가 불타 올라야 한다. 그게 아닌 정부는 성공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이 이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정부에서 말과 행동으로 직접 보여줘야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 연대의 한 축인 노동조합과 윤석열 정부의 시작이 좋지 않다.

“노동조합도 잘못된 것은 당연히 바꿔야 한다. 하지만 노조 자체에 대한 존재 이유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공정의 가치에 어긋난다면 잘못은 교정해야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노조를 백안시할 수 없다. 유럽에서는 대통령이나 총리가 취임하면 노조위원장을 최우선적으로 만난다. 정치적인 셈법이 있기도 하겠지만,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정부에서도 만들어줘야 진정한 사회연대가 가능해진다.”


최근 선거서 국민적 정당성 획득 세력에 무게 둬야

성낙인 서울대 명예교수가 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진다.

“1970년대 나온 ‘권력의 인격화’라는 책 표지에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 옛 소련의 흐루쇼프 서기장,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 얼굴이 등장한다.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라는 체제를 떠나서, 이 통치자들은 제도화된 권력보다 개인의 카리스마로 더 센 권력을 누렸다. 우리나라도 박정희 대통령 이후 심지어 민주주의 상징인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를 극복해야 안정적 통치가 가능해진다. 국무회의를 보면 대통령 얘기를 장관들이 학생처럼 받아 적고 있다. 권력 내부의 민주화부터 이뤄져야 한다."

-대통령제 자체에 대한 제도적 변화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된다.

“1969년 프랑스의 자크 샤방델마스 총리는 ‘유보 영역’ 이론을 통해 외교·국방은 대통령이, 그 외에 내치는 총리가 담당하는 역할 분담론을 주장했다. 흔히 말하는 프랑스의 이원정부제다.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정부형태인가의 문제와 별개로 여소야대 상황이 지속적으로 전개되면 이원정부제 운영은 불가피하다.“

-대통령이 두 번의 거부권을 행사할 정도로 여소야대 정국에서 타협의 정치는 실종된 상황이다.

“검사 출신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아무리 야당 대표라고 해도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하고 대화를 하는 자체가 범죄 혐의를 부정한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치적 탄압을 받아서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타협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내년 4월 총선 때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질 것 같다. 국가적 불행이다.”

-돌파구를 마련할 수 없을까.

“헌법상 대통령 임기가 5년이고 국회의원 임기가 4년이다.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여야가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는 안 된다. 정치 헌법학 이론에서는 가장 최근에 국민들의 정당성을 획득한 쪽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지금 시점에서는 지난해 대선이 가장 최근이었다. 일단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는 얘기다. 만약 내년 4월 총선에서 야당이 다수당이 되면 그때는 야당에 더 무게를 실어줘야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한 상호 이해가 전제돼야 하는데 지금 정치권을 보면 이런 게 없다. 제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 총선 차출론이 나온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도 여권 인사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은 결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은 보스 기질이 아주 강하다. 반면 도회인이라는 특징이 강한 한 장관은 윤 대통령 보좌 카드로는 훌륭하다. 정치를 하려면 험난한 코스를 거쳐야 한다. 초선 국회의원보다 법무부 장관 역할이 더 중요하다. 국회에 가면 좀 거칠어지던데 원래 얌전한 사람이다. 개인적으로는 한 장관이 정치를 안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군경 이중배상 금지와 정보권 등 개정해야

성낙인 서울대 명예교수가 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 접견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윤 대통령이 최근 통일부 역할 변화를 주문했다. 일각에서는 남북관계가 헌법상 특수관계가 아닌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데.

“헌법 3조에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명시돼 있다. 남북은 특수 관계다. 북한 방문 때 여권이 아닌 출경서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를 방증한다. 남북관계를 대하는 데 있어 이런 특수성 문제까지 건드리면 안 된다. ‘국가 대 국가’니 그런 식의 주장은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제헌절을 앞두고 김진표 국회의장이 또 개헌에 시동을 걸었다.

“1948년 만들어진 헌법이 1987년까지 8번 개정됐다. 산술적으로 39년 동안 8번 바뀌었으니 5년을 못 간 셈이다. 하지만 이후 36년간 지금의 헌법이 유지되고 있다. 여야 8인의 정치회동을 통해서 타협을 본 게 현행 헌법이다. 물론 민주화에 기념비적인 이정표를 쌓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5년마다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앞뒤가 안 맞는 것도 있고 헌법 조문 자체에 위헌적 요소도 있다. 개헌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너무 많은 게 현실이다.”

-통치구조 못지않게 기본권 조항에서도 손을 대야 할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 29조 2항의 군인과 군무원·경찰공무원에 대한 국가의 이중배상 제한 조항이 대표적이다. 유신헌법에 들어갔던 조항이 1980년과 1987년 개헌 때도 그대로 남았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국민소득이 1만 달러 시대를 맞이했다. 최근 국가보훈처를 부로 승격시킬 정도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제복을 입은 분들에 대한 더 많은 배려를 해야 하는 시대지만, 당연히 없어져야 할 조항이 남아 있다. AI(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든 상황에 정보에 대한 기본권도 다시 정립해야 한다. 알권리와 프라이버시권은 당연한 기본권이다. 하지만 프라이버시권이 1980년 헌법에서 들어왔지만 알 권리는 아직도 헌법 조항에 없다.”

-제헌절을 공휴일로 다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주 5일제가 시작된 노무현 정부 때 쉬는 날이 너무 많다고 공휴일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고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부터 시행됐다. 3·1절과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까지 5대 국경일 중 유일하게 제헌절만 공휴일이 아니다. 대체휴일제까지 도입된 상황에 제헌절을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는 이유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지난 4월부터 정부의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위원회에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

“지난 4월 윤 대통령 방미 때 넷플릭스가 향후 K콘텐츠에 3조3,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넷플릭스에 너무 종속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넷플릭스의 투자도 좋지만 국내 미디어 콘텐츠 산업도 안정적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된다. CJ 빼고는 대부분 영세하다. 티빙만 해도 지난해 1,000억 원의 적자가 났다고 한다. 체계적으로 범부처 차원의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성낙인 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2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법대 학장과 26대 서울대 총장을 지냈다. 서울대 총장 재임 시절에는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1,000원의 아침식사를 처음 도입해 화제가 됐다. 국회 공직자윤리위원장과 헌법재판제도개선위원장,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장, 대검 진상규명위원장, 경찰위원장 등을 지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국무총리와 미디어ㆍ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성환 논설위원 bluebir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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