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취소' 날벼락에 암환자들 애타는데···'정치파업' 프레임에 찬반 논쟁도

안경진 기자 2023. 7. 1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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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19년만에 총파업 돌입 예고
12일부터 전야제···13~14일 이틀간 총파업
현장 공백 현실화···찬반 논란 거센데 협상 쉽지 않을듯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가 오는 13일부터 의료인력 확충과 감염병 전담병원 지원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 돌입을 예고한 가운데 12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 관련 팻말이 놓여있다. 이호재기자
[서울경제]

민주노총 산별 노조인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총파업을 하루 앞두고 의료 공백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찬반 진영 간 대립도 거세지는 형국이다. 전국 4만 5000여 명이 참여하는 총파업으로 인해 자칫 환자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이 같은 사태를 초래한 근본 원인이 정부에 있다며 총파업을 지지하는 입장도 속속 나오고 있다. 현재로선 총파업 개시 5시간을 앞두고 극적 타결이 성사됐던 2021년 상황이 재현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 19년만의 총파업 예고···의료공백 현실화하나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오후 6시 이대서울병원을 중심으로 각 지역본부 및 지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총파업 전야제에 돌입한다. 서울 강서구 소재 이대서울병원에서 진행되는 전야제에는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과 이화의료원지부 조합원 800여 명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나 위원장의 대회사를 시작으로 산별총파업 7대 핵심 요구사항을 담은 영상을 상영하고, 사업장별 교섭 경과과 투쟁 조직화 상황보고, 산별총파업 투쟁 일정 설명 등이 이어질 예정이다.

본격적인 투쟁이 시작되는 13일에는 아침 7시를 기점으로 파업에 돌입하고, 오후 1시 30분부터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2023년 보건의료노조 산별 총파업대회'를 연다. 이번 파업 참여 인원은 전국 127개 지부 145개 사업장, 6만 5000여 명 규모다. 조합원이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파업 대상이 되는 사업장은 사립대병원지부 29개, 국립대병원지부 12개, 특수목적공공병원지부 12개, 대한적십자사지부 26개, 지방의료원지부 26개 등이다. 소위 '빅5'라 불리는 서울 대형병원들은 참여하지 않지만 경희대병원, 고려대안암병원, 고려대구로병원, 고려대안산병원, 이대목동병원, 이대서울병원, 한양대병원, 아주대병원, 한림대성심병원 등 20곳 안팎의 상급종합병원이 포함돼 사실상 현장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게 의료계 전언이다. 노조는 응급실과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실 등 필수의료 인력은 유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선 병원들은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의 약 65%가 간호사인 만큼 조합원 및 파업 참여 비중이 높은 기관에서는 사실상 정상적인 외래진료와 검사, 입원, 수술 등이 진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 일부 대형병원, 벌써부터 수술 취소·전원 조치···대혼란

일부 병원에서는 벌써부터 수술, 진료 일정이 미뤄지거나 입원이 중단되고 기존 입원 환자들이 다른 병원으로 전원되는 등의 조치가 이뤄지는 중이다. 전체 직원의 3분의 1가량이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인 국립암센터는 파업이 예고된 13~14일 이틀치 수술을 전격 취소했다. 간호사, 방사선사 등 수술 전후 환자 케어에 투입돼야 할 인력의 상당수가 파업에 참여해 정상적인 진료가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양산부산대병원도 파업에 대비해 중증도가 높은 환자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을 퇴원시키거나 전원 조치하는 등 병동을 비우고 있다. 파업에 참여하는 나머지 병원들도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중이다. 한 수도권 대학병원 관계자는 "당장은 수술이나 진료가 취소된 사례가 없지만 파업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어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비응급에 해당하는 일부 환자는 입원 일정이 조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오는 13일 총파업 돌입을 예고한 가운데, 11일 경남 양산시 양산부산대병원 일반병동 입원 환자가 파업에 대비한 병원 측의 전원 요청에 따라 차량을 이용해 병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보건의료노조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5 제도화 △적정인력 기준 마련 △의사 인력 확충 △공공의료 확충 △코로나19 전담병원 정상화를 위한 회복기 지원 △임금인상 10.7% 등 정당한 보상과 9.2 노정합의 이행을 핵심 요구사항으로 내세웠다. 어디까지나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착한 파업이며, 7가지 요구사항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면 파업을 재검토할 의향이 있다는 게 이들 단체의 입장이다. 이번에 보건의료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하면 지난 2004년 의료민영화 저지·주5일제 관철을 주장하며 파업한 지 19년 만이 된다. 당시 파업 참여 인원은 1만 여명이었다. 이번에 쟁의조정 신청된 조합원 수는 그보다 6배가량 많다.

◇ 의협·병협 등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비판···"국민 생명 위협"

보건의료노조 총파업을 바라보는 의료계 시선은 크게 둘로 나뉜다. 대한의사협회를 필두로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등이 참여하는 14보건복지의료연대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의료종사자들이 현장에서 대거 이탈하게 된다면 이는 환자의 생명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기에 심히 염려된다"며 "국민의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며 의료대란의 불안을 가지게 만드는 총파업이 아닌 정부와의 충분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합리적으로 현안을 해결해 나가라"고 촉구했다.

14개 보건의료 관련 단체들로 구성된 14보건복지의료연대 관계자들이 12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앞에서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병원협회도 입장문을 통해 "필수의료인력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일반병동이 정상 운영되지 못한다면 응급실, 중환자실 등의 기능도 제대로 발휘되지 못할 수 있다"며 "총파업 결의를 재고하고 개별 병원에서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노사협의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보건의료노조가 요구하는 핵심 요구사항 중 의료인력 부족, 적정수가 보상 등은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하는 측면이 있어 단기 해결이 어렵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보건의료노조가 민주노총의 정치파업에 동참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 복지부, 대책 마련 나섰지만···극적 타결 쉽지 않을듯

반면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적지만은 않다.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는 논평을 내고 "공공의료 강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등을 돌리는 작금의 정부 정책 문제에 실망하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당연히 정부 정책 문제점에 분연히 일어선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을 지지할 것"이라며 "정부는 보건의료부문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공공의료 실현 및 보건의료 적정인력 확보에 나서라"고 선언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참여연대,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이 참여하는 무상의료운동본부도 이날 성명에서 "보건의료노조의 요구는 필수의료가 붕괴하고 응급실 뺑뺑이 등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나는 보건의료체계의 현실을 되돌리기 위한 것"이라며 파업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가 오는 13일부터 의료인력 확충과 감염병 전담병원 지원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 돌입을 예고한 가운데 12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 관련 팻말이 놓여있다. 이호재기자

2년 전과 같은 극적 타결에 대한 기대감도 나오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앞서 2021년에는 총파업을 5시간 남짓 앞두고 '9·2 노정합의'가 극적으로 타결돼 실제 의료현장의 혼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총파업의 경우 양측 입장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 특히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0일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관련 대비책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2차 긴급상황점검 회의에서 “보건의료노조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외면한 채 민주노총의 정치파업에 동참해서는 안된다"며 "투쟁계획을 철회하고 의료현장에서 환자의 곁에 남아 달라”고 발언하면서 더욱 분위기가 냉각됐다. 노조 측은 해당 발언이 나온 뒤 즉각 입장문을 내고 "정치파업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대화의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편협한 정치적 태도"라고 날을 세웠다.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이 정치공방으로 치달으면서 갈등이 장기화할수록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안게 된다. 복지부는 박민수 제2 차관을 반장으로 상황 점검반을 구성하고 파업 참여 상급종합병원장과 긴급상황점검회의를 여는 등 긴밀하게 대응하고 있다. 실제 입원 환자 전원 등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지역 내 의료기관과 협력해 환자 치료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현재 보건의료 재난위기 ‘관심’ 단계를 발령 중으로, 파업 참여 인원 등을 파악해 위기 경보 수준 상향 가능성도 열어놨다.

복지부는 노조를 향해 파업 계획을 철회하고 환자 곁을 지켜달라고 요청하면서도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 대응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박 차관은 “정부 정책 이행 시점을 이유로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에 중대한 위해를 끼칠 수 있는 파업은 정당하지 못하다”며 “노조는 파업 계획을 철회하고 환자 곁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필수의료대책, 간호인력 지원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듣고 보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안경진 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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