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현대重 '호황파업'에 멈춰섰다 … 암초 만난 수출현장
극심한 반도체 산업 부진 속에서 수출 일등 공신 역할을 대체해온 자동차·조선 업계가 노동조합 파업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윤석열 정권 퇴진'을 앞세운 민주노총 총파업에 현대자동차와 HD현대중공업 노조가 동참하면서 12일 생산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것이다.
산업계는 이번 파업이 앞으로 본격화할 '호황 파업'의 예고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하고 있다. 현대차는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고, 현대중공업은 오랜 침체기를 보낸 뒤 10여 년 만에 기록적인 수주 호황을 맞고 있다. 양사 노조가 이런 호황기를 이용해 올해 임금 및 단체 협상에서 기본급을 인상하거나 성과급을 확대하기 위해 '실력 행사'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날 현대차 노조는 오전 근무자가 오후 1시 30분부터, 오후 근무자는 오후 10시 10분부터 2시간씩 참여하는 방식으로 총 4시간 부분 파업을 벌였다. 울산, 아산, 전주 등 전체 사업장 노조 조합원이 참여하는 파업이었다. 이번 파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보다 2시간씩 일찍 일터를 떠났다. 현대차 노조는 조합원 4만4000여 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 단일 노조다.
현대차 노조가 파업에 참여한 것은 5년 만이다. 모처럼 상생을 추구하던 현대차 노조가 이번 파업에 참여한 이유는 회사를 압박해 올해 임단협에서 요구안을 관철하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된다. 올해 임단협에서 현대차 노조는 기본급 월 18만4900원(호봉 승급분 제외) 인상, 순이익의 30%(2조3951억원) 임직원 성과급에 할당, 휴직 기간에도 상여금 정상 지급, 만 60세인 정년을 만 64세까지 연장 등 사측이 수용하기 힘든 요구를 하고 있다. 업계에선 4시간 부분파업으로 현대차가 약 2000대 생산 차질과 530억원 매출 손실을 볼 것으로 추산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파업은 상급 단체인 금속노조 지침에 따른 불법 정치 파업"이라며 "회사는 파업에 대해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등 법적 책임을 물을 방침이고, 파업 참여자에게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협력업체 매출 손실까지 고려하면 이번 파업이 완성차 업계 전체에 미치는 효과는 더 크다. 울산에서 자동차 내·외장재를 생산하는 협력사 대표 A씨는 "현대차가 4시간 파업하면 협력사는 4시간 이상 생산에 차질을 겪는다"며 "코로나19 상황이 끝나고 좀 잘되려나 싶었는데 노조가 파업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재계에선 노사 간 대립할 뚜렷한 이슈가 없는 상황에서 현대차 노조가 돌연 파업에 나선 배경에 최근 호실적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 전 세계에서 자동차 208만1462대를 판매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7% 늘어난 판매량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의 실적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에 따르면 현대차는 2분기 매출 40조1161억원, 영업이익 3조7458억원을 기록하며 1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또다시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도 이날 파업이 시작됐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이날 오후 2시부터 울산 태화강역 광장에서 열린 노동집회에 참여하며 3시간 부분파업을 진행한 것이다.
지난해 9년 만에 무분규 임단협을 이뤄냈지만 올해 다시 투쟁 모드로 돌변한 것이다. 현대중공업 노조 움직임 역시 최근 호실적이 파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실제 현대중공업은 올 상반기 한 해 수주 목표의 60%에 해당하는 55억5000만달러어치를 수주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도 불안 요소다. 업계 관계자는 "노란봉투법 입법으로 나머지 70%인 하도급 노동자가 원도급을 상대로 쟁의권을 얻는 길이 열린다면 조선업계에 큰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화오션 노조도 일부 파업에 동참해 이번 파업이 조선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한화오션 노조는 버스 2대를 빌려 옥포조선소에서 인근 경남 창원까지 이동해 민주노총 상급단체 파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정치 투쟁 일변도였던 민주노총과 결별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롯데케미칼의 주력 사업장 중 한 곳인 충남 대산공장 노조가 5월 말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화섬노조) 탈퇴안을 가결한 것에 이어 포스코 양대 노동조합 중 하나인 포항지부 포스코지회도 지난달 민주노총 금속노조에서 탈퇴했다. 이들 기업 노조가 민주노총 탈퇴를 결정한 것은 민주노총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불만이 컸기 때문이다.
[문광민 기자 / 김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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