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론직설] "적폐 청산·형식적 법치로 정치 양극화 초래 文정부···민주주의 훼손"
민주당, 상호존중 등 민주주의 정신·규범 내재화 실패
압도적 의석 불구 책임 있는 입법 활동 대신 일방적 강행
오염수 문제 정치 쟁점화·반일 구도 몰아가는 것도 문제
'운동권 공화국'이 '검찰 공화국' 변질 않게 새 인물 기용
대중에게 영합하려는 포퓰리즘은 팬덤 정치로 이어져 편 가르기와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과 갈라치기 정치가 강성 팬덤층을 낳고 정치권의 대화와 타협을 어렵게 만들어 민주주의 위기를 증폭시켰다고 지적했다. 최근 자신의 저서 ‘민주주의의 모험’ 출간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은 1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 정부는 도덕적 우월감에 취해 상대편을 거악(巨惡)으로 몰고 서민의 투사를 자처하면서 반(反)기득권 논리로 상대편을 공격하는 포퓰리즘을 활용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문 정부는 법원을 정치화하고 삼권분립을 흔드는 등 형식적 법치주의로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진단했다. 이어 “포퓰리즘과 정치적 양극화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며 “결국 문 정부 시기 민주화 운동 세력에 의해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새로 발간한 책에서 문 정부가 민주주의의 후퇴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투쟁을 통해 많은 역할을 했지만 개인의 자유와 권리, 상호 존중, 관용 같은 자유민주주의 정신과 규범을 내재화하는 데 실패했다. 막상 권력을 잡고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적폐 청산이 대표적이다. 이는 기득권 대(對) 반기득권 구도로 흘러가면서 정치적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았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앞의 말은 모두 틀렸고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말만 맞았다.
-문 정부가 적폐 청산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민주주의는 실험과 모험을 통해 발전한다. 한국 민주주의도 궁극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믿는다. 문 정부는 아마도 적폐 청산으로 민주주의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나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실험 또는 모험을 한 것이다. 민주당은 분명히 자신들이 행한 모험이 실패로 드러난 만큼 또다시 적폐 청산과 같은 실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야당이 된 뒤에도 입법 폭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압도적인 과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은 국회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제1당이다. 의석 수가 많으면 책임 있게 입법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이 쟁점 법안을 힘으로 밀어붙이고 대통령이 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결국 쟁점 법안은 무용지물이 된다. 너무 소모적이다. 국회에서 절대적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은 대화와 합의로 입법을 주도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민주주의와 다수주의를 혼동한 것이다. 민주당이 국회에서 절대적인 힘을 보유하며 여야 간 타협이 이뤄질 수 없는 구조로 변질됐다.
-민주당의 폭주를 멈출 방법은 없는가.
△한국 국회는 한쪽으로 쏠린 의석 수 때문에 타협과 협상이 불가능한 정치 실종 상태에 내몰렸다. 이럴 때일수록 윤석열 대통령이 제1야당 대표와 만나 소통의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어떻게 대통령이 연쇄적 사법 리스크에 갇힌 피의자를 만날 수 있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유죄가 확정된 상태가 아닌 피의자일 뿐이다. 여야가 협치해야 하는데 접점을 찾지 못해 양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국민 여론도 양극화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민주당은 최근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자고 주장하는데.
△그게 바로 포퓰리즘이다. 과거의 대중영합주의가 국가 재정을 풀어 국민들에게 퍼주는 것이었다면 현재는 적폐 청산 등의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민주당은 과거와 현재의 포퓰리즘을 모두 활용하고 있다. 과거 기득권을 ‘카르텔’로 규정하는 국민의힘의 행태도 민주당처럼 적폐 청산까지는 아니지만 포퓰리즘적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들)’ 등이 동원된 팬덤 정치가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상황은 미국보다 심각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통되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SNS의 정보를 비판적 사고 없이 교과서처럼 흡수하면서 팬덤 현상으로 굳어지는 악순환이 형성된 셈이다. 특히 한국 10대들이 유튜브 등에 노출되면서 팬덤 정치는 더욱 악화할 수 있다. 관용과 공존·타협의 지대가 점점 협소해지고 있다. 팬덤 정치가 심해질수록 우리 사회는 두 개의 나라로 쪼개져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어두워질 것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가 정치화되고 있다.
△과거의 광우병 사태와 비슷하게 전개되는 것 같다. 당시 광우병에 대한 우려로 얼마나 큰 국력 손실이 있었나.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누구도 과거 일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오염수 문제도 정치화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탈진실 시대로 접어들면서 객관적 사실이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을 우려해야 한다.
-일본 오염수 문제에 대한 민주당의 행보를 평가한다면.
△오염수 문제는 일본이 결부돼 있어 정치적으로 폭발력이 큰 이슈다.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건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커졌다. 도덕적 부패라는 치명적 약점을 가진 민주당이 ‘일본’과 ‘오염수’ 이슈를 치부를 덮을 호재로 삼은 것이다. 국민들의 생명·건강 문제와 일본이 결부되다 보니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불안을 재료로 삼아 정치쟁점화하고 반일로 몰고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조사 결과를 최소한 어느 정도는 존중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의 대응은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좀 더 과학적으로 조심스럽게 대응했어야 했다.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여당 의원들이 수산시장에 가서 수족관 물을 마시는 행동을 할 필요가 있는가.
-정치권 안팎에서 586세대 정치인의 용퇴론도 거론되는데.
△운동권 세력은 과거에 정권을 잡은 뒤에도 야당을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립과 분열의 정치를 한 것이다. 문제는 이들도 이미 기득권 세력이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당초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는데 청와대와 내각에 포진한 뒤 권력의 파이프라인으로 변질됐다. 문 정부 당시 소득 주도 성장과 탈원전 정책, 부동산 정책에서 처참하게 실패했는데 아직도 철 지난 도덕적 우월감에 취해 있다. 그래서 상대방을 구악과 적으로 간주해 민주주의를 업그레이드하기보다는 퇴행시킨 셈이다. 이제는 새로운 세대가 나와야 할 때다.
-윤석열 정부의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은 무엇인가.
△윤 대통령이 정권 교체의 기수로서 역할을 충분히 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대통령에 올라 인재 풀에 한계를 보이면서 검찰 출신 인사와 이명박 정부 인사를 중용하고 있다. 국민들에게 인사를 통해 감동과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중용된 인물들은 능력과 경험을 갖췄지만 새 정부의 지향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내년 총선에서는 새 인물을 찾아야 한다. 만일 검찰 출신 인사들을 여당의 정치적 텃밭에 공천한다면 야당에 정치 공세의 빌미를 줄 것이다. 검찰 출신 인사들이 자기 희생을 각오하고 험지에 출마해 당선된다면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윤 정부가 성공한 정부로 남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것 외에 관용과 권력의 절제 등 민주적 정신과 규범을 실천해야 한다.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처벌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 인내심을 갖고 국민과 야당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구동존이(求同存異·차이점을 인정하면서 같은 점을 추구) 자세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윤 정부 출범 이후 ‘운동권 공화국’이 ‘검찰 공화국’으로 변하면 한국 민주주의는 더 후퇴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정책 지향점을 좀 더 중도로 옮겨야 한다. 국민의 정치 성향이 보수·중도·진보 등으로 3분의 1씩 나뉘어 있다면 중도를 지향하는 국민의 지지를 끌어와야 국정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를 미국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국 정치권이 대북 전단 살포자 처벌과 북한 어부 강제 북송 사건을 두고 문 정부에 실망감을 표시한 적이 있다. 문 정부 인사들은 북한에 대한 내정간섭과 남북 관계 악화 가능성에 주목한 것 같다. 하지만 독재 정권 시절 미국 정부와 시민단체들이 한국의 인권 문제를 거론한 것도 내정간섭이었나. 현 정부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많은 관심을 두는 것은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다만 북한 인권 문제를 정치화하면 안 된다. 이를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도 곤란하다. 또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권 문제를 외면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He is···
1983년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워싱턴대에서 사회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이오와대와 UCLA 교수를 거쳐 2005년부터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저명한 정치사회학자이면서 동북아시아 전문가로 한국 사회, 한미 동맹, 남북 관계, 동북아 역사 등에 대해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해왔다. 주요 저서로는 최근 발간한 ‘민주주의의 모험’ 외에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 ‘슈퍼피셜 코리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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