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한전 서약서 무용론

김인수 기자(ecokis@mk.co.kr) 2023. 7. 1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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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직원 2만3000명이 최근 태양광 사업을 비롯한 영리 목적의 어떤 직무도 겸직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했다. 정직하고 성실한 직원이 되겠다는 선언이다. 감사원에서 지인이나 가족 명의로 태양광 사업을 벌인 한전 직원들을 적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그런데 이런 서약서 제출이 효과가 있을까. 심리학자들 연구에 따르면 역효과가 날 위험이 크다. 피터 골비처 미국 뉴욕대 교수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그는 변호사가 되는 게 목표인 법대생들을 모았다. 한 그룹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공부하겠다는 서약을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반면 다른 한 그룹은 마음에만 새겼다. 실제로 공부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더 열심히 공부한 건 후자였다. 서약을 공개하면 이미 변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한 거 같다. 굳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남들이 자신을 그렇게 봐줄 것만 같다. 그래서 공부를 덜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전 직원의 서약서 역시 내용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모든 직원이 했다고 하니 누가 했는지도 세상이 다 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옳다면 그 서약서는 효과가 없을 것만 같다. 서약서 제출로 이미 정직한 직원이 된 거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래서 실제 노력은 덜 하는 역설이 발생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비록 감사에서 적발된 태양광 사업은 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회적 관심이 덜해 들통날 가능성이 낮은 다른 사업은 할 수도 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주연한 영화 '토탈 리콜'에서 반란군 지도자 쿠아토가 주인공 퀘이드에게 한 말이 기억난다. "당신의 행위가 당신입니다. 인간은 행위에 의해서 정체성이 결정됩니다." 한전 직원이 개인 영리 사업을 하지 않는 성실한 직원이라는 정체성을 갖느냐는 그들의 실제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 돈벌이 유혹을 단연코 거부하는 행위를 쌓아갈 때 비로소 정직하고 성실한 직원이 되는 것이다. 서약서 제출로는 그런 직원을 만들지 못한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한 거 같은 착각만 만들 뿐이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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