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한전 서약서 무용론
한국전력 직원 2만3000명이 최근 태양광 사업을 비롯한 영리 목적의 어떤 직무도 겸직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했다. 정직하고 성실한 직원이 되겠다는 선언이다. 감사원에서 지인이나 가족 명의로 태양광 사업을 벌인 한전 직원들을 적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그런데 이런 서약서 제출이 효과가 있을까. 심리학자들 연구에 따르면 역효과가 날 위험이 크다. 피터 골비처 미국 뉴욕대 교수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그는 변호사가 되는 게 목표인 법대생들을 모았다. 한 그룹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공부하겠다는 서약을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반면 다른 한 그룹은 마음에만 새겼다. 실제로 공부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더 열심히 공부한 건 후자였다. 서약을 공개하면 이미 변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한 거 같다. 굳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남들이 자신을 그렇게 봐줄 것만 같다. 그래서 공부를 덜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전 직원의 서약서 역시 내용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모든 직원이 했다고 하니 누가 했는지도 세상이 다 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옳다면 그 서약서는 효과가 없을 것만 같다. 서약서 제출로 이미 정직한 직원이 된 거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래서 실제 노력은 덜 하는 역설이 발생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비록 감사에서 적발된 태양광 사업은 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회적 관심이 덜해 들통날 가능성이 낮은 다른 사업은 할 수도 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주연한 영화 '토탈 리콜'에서 반란군 지도자 쿠아토가 주인공 퀘이드에게 한 말이 기억난다. "당신의 행위가 당신입니다. 인간은 행위에 의해서 정체성이 결정됩니다." 한전 직원이 개인 영리 사업을 하지 않는 성실한 직원이라는 정체성을 갖느냐는 그들의 실제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 돈벌이 유혹을 단연코 거부하는 행위를 쌓아갈 때 비로소 정직하고 성실한 직원이 되는 것이다. 서약서 제출로는 그런 직원을 만들지 못한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한 거 같은 착각만 만들 뿐이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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