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하청, 대안은 직고용뿐?…‘자회사 카드’ 역풍 맞는 산업계

김대영 매경닷컴 기자(kdy7118@mk.co.kr) 2023. 7. 1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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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모비스, 현대위아, 포스코 등
불법파견 리스크 없애기 나서기
법원은 ‘자회사 직고용’에 제동
경영계 “다양한 고용형태” 강조
여수국가산업단지 전경.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주요 제조기업들이 자회사를 활용해 불법파견 리스크를 덜어내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하청 근로자들이 “불법파견을 은폐하려는 꼼수”라면서 반발하고 있어서다. 당장 롯데케미칼이 하청 근로자들의 반발에 직면한 상황인 데다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현대위아, 포스코 등도 크고 작은 분쟁에 휩싸인 상황이다.
롯데케미칼, 자회사 직고용에 근로자들 ‘반발’
12일 노동계·석화업계에 따르면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롯데첨단소재사내하청지회는 최근 “롯데케미칼의 불법파견 범법 행위들을 뿌리 뽑고 온전한 직접고용을 쟁취할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롯데케미칼은 지난달 초 사내하청 근로자들을 소재전문 자회사로 직고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올 3분기 안에 롯데케미칼 첨단소재 여수공장 사내하청업체 3곳과 계약을 종료하고 충북 예산에 있는 소재전문자회사 삼박엘에프티를 확장·이전해 하청 근로자들을 직고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지회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롯데케미칼이 불법파견 소송을 취하시키기 위해 자회사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면서 “꼼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지회 측은 2019년 10월 롯데케미칼이 그동안 하청 근로자들을 불법파견 형태로 사용해 왔던 만큼 직고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는 하청 근로자 397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롯데케미칼 소속 근로자였다면 받았을 임금과 하청업체에서 받았던 임금의 차액 등 총 202억원도 함께 요구한 상태다.

롯데케미칼, 자회사 임금 10% 인상 ‘효과’ 제안
지회 측 설명을 종합하면 롯데케미칼은 자회사 직고용을 통해 기존 임금보다 약 10% 정도 인상된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임금이 10% 인상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 롯데케미칼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임금은 원청 근로자 대비 30~5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임금 10% 인상이 아니라 그만큼 인상되는 ‘효과’를 볼 수 있겠다고 한 만큼 소재전문자회사의 임금 인상 폭이 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자회사를 활용해 하청 근로자를 직고용한 다른 기업들의 경우 원청 근로자 대비 70~80% 임금 수준을 보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회는 임금 수준 등 처우와 별개로 롯데케미칼의 불법파견을 입증하고 원청 직고용을 이뤄내겠다는 방침이다. 이인호 지회 사무장은 “회사는 기존에 제안한 안에 대해 제안할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 안을 받을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롯데케미칼 불법파견 사건을 맡은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2민사부는 이달 20일 4차 변론기일을 진행한다. 롯데케미칼은 “노조와 계속 이야기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롯데첨단소재사내하청지회가 지난 10일 여수시청 현관 앞에서 ‘자회사 꼼수, 불법파견 은폐 롯데케미칼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출처 = 화섬식품노조]
법원은 ‘자회사 직고용’ 제동…기업은 항소
자회사 직고용 방식으로 불법파견 리스크를 덜어내려는 곳이 적지 않지만 관련 분쟁은 쉽사리 마무리되지 않는 상황이다. 심지어 최근 법원 판결은 하청 근로자를 원청이 직고용해야 한다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현대위아의 경우 자회사 방식을 추진하다 제동이 걸렸다. 자회사에 입사하는 대신 불법파견 소송을 취하하도록 하고 이에 응하지 않은 근로자를 다른 지역으로 전보시킨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법원 판단이 나와서다.

1심은 “현대위아는 파견법상 집적고용 의무를 잠탈할 목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협력업체 대표를 통해 소송 취하자와 부제소 합의자만 고용승계해 원래 공장에 계속 근무하도록 했다”며 “사측 안대로 소송 취하 등이 이루어지고 통합 신설법인이 설립되면 현대위아는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직접고용의무를 면하게 되는 등 확실한 이익을 얻는다”고 지적했다.

현대위아는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2심은 서울고법 제7행정부가 맡는다.

현대제철도 자회사를 만든 다음 사내하청 근로자들을 직고용했지만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인천지법 제11민사부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사내하청 근로자 927명이 원청 근로자라는 취지의 판단을 내놨다.

소송을 제기할 당시에는 1500여명이 참여했지만 현대제철이 자회사를 설립하면서 인원이 줄었다.

현대모비스 사내하청 근로자였던 부품 생산 계열사 ‘유니투스’ 근로자들 중 일부는 불법파견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직고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소송 초반만 해도 참여 인원은 250여명에 달했지만 자회사 설립을 전후로 소 취하 근로자가 늘면서 현재 15명만 남은 상태다.

포스코도 정비자회사를 설립한다고 밝힌 직후 노동계로부터 하청 근로자의 원청 직고용을 회피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을 받았다.

‘SPC 사례’에도 분쟁 지속…대안은 직고용뿐?
자회사 직고용으로 불법파견 리스크를 해소한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SPC는 고용노동부로부터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받고 자회사 PB파트너스를 설립해 이들을 직고용했다.

자회사 직고용 방식은 노조도 수용했던 대안이었다.

신환섭 화섬식품노조 위원장은 당시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노동부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직고용하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다”면서도 “어떤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한 끝에 모회사가 책임질 수 있는 자회사 형태로 풀어가는 게 맞겠다 싶어 회사에 해결을 요구했고 이에 모회사가 책임지는 모습으로 자회사를 만들어 모회사의 부사장이 자회사 사장을 맡으면서 일단 정리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원이 ‘자회사 직고용’에 제동을 걸면서 산업계에서는 생산공정 인력 운용이 경직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사실상 원청 직고용만을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한 셈이라는 비판도 있다.

경영계에서는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기업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고용 형태를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종선 한국경영자총협회 근로기준정책팀장은 “파견 관련 갈등을 해소하거나 직접 고용의 부담, 인력 운영, 경영 환경의 문제 등을 고려해 회사가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라며 “고용 형태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여러 방식을 유연하게 노사가 도입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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