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염려
최근 ‘한국문학번역원’의 운영이 부실하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가 다수의 언론에서 보도되었다. 기사를 보면서 ‘한국문학의 세계화’와 번역원의 역할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설립된 것은 1990년대이다. 그 시기 해외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일어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설립 이후 ‘대산문화재단’과 함께 각종 정책을 만들어가면서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하였다. 그동안 영국의 ‘맨부커상’에서 한국문학 작품이 수상하거나 최종 후보에 여러 차례 든 데에 ‘번역원’의 지원이 긴요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번역은 한국문학을 낯섦 그 상태로 외국의 독자들에게 선보이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읽게끔 부추기는 작업이다. 그 때문에 번역은 꽤 복잡한 기법과 시간을 요구한다. 오랜 기다림이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2021년 지원작 14건 중 1건만 출간으로 이어졌다”는 ‘문체부’의 지적은 번역의 성질을 이해하지 못한 착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작 필자가 염려하는 건 이런 착시 자체가 아니라 착시를 유발하는 데 바탕이 되었으리라 짐작되는 문화·예술의 성취에 대한 조급한 기대 혹은 부실한 안목이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심사 기준 중 ‘작품성’ 항목의 비중이 40%로 가장 높은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고 한다. “2021년 경영평가에서 해외 출판사 지원 사업은 작품성 외에도 출판사 역량, 출간 계획, 시장 수용도 등이 균형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지적됐으나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문제가 대두된 데에는 세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라 경제가 최우선이라는 요지부동의 사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도 이는 부인할 수 없는 배수(背水)의 지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당장의 이익을 내는 ‘짧은 경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케 하며, 더 나아가 세계 경제의 미래를 선도할 ‘긴 경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긴 경제는 상품의 질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삼성과 현대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솟아나 그 지위를 꾸준히 유지하는 건, 단순히 반도체와 자동차 판매에서 큰 성과를 냈다는 사실을 넘어서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전자 부문과 자동차의 세계적 ‘표준’으로 자리 잡으려 하는 그 방향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한 기업의 상품을 표준으로 만드는 건, 그것의 질적 가치이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그런 질을 보장하는 건 문학성과 예술성이다. 이 가치가 담보되었을 때만,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을 정착시키는 근본적인 목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왜 심사 기준 중 ‘작품성’ 항목의 비중이 높은지를 알려주는 까닭이다. 지원을 위한 요소들이 “균형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틀린 게 없다. 그러나 기계적인 분배가 균형의 진정한 의미는 아닐 것이다. 질적 균형만이 한국문학을 세계의 한복판으로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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