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누가 알까 겁나지”…‘겁쟁이’ 악플러, 익명 뒤에서만 ‘혐오배설’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 2023. 7. 1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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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강한 척 ‘겁쟁이’
공론의 장, 악플로 오염 심각
악플, 중독성 및 전파력 강해
[사진출처=연합뉴스]
어둠 속에서는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 있다고 믿는다. 범죄가 밤중에 자주 발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온라인 세상에서도 어둠이 있다. 정체를 숨겨주는 익명성이다. 익명성은 자신을 떳떳하게 보여주기를 두려워하는 겁쟁이에게 용기를 넘어 만용을 자행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복면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떳떳하게 할 수 없는 비방·욕설·거짓·혐오를 악성 댓글(악플)을 통해 배설한다. 한 번 두 번 배설하다 보면 쾌감을 느낀다. 배설욕에 중독된다. 악플러의 탄생이다.

인터넷 포털 및 게시판 등에 악의적 비방 또는 비하를 목적으로 작성하는 악플은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진 상태다.

악플은 근거 없는 자의적 또는 악의적 잣대로 상대방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극단적 혐오를 조장한다.

개인을 우울증 또는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신뢰가 중요한 기업의 경우 경쟁력에 악영향을 입거나 기업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경우도 나타난다.

댓글이 처음 도입된 지 20년이 넘은 현재, 악플 폐해를 막자는 공감대는 형성된 상태다.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이 악성 댓글 규제에 찬성하고 있다. 악성 댓글로 발생하는 사회적 폐해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는 뜻이다.

악성 댓글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비용도 막대하다. 연세대 바른ICT연구소에 따르면 악성 댓글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 35조3480억원에 달한다.

악성 댓글 대응을 위한 변호사 선임과 손해배상비용 등으로 3조5000여억원이 사용됐다. 피해자의 병원 진료 및 치료비용으로 550억원이 지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인터넷 뉴스 이용자 중 약 1%에 불과한 댓글 작성자들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1.6%에 달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 셈이다.

◆“너 이름이 뭐니, 남들이 알까 두렵니”
[사진출처=연합뉴스]
악플은 중독성과 전파력도 강하다. 한 번 악성 댓글이 달리게 되면 경쟁적으로 더 강하고 자극적인 댓글이 달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지난해 12월 참사로 친구를 잃은 10대 생존자가 서울 마포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심리치료에도 계속되는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끝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숨진 참사 생존자의 가족은 “숨진 친구들을 모욕하는 듯한 댓글을 보면서 굉장히 화를 많이 냈다”며 “혼자만 살아남은 것이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비난 댓글을 보고 무너진 것 같다”고 울분을 토했다.

악플은 기업을 망하게 만들 수도 있다. 기업이나 기업인을 향한 무분별한 비방성 악성 댓글로 매출이 급감하거나 사회적 평판이 하락해서다.

지난 2021년 한 직장인 소셜미디에 A기업 직원이 올린 글은 대표적 사례다. 작성자는 자신의 상사들이 ‘굉장한 꼰대’로 “마치 조현병 말기 환자들 같다”며 비난했다. 내용 중 특히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CEO의 여직원 성희롱 발언이 있다’는 주장이다.

해당 기업은 작성자가 허위 사실을 적시해 회사의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강력 반발했다. 조사 결과 글을 올린 직원과 CEO의 사무공간은 전혀 다른 건물에 위치해 있었으며, 두 사람은 만난 적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대행사가 돈을 받고 경쟁 업체를 비방하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올리다 적발되는 경우도 있다.

2019년 3월 인터넷 육아 정보 카페 등에 “B유업 우유에서 쇳가루 맛이 난다”, “B유업 목장 인근에 원전이 있어 방사능 유출 영향이 있을 것” 등 특정 기업을 비방하는 댓글이 무더기로 올라왔다.

피해를 입은 B유업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경쟁 업체가 홍보대행사를 통해 50개의 아이디로 조직적 비방 댓글 작업을 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필요 주장
[사진출처=연합뉴스]
악성 댓글 폐해는 막대하지만 규제와 처벌은 약하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 아래 무죄가 선고되거나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악성 댓글을 삭제하고자 할 경우에도 피해자가 일일이 포털 등 사업자에 요청하고 직접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

현행법상 악성 댓글을 달아 적발되면 형법상 모욕죄로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정보통신망법상 사이버 명예훼손죄가 인정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이 가능하고, 만일 댓글 내용이 허위일 경우 처벌 수위는 더욱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사법부에서 명예훼손 혐의를 인정되더라도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단순 일회성 악성 댓글로 처벌받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댓글이 허위라 하더라도 비방 목적이 없었거나 공익성을 인정받으면 유죄 선고를 피할 수 있다.

21대 국회 들어 악성 댓글 작성자의 처벌 수위를 높이거나, 사이버 혐오∙차별 정보 유통죄 신설 등 총 9건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어떠한 법안도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형사처벌 강화 주장이 표현의 자유 약화 우려에 번번이 가로막혀서다.

악플 폐해를 줄이려면 민사적 해결책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한 경고 효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등 해외 국가들 역시 유사한 규제를 이미 시행 중이다.

법조계 전문가는 “온라인 댓글 도입의 취지인 ‘표현의 자유’는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는 자유가 아니다”라며 “악성 댓글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크다는 공감대가 확인된 이상, 포털 및 커뮤니티상 무분별한 악성 댓글에 대한 규제 강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전문가도 “비방성 악성 댓글은 익명이라는 가면 속에 숨어 욕설과 모욕을 쏟아내 사회적 소모를 가속화하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행복추구권 등 다른 국민들의 헌법상 권리 역시 동등하게 보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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