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모녀 전세사기’ 주범, 1심서 징역 10년···법원 ‘엄벌’ 신호탄?
추가 범죄 인정 땐 형량 더 늘수도
1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08호 법정. ‘징역 10년에 처한다’는 판사의 선고 직후 피고인이 바닥에 쓰러졌다.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졸도한 피고인은 법정 직원들의 응급 처치를 받고 나서야 휠체어에 겨우 몸을 싣고 법정 밖을 나섰다. 전세사기 피해 규모와 액수가 막대해 공분을 샀던 ‘세 모녀 전세사기’의 주범에게 첫 선고가 내려진 순간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이준구 판사는 이날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58)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2017년부터 두 딸 명의로 서울 강서구·관악구 등 수도권 일대의 빌라를 사들였는데, 계약이 만료된 임차인 85명에게 180억원 상당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신축 빌라 분양대행업자와 공모해 빌라를 매입하기 전에 임차인부터 구하고, 분양대금보다 많은 전세보증금을 받는 이른바 ‘갭투자’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판사는 이날 김씨의 사기범죄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이 판사는 “피고인은 처음부터 임대차 보증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음에도 피해자들을 속여 재산상의 이익을 얻었다”며 “피고인은 이 구조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일명 ‘전세사기 범행’은 서민층과 사회초년생들이 대부분인 피해자들의 살의 밑천을 뿌리째 흔든 범행으로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며 “임대차 보증금이 재산 전부였거나 일부였던 피해자들은 주거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받았고 아직까지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또 “피고인은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은데도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납득할 수 없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반성하지 않았고, 일부 피해자가 보증금 대위변제를 받은 후 퇴거하자 단기월세 임차를 들이는 등 경제적 이익 추구에만 몰두했다”며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선고 직후 피해 임차인들을 대리한 공형진 변호사는 취재진과 만나 “검찰 구형이 10년인 걸 고려하면 법원이 전문적인 전세 갭투자 사기에 대해 앞으로 엄벌하겠다는 취지로 이해된다”고 밝혔다. 공 변호사는 “피해자들 입장에선 전세 보증금에 대한 재산 회복이 제일 중요한데, 대부분 변제받지 못한 상황”이라며 “정치권과 입법자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형량은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 김씨는 두 딸과 분양대행업자와 함께 추가 기소돼 같은 법원 형사26단독에서 또 다른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김씨는 처음엔 임차인 85명에게 보증금 약 183억원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검찰의 보강 수사로 피해자는 355명, 피해액은 795억원으로 늘어났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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