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일‧러 잘나가는데, 왜 한국만 고립됐나 [마켓톡톡]

한정연 기자 2023. 7. 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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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지난해 GDP 10→13위 추락
러, 경제 제재 속 9위로 점프
韓, 7월 미‧중‧일‧러 무역 규모 급감

지난해부터 미국‧중국‧일본‧러시아 4국은 각각의 이유들로 경제적 갈등 관계에 놓였지만, 그 피해는 한국이 고스란히 흡수한 꼴이 됐다. 지난해 세계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한국은 2년 만에 10위 자리에서 물러나 13위로 밀려났다. 반면 다양한 경제 제재를 받아온 러시아는 9위로 점프했다. 한국은 7월 들어 미·중·일·러와의 수출입이 모두 급감하는 등 경제적으로 고립되는 모습을 보여 우려된다.

지난 7월 5일 열린 2023년 무역안보의 날 기념식 모습. [사진=뉴시스]

■ 한-러 자리바꿈=한국은 지난해 세계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3계단이나 뒷걸음질쳤다. 한국은행은 12일 지난해 한국의 명목 GDP가 1조6773억 달러로 전 세계 13위였다고 밝혔다. 한국은 2005년 처음으로 GDP 세계 10위를 기록한 후 10위권 밖에 머물다가 2018년 다시 10위로 상승했다. 한국은 2020년, 2021년 연속으로 10위를 기록한 바 있다.

지난해 세계 GDP 순위에 큰 변동이 있었던 건 아니다. 1~7위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영국, 인도, 프랑스로 2021년과 같았다. 러시아가 9위로 약진하고, 한국이 3계단이나 미끄러진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이런 결과는 지난해 달러 강세와 원자재 수출국의 약진이란 변수만으론 설명할 수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6월 16일 열린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 경제 포럼'에 참석해 러시아가 지난해 이뤄낸 경제 성장이란 과실을 1시간 이상 연설했다. 푸틴 대통령은 "올해 4월 러시아 GDP는 전년 동월 대비 3.3% 늘어났고, 올해 1.5~2%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러시아가 0.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푸틴은 1~4월 러시아의 제조업 생산량이 2.9% 증가했고, 같은 기간 건설 물량도 7.4% 늘어났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여겨졌던 밀 수출도 2016년 이후 지켜온 세계 수출량 1위 자리를 고수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지난해 밀 수출량은 역대 최대였다. 푸틴은 러시아의 지난해 수출이 금액 기준으로 10년 만에 최대인 5920억 달러를 기록했고, 올해 1~4월 무역수지도 226억 달러 흑자였다고 밝혔다.

■ 러시아 성장의 비밀=독일의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지난 7월 6일 'EU의 러시아 경제 제재는 어떻게 실패했나'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조지아(공화국)의 코카서스 산맥 인근 국경 검문소에 수 ㎞에 걸쳐 줄지어 서있는 대형 화물트럭들을 비추며 시작한다.

공식적으로 조지아는 유럽연합(EU)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를 이행하고 있는 나라다. 러시아 수출을 금지한 품목은 석유 생산시설 관련 부품, 드론, 첨단 반도체 등 다양하다.

하지만 DW 취재진 카메라는 이 국경을 10분에 한번꼴로 지나다니는 녹색 대형 쓰레기차를 포착했다. 조지아 국경 검문소 측은 쓰레기차는 검문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DW 취재진도 이 쓰레기차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EU의 대러시아 제재가 실패했다고 단언한 이유는 따로 있다. 지난해 러시아 경제가 다른 어떤 유럽 나라들보다도 큰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EU는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러시아 경제 제재를 시행했다. 그런데 제재로 인해 석유‧천연가스는 물론, 밀 등 곡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이익을 본 것은 러시아였다. 통계가 증명한다. 앞서 언급했듯 러시아는 여전히 밀 수출 1위 국가다.

블룸버그는 12일(현지시간) 설립된 지 1년밖에 안 된 러시아 곡물회사 '그레인 게이츠'가 지난해 밀 700만t을 수출했는데, 이는 지분 매각이라는 방법으로 러시아가 제재를 우회한 것이라는 뉘앙스의 기사를 게재했다.

서방의 러시아 제재 최우선 순위였던 석유도 밀과 마찬가지였다. 러시아의 원유 공급량은 줄었지만, 가격이 급등하며 이익은 오히려 늘어났다. 제재의 효과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올 3월에야 가시화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러시아의 올해 3월 원유 수출량이 하루 평균 810만 배럴로 늘어났지만, 원유 판매 수익은 러시아 원유 가격상한제의 여파로 전년 동월 대비 43% 감소한 127억 달러였다고 밝혔다.

■ 한국 경제의 고립=IMF는 올해 세계 경제 전망을 발표하면서 주요 국가들의 성장률 전망치는 상향 조정했지만, 한국 전망치는 하향 조정했다. IMF는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0%에서 1.7%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은 주요 무역 상대국인 중국‧미국‧일본‧러시아를 상대로 수출입 모두 급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1일 관세청의 '7월 1~10일 수출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대중對中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6%, 수입은 -16.8%를 기록했다. 대미對美 수출은 -9.0%, 수입은 -17.5%였고, 대일對日 수출은 -20.8%, 수입은 –18.6%였다.

한국의 러시아 수출은 제재 영향으로 지난해 30% 이상 급감했고, 7월 1~10일 수입도 23.5%나 축소됐다. 한국은 그간 러시아 제재, 중국 반도체 디리스킹을 충실히 이행했다. 하지만 주요 4개국은 미국과 중국, 일본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 등으로 사안에 따라 나뉘며 극심한 갈등을 겪었고, 그 피해는 한국이 흡수한 셈이 됐다.

파이낸셜타임스 등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은 지난 4월 우리 대통령실에 "중국이 마이크론 제품을 판매 금지해도 한국 반도체 회사들이 중국 판매를 늘리자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반면 현대차는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서구권 기업들처럼 올 4월 러시아에서 철수했는데, 그 자리를 중국 자동차회사들이 그대로 꿰찼다. 전쟁 전 기아와 현대차의 러시아 시장 판매량은 각각 2위, 3위였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러시아는 올 들어 5월까지 중국차 28만7000대를 수입하며 중국 자동차의 1위 수입국이 됐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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