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해석이 안돼요"...국제수학올림피아드 직접 체험해 보니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는 재밌는 전통이 있다. 학생을 제외한 각국 부단장을 포함한 참석자들이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는 시각과 같은 시각에 똑같은 문제를 풀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는 것이다. 학생과 마찬가지로 이 공간에 들어오면 시험이 끝날 때까지 절대 나갈 수 없다. 학생들은 2일에 걸쳐 하루당 4시간 30분 동안 3문제씩 푼다.
7월 2일부터 12일간 일본 치바에서 진행된 제64회 IMO에서도 학생들의 시험장 옆 공간 2곳에서 70여 명이 시험을 치렀다. 이들이 굳이 4시간 30분을 이곳에서 보내는 까닭은 단 하나. 문제 푸는 게 너무 재밌어서다.
기자도 IMO 시험 둘째 날 이곳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시험을 봤다. 학생들은 오전 9시부터 봤다. 시험지는 달랑 1장이었다. 풀이를 적을 수 있는 종이는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었다. 영어로 적힌 시험지와 종이 7장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은 들뜬 표정으로 시험지를 받고 자리에 앉아 바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기자는 일단 문제를 해석해야 했다. 수학능력시험(수능)을 본 기억을 더듬어 먼저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문제 마지막 부분을 정독했다. 학창시절 풀었던 문제와 비슷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첫 번째 문제 마지막에 ‘Prove that a2023 > 3034’라고 적혀 있었다. 답을 내는 게 아니라 증명하라니 수능 문제와는 전혀 다른 유형이었다. 두 번째 문제에서는 특정 값을 ‘찾아라’, 세 번째 문제에서는 또 ‘증명하라’라고 적혀 있었다.
기자의 실력으로 전혀 풀 수 없는 문제라 난감했다. ‘대충 앉아 있다가 나가자’ 생각했는데 진중한 모습으로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부끄러워졌다. 앞에 앉은 사람은 첫 번째 문제는 다 풀었는데 두 번째 문제가 영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문제에 등장하는 그림을 하나하나 그려보며 답을 찾기 시작했다. 기자도 그를 따라 계속해서 동그라미를 그려보았다.
그러다 보니 첫 번째 문제로 돌아가서 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숫자를 1부터 하나씩 대입해서 문제에 등장하는 식이 무엇인지 알아내 보려고 노력했다. 1, 2, 3, 4, 5…. 하나씩 숫자를 넣어보는데 달라지는 값이 신기했다. 어느덧 심취해서 30까지 넣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런데 기자 옆에 앉은 사람은 종이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1시간째 두 번째 문제를 노려보고 있었다. 미동도 없이 계속 문제만 보기에 ‘포기하지 말고 손이라도 바삐 움직이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더니 불현듯 “Got it(알았다)”, “Aha”하고 읊조렸다. 그때 갑자기 펜을 들더니 일필휘지로 수식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2장째 정신없이 쓰더니 너무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이 쓴 종이를 들춰봤다. ‘아, 저 기쁨을 즐기러 이곳에 온 거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시험을 치른 대부분이 막힌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이날 3번째 문제인 6번이다. 6번은 기하 문제로 이번 IMO 참가자 대부분이 0점을 받은 악명높은 문제다. 원래 IMO 6개 문제 중 3번과 6번이 어렵게 나오는데 유독 이번 6번 문제가 어려웠다. 기자와 같은 공간에 있는 대부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3번 문제를 읽고 또 읽는 모습이었다.
한국 IMO 대표팀의 학생들을 지도하는 주관 조교 자격으로 참가한 김홍녕 KAIST 수리과학과 3학년 학생도 이날 기자와 함께 시험을 치렀다. 김 씨도 세 번째 문제에서 막혀 있었다. 20분 만에 첫 번째 문제와 두 번째 문제를 모두 풀었는데도 말이다.
조용히 “언제쯤 풀 수 있어요?”라고 물으니 그는 “이 시간에 제가 풀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라고 답하면서도 2시간째 종이에 끄적였다. “못 풀 것 같다면서 왜 자꾸 끄적여요?”라고 질문하니 “재밌잖아요”라고 말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전해 보다가 해결되면 재미와 기쁨이 커진다는 말이다. 김 씨는 시간이 끝날 때까지 3번 문제를 골똘히 고민했다.
그렇게 2시간을 보내자, 집중력이 바닥났다. 4시간 반 동안 꼼짝 않고 문제를 풀려면 어마어마한 집중력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기자와 마찬가지로 집중력을 잃었는지 시험을 보는 사람들도 서로 문제를 푸는 방법을 토론하기 시작했다.
서로 방법을 공유하며 깔깔 웃기도 했다. 6번 문제를 푼 포르투갈 부단장 누노 미구엘 아랄라 산토스는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문제 푸는 방법을 알려줬다. 방법을 듣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단장에게 몰려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혼자 풀어보려고 이어폰을 귀에 끼고 집중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험 체험이 끝나고, 학생들의 시험 시간도 끝이 났다. 현재 참가자들의 시험 채점이 한창 진행 중이다. 지난해 2위를 기록한 우리나라 대표팀은 올해도 3위 안에 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종 결과는 오늘 발표된다.
[치바시(일본)=이채린 수학동아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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