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내비(NAVI)의 역효과

2023. 7. 1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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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 내비게이션(navigation)을 줄여서 쓰는 말이다. 길에서 필요한 내비와 같이 인생에서 필요한 내비도 있다. 유치원과 초·중·고, 대학도 큰 틀에서 그렇게 볼 수 있고 각종 학원도 내비이며, 온라인으로 된 내비도 다양하다.

우선 '길에서'의 내비를 보자. 운전 시작 전에 내비는 하나 또는 복수의 경로를 알려주면서 소요 시간을 제시해준다. 최종 경로 선택은 운전자가 하게 되지만 보통 우리는 내비의 제안 경로를 믿고 그 도움을 따라 운전하곤 한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다 보니 점점 더 차량과 길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지 않으며 아예 관심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 내비의 안내 목소리가 없으면 운전이 불안해지기도 한다. 큰 종이 지도 위에서 전체 경로를 보고 길 위의 표지판을 같이 활용하고 확인하여 목적지에 도달했던 기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내비는 편하지만 이론적으로 문제가 있다. 내비가 안내해 준 최적의 경로는 동일 시점 타인이 검색을 해도 비슷하게 나오게 되며, 최단경로는 운전자들의 동시다발적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제안된 최적의 경로가 최적이 아닐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현상을 정보의 역효과라 한다.

'인생에서의' 내비는 이러한 길에서의 역효과에 비해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 5분, 10분 늦을 수 있는 것이 길에서 내비의 문제라면, 후자의 경우는 목적지가 잘못되거나 5년, 10년 늦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요즘 교육 카르텔과 킬러문항이 사회적 이슈지만, 핵심은 각자의 수험생이 자신의 자질과 재능과 취미 등을 도외시한 채 모두가 특정 분야(의대나 컴퓨터 전공 쏠림 현상)에만 진학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의 유지에는 다양한 학문 분야가 필요하다. 물론 보수 격차를 줄이고 사회에서 필요한 분야를 골고루 발전시킬 정책도 필요하다. 선진 교육 현장에서는 유치원은 '줄서기 등 타인에 대한 배려에 집중'하고, 초·중·고교는 자신이 무엇을 재미있게 평생 잘할 수 있는지를 아는 과정에 집중한다. 자신의 재능을 확인한 후 대학에 진학해 다양한 학문을 접하면서 다양한 인생 경로가 존재하는 것을 인지하고 더 이상 하나의 길에 의존하면서 내비에서 보듯이 정보의 역효과에 희생되지 않으려는 점이 교육의 지향점인 것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개성과 특이성(singularity)의 상실, 쉬운 부화뇌동은 물론이고, 학문 융합의 미진함과 어려움, 다양한 외국인과의 조화롭지 못한 삶, 지식과 지혜를 동시에 추구하지 못하는 삶, 자신의 발전과 사회의 진보에서 자족의 철학이 부족한, 그리고 이를 동시에 추구하지 못하는 삶. 이 모두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지 못하는 하나의 내비에 의존하는 우리 사회에서의 슬픈 단면이다.

인생에서의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고 옳은 인생 경로를 보여주며 그 방향으로의 대안 경로를 마련하는 '교육내비', 포용을 지향하는 세대 및 계층 간의 '소통내비'. 우리 사회에는 과연 있는 것일까? 다양한 가치에 기반한 다양한 경로가 있는 것을 과연 우리의 유치원, 초·중·고, 그리고 대학에서의 교육은 알려주는가? 너무 내비에 의존하지 말자.

[최기주 아주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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