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사퇴로 공전된 ‘문화계 블랙리스트’ 재판, 2년 6개월만에 열려
피고인들 “우리 책임 없이 재판 지연”
이른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수사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파기환송심이 12일 열렸다. 이 사건을 수사·기소한 박영수 특검이 ‘가짜 수산업자’ 사건에 연루돼 사퇴하면서 재판이 공전된 지 2년 6개월만이다.
서울고법 6-1부는 12일 김 전 실장 등에 대한 파기환송심 재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는 김 전 실장을 비롯해 이 사건 피고인인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비서관, 김소영 전 교육문화체육비서관, 김종덕 전 문체부장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정관주 전 문체부 차관 등 박근혜 정부 청와대 장·차관, 수석비서관 7명이 모두 출석했다.
김 전 실장은 문체부 1급 공무원에 사직을 강요하고 좌파 성향 문화·예술단체에 대한 지원을 배제한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 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조윤선 전 장관은 1심에서는 일부 위증 혐의만 인정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는 징역 2년이 선고돼 법정구속됐다. 두 사람은 현재 구속기간 만료로 모두 석방된 상태다.
대법원은 2020년 1월 이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김 전 실장의 경우 한국문화예술위 등 문체부 산하 기관 공무원들이 지원배제 명단을 송부한 부분 등에 대해서는 법리상 직권남용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또한 김 전 실장의 퇴임 이후 행위에 대해서도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직권남용’ 성립 여부를 엄격하게 본 것이다.
하지만 2021년 1월 한 차례 파기환송심이 열린 후 재판은 멈춰 있었다. 박 전 특검은 2021년 7월 가짜 수산업자 사건에 연루되면서 특검에서 사퇴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 (국정농단특검법)은 일반 검사가 아닌 특검에게만 수사 및 공소유지 권한을 부여하고 있었다. 특검이 없이는 재판을 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국정농단 사건의 수사 및 재판이 대부분 마무리되면서 후임 특검은 임명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2021년 1월 징역 20년형이 최종 확정됐고 이후 사면도 이뤄졌지만 김 전 실장 등은 재판이 멈춰 있었다. 그러다 작년 12월 특검법이 개정되면서 후임 특검이 아닌 관할 검찰청의 검사장이 사건을 승계하도록 하면서 12일 파기환송심이 열렸다.
이날 재판에서 김 전 실장 변호인은 “피고인의 책임이 아닌 다른 여러 사정으로 재판이 미뤄져 왔기 때문에 앞으로 재판에서 우리가 주장하는 부분을 배려해 달라”고 했다. 김 전 실장 측은 사건의 실체를 설명하기 위한 프리젠테이션 기회를 줄 것을 요청했다. 김소영 전 수석 변호인도 “대법원의 법리적 판단에 대해서는 수용한다”며 “상당 기간 피고인 책임 없이 재판이 지연된 점을 고려해서 가능한 조기에 마무리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재판부는 “사건이 말씀하신 대로 여러 가지 이유로 심리가 지연됐는데 말씀하신 사정을 고려해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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