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존엄사' 법안발의 1년…"웰다잉 vs 자살" 찬반 여전

백영미 기자 2023. 7. 1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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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주최 조력존엄사 토론회 열려
"호스피스 확대·의료보험 개선 등 필요"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12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조력존엄사(의사조력자살)의 인권적 쟁점과 대안에 관한 토론회에서 좌장을 맡은 박찬운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언을 하고 있다. 2023.07.12. hwang@newsis.com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원하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 존엄사(의사조력자살)' 법안이 발의된 지 1년을 맞았다. 여전히 찬반 의견이 팽팽한 가운데, 품위 있는 죽음(웰다잉)이 제대로 정착하려면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한 호스피스 확대 등 사회적 안전망 확대가 시급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조력존엄사(의사조력자살)의 인권적 쟁점과 대안에 관한 토론회가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12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10층 인권교육센터에서 열렸다.

회복 불가능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스스로 삶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찬성 의견과 죽음을 권리로 보장해 달라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침해하는 비윤리적 행위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는 반대 의견으로 갈렸다. 하지만 조력존엄사법 입법에 앞서 호스피스 확대, 의료보험 제도 개선 등 사회적 안전망 확충이 우선돼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조력존엄사 입법화 추진을 통한 사회적인 웰다잉 논의가 필요하다며 사회적 안전장치 마련, 호스피스·연명의료결정 확대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윤 교수는 "국가는 품위있는 삶과 죽음을 공동체적으로 돌볼 책임이 있다"면서 "규제 중심의 연명의료결정과 '협의의 웰다잉'(호스피스 및 연명의료 결정)에서 벗어나 국가적 차원에서 '광의의 웰다잉'(호스피스·연명의료 결정 확대·독거노인 공동 부양 등)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대전환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력존엄사 입법화 부작용을 막기 위한 사회적 안전장치 마련, 호스피스·연명의료결정 확대, 광의의 웰다잉 법제화 조력존엄사 법안 심의와 병행, 광의의 웰다잉 문화 조성 기금 마련이 필요하다"면서 "종교인들은 환자의 호스피스 선택 제한이라는 인권 침해를 해소하기 위한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효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은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말기 환자에 한해 조력존엄사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의료보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연구관은 "이미 연명의료중단 논의에서 스스로 인생을 마감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져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면서 "다만 의사조력자살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의료보험 제도를 개선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 특히 대부분의 중증 환자의 경우 가족이 부담해야 하는 간병비와 같은 재정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이어 "우리나라 의료보험 제도나 사회적 안전망이 실질적으로 조력자살 오남용 방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갖춰져 있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독일처럼 특정 시기에 한정하지 않고 조력자살을 가능하게 하는 것보다 제도가 완비될 때까지라도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말기 환자에 한해 조력자살을 택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석배 단국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교수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강조하면서도 경제력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갖춰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임종기 이전 환자라도 의료 행위를 거부하는 경우 의사를 존중해야 하는 것은 자기 결정권의 핵심"이라면서 "환자의 상태와 관계없이 자기 결정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것부터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선 의료비 때문에 가족이 연명의료중단을 요청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의료비 걱정 없이 연명의료 지속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했다.

반면 박은호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은 해외에서 조력존엄사를 법제화한 사례들이 있긴 하지만, 조력존엄사는 인권 향상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며 입법을 반대했다.

박 소장은 "발전된 국가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받고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쉽게 삶을 포기하거나 도구화되지 않는다"면서 "의사조력자살과 안락사를 마지막까지 법제화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나라의 전통과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39개 주에서 아직 의사조력자살은 불법"이라면서 "유명인의 의사조력자살이나 미국의 11개 주가 의사조력자살을 법제화했다는 것이 의사조력자살을 법제화해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탈리아가 조력자살을 허용했다고 하지만, 1978년 이후 가톨릭은 더 이상 이탈리아의 국교가 아니고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교황청의 입장 역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율리 도쿄대 박사(사생학·생명윤리전공)도 "의사조력자살이 허용되면 애초 취지와 달리 최후수단이 아닌 조기개입 수단으로 변질될 우려가 충분히 있다"며 조력존엄사 입법화를 반대했다. 그러면서 말기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고 언급했다.

김 박사는 "말기 환자에 대한 의료시설, 재정적 지원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서 과연 의사조력자살이 선택 가능한 치료가 되어도 되는가, 자살이 환자가 합법적으로 의료체계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되어도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조력존엄사 입법 추진에 앞서 사회적 공론화가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백수진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생명윤리센터장은 "사회적 공론화가 없는 성급한 법제화는 우리 사회 또는 국가의 안전망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돌봄을 제공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인권의 사각지대만을 양산하게 될 것이라는 비판과 우려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positive10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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