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폐 직장인'부터 아랍 왕자까지…'킹더랜드'의 로맨스가 짓밟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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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받은 상처로 웃음을 싫어하는 재벌 2세 남자 주인공과 2년제 대학 졸업자란 이유로 직장에서 차별과 핍박을 받지만 꿋꿋하게 버티는 '캔디형' 여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다.
'K직장인의 적은 동료'라는 갈등 구조에 더해 재벌 2세와 사랑에 빠지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수동적 여성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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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 폭탄에도 빠른 전개에 장르물 지친 눈길 잡았지만
'K직장인의 적=동료' 구시대적 접근·아랍 문화권 몰이해 논란도
어린 시절 받은 상처로 웃음을 싫어하는 재벌 2세 남자 주인공과 2년제 대학 졸업자란 이유로 직장에서 차별과 핍박을 받지만 꿋꿋하게 버티는 '캔디형' 여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다. 여자 주인공이 위험에 빠질 때마다, 마치 판타지처럼 재벌 2세는 '왕자님'처럼 나타나 돈과 권력으로 모든 상황을 정리한다. 20년 전 방영된 SBS '파리의 연인'(2004) 줄거리가 아니다. 지난 9일 최고 시청률(12.3%, 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을 기록한 JTBC '킹더랜드' 이야기다.
시대착오적 로맨스에 문화 왜곡 논란까지
이 드라마가 지향하는 지점은 뚜렷하다. 구원(이준호)과 천사랑(임윤아)의 로맨스. 문제는 이 로맨스를 성공시키기 위해 현실을 왜곡하는 설정들이다. 구원은 헬기를 타고 낙하산으로 첫 출근을 하는 것도 모자라 천사랑이 산에서 조난당하자 헬기를 띄우고 절벽에서 몸을 던져 그녀를 구한다.
일터에서도 재벌 2세의 보호는 계속된다. 회사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온 천사랑에게 동료들이 "종일 놀고먹고 세상 참 불공평하다"면서 뒷정리를 떠넘기면 구원이 등장해 도와주는 식이다. 'K직장인의 적은 동료'라는 갈등 구조에 더해 재벌 2세와 사랑에 빠지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수동적 여성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셈이다. 천사랑은 동료들 사이 시기와 질투를 받으며 민폐덩이로 여겨진다. 황진미 대중문화 평론가는 "천사랑과 같은 감정 노동자가 처한 잔인한 현실이 존재하는데도 '캔디형 여자 주인공이 왕자님과 사랑에 빠진다'는 식의 납작한 전개는 너무나 철이 지난 이야기"라며 "지난 몇 년 사이 나온 여성 서사 드라마들에서 겨우 벗어났던 신데렐라 스토리를 반복한 로맨스 서사의 후퇴"라고 꼬집었다.
무리한 설정뿐 아니라 타 문화 왜곡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극에는 주인공들과 삼각관계를 형성한 아랍 왕자가 등장했다. 그는 술집에서 여성들에게 둘러싸인 채 유흥을 즐기는가 하면, 천사랑에겐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진다. 심지어 이 역할은 인도 출신 배우가 맡았다. 지난 10일 미국 콘텐츠 리뷰 사이트 IMDB엔 "아랍인들이 언제부터 술에 돈을 썼느냐. 종교에서 모두 금지돼 있다", "아랍 문화를 무시하고 있다"는 등 질타가 쏟아졌다. 넷플릭스 TOP 10 TV 부문(비영어) 1위(6월 26일~7월 2일 기준)를 차지하는 등 글로벌 인기도 얻고 있는 드라마라기엔 지나치게 허술한 연출이다. '킹더랜드' 제작진은 12일 한국일보에 "등장인물과 지명 등은 가상의 설정이며 특정 문화를 희화화하거나 왜곡할 의도는 없었다"면서 "다양한 문화를 존중해 불편함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논란에도 왜? 빠른 전개에 장르물 피로도 쌓인 시청자들 공략 주효
그럼에도 '킹더랜드'는 입소문을 타고 상승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이를 두고 그간 K드라마를 휩쓸던 장르물에 대한 피로도가 쌓인 결과란 분석이 나온다. 앞서 JTBC '닥터 차정숙'과 tvN '일타 스캔들' 등 코미디와 로맨스를 섞은 가벼운 터치의 드라마들이 인기를 끈 맥락과 맞닿아 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현실이 답답할수록 도피처를 드라마에서 찾는 시청자들에게는 의도된 오글거리는 대사마저도 더 몰입하게 만드는 포인트가 되는 것"이라고 짚었다. 개연성 없는 생략된 전개는 오히려 몰아보기와 숏폼에 익숙한 시청자를 겨냥한 포인트가 됐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클리셰'란 바꾸어 말하면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내용들"이라면서 "'킹더랜드'는 클리셰를 속도감 있게, 불필요한 것은 빠르게 편집하는 영리한 방식이라 반응이 더 좋은 것"이라고 흥행 비결을 짚었다.
이근아 기자 ga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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