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는 벌써 물에 잠겼다···여름이 두려운 ‘낮은 곳’ 사람들

전지현·이홍근 기자 2023. 7. 1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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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호우’ 재난문자 발송된 날
물막이판 설치 등 방재했지만
반지하선 물 들어차 ‘무방비’
지난해 8월 폭우로 반지하에서 사망자 발생했던 동작구 상도동 반지하 맞은편 집에 집주인 최모씨(87)가 물막이판을 설치하고 있다. 전지현 기자

‘극한호우’라고 했다. 지난 11일 오후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된 서울 동작구·구로구·영등포구 일대에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졌다. 직장인들이 집에 갈 채비를 서두르던 시각, 최모씨(87)는 우산을 챙겨 서둘러 집을 나섰다. 최씨가 비를 뚫고 향한 곳은 동작구 상도동의 한 빌라였다. 이날처럼 많은 비가 한꺼번에 쏟아졌던 지난해 8월, 이 빌라의 바로 앞 건물 반지하에서는 50대 여성 A씨가 집에 물이 가득 찬 집에서 숨졌다. 이 빌라에는 최씨가 임대를 주고 있는 집이 있다.

“저기서 아주머니 한 분 돌아가셨잖아.” 앞집을 가리키며 먹먹하게 말하던 그는 아흔이 다 된 나이에도 퍼붓는 비를 다 맞아가며 물막이판을 설치하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서울에 기록적 폭우가 내렸던 지난해 8월 이후 11개월 만에 ‘극한호우’가 찾아왔다. 지난해의 악몽을 떠올린 시민들은 비가 그쳐도 불안한 마음까지 거두지 못했다.

지난 11일 동작구 상도동의 한 상가에 물막이판이 설치돼 있다. 전지현 기자

그래도 올해는 무방비 상태로 폭우를 맞았던 지난해와는 꽤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침수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가 심했던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1년간 방재 작업이 어느 정도 이뤄진 것이다. 동작구 곳곳에는 물막이판을 설치한 주택이나 건물들이 눈에 띠었다. 지난해 침수피해를 입은 상도동의 한 슈퍼 사장 장모씨(41)는 “작년이었으면 도로가 벌써 잠겼을 텐데, 하수구 청소가 잘 됐는지 올해는 물이 잘 빠지는 것 같다”며 “걱정을 덜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형상 저지대인 상습침수구역에 위치한 시민들은 “비가 작년처럼 내리면 방법이 없다”며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11일 오후 집중호우로 범람한 서울 구로구 도림천 전광판에 진입불가 안내문구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공장이 침수돼 1억원 가까이 피해를 입었다는 이병훈씨(71)도 이날 공장 미닫이문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는 내내 하늘을 살피고 있었다. 이씨의 철공소는 도림천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으로 문래동 철공소 단지 중 가장 지대가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씨는 “비닐로 틈을 막아도 물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소용이 없다”면서 “배수 펌프장을 만들든, 물을 막을 수 있는 옹벽을 설치하든 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잠기는 걸 보고 있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씨는 도림천 방향을 바라보며 “비가 올 때마다 계속 불안한 마음이 드니 높은 지대로 이사를 해야겠다”고 했다.

동작구 일대에 극한호우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된 지난 11일 오후, 동작구 상도동의 한 반지하 집이 침수피해를 입었다. 전지현 기자

저지대 중에서도 반지하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폭우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동작구 상도3동의 한 골목에 있는 반지하집 여러 곳에는 이날 물이 들어 차 한바탕 난리를 겪고 있었다. ‘극한호우’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된 오후 4시 이후, 서모씨(69) 가족이 거주하는 방 두 칸·화장실 한 칸짜리 반지하 집에는 물이 발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서씨는 “빗물이 바깥에서 들이치고 변기에서도 물이 역류했다”고 했다.

같은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한 반지하에 거주하는 이모씨(43)도 마찬가지 피해를 입었다. 놀란 이씨는 동사무소에 달려가 물을 퍼내는 양수기를 가져왔다. 동사무소 직원들과 통장까지 나서 양수기 설치를 도왔다. 침수로 차단기가 내려가 전깃불이 꺼진 집에서 이들은 물을 퍼냈다. 들이친 물을 밖으로 빼내긴 했지만 여전히 바닥은 흥건했고 가구와 가전제품은 이미 침수된 채였다. 전등을 켤 수 없게 된 방문 앞에서 서씨는 “물막이판으로 앞을 막아도 벽돌 담장 뒤나 지붕에서 물이 쏟아지면 방법이 없다”고 했다. 지난 3월 이 집으로 이사온 서씨네 가족은 이런 물난리는 처음 겪었다고 했다. “아직 7월이잖아요. 오늘은 지인 집에서 묵기로 했지만, 여름 내내 이러면 어떻게 하나….” 서씨가 막막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동작구 일대에 극한호우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된 지난 11일 오후, 동작구 상도동의 한 골목의 반지하 집들이 침수피해를 입었다. 집집마다 양수기 호스가 연결돼 있다. 전지현 기자

같은 골목의 반지하 주민과 집주인들도 한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거나 골목을 서성였다. 지자체의 조치로 골목의 정화조에도 양수기 호스가 연결돼 있었다. 지난해 여름 폭우를 경험한 주민들은 “이 지역이 물이 모여드는 지형이라, 양수기로 물을 퍼내도 비가 그치지 않고 쏟아지면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민 이은자씨(44)는 “작년에는 물이 목까지 찼었다”며 “모래주머니라도 더 둬야 하나. 계속 밖을 살펴봐야겠다”고 했다.

다행히 이날은 오후 6시를 넘기며 비가 잦아들어 더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그래도 극한호우 문자메시지를 받은 이 일대 주민들은 불안한 눈길로 동네 곳곳을 살폈다.

구로구의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에서는 한 시민이 팔 길이만 한 나뭇가지를 들고 막힌 빗물받이를 뚫고 있었다. 이 지역도 근방에 도림천이 있어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지역이다. 배수구를 뚫고 있던 김형제씨(72)는 “비가 많이 오는 날에 빗물받이가 막혀있으면 통행이 불편하기도 하고, 반지하 같은 곳이 침수될 위험도 있다”며 “지나가다가 물이 고인 웅덩이가 보여 뚫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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