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시리아 구호 연장안 거부…알아사드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영국 BBC 특파원 인가 취소 등 언론 탄압도
평화를 강조하며 국제무대로 돌아온 ‘시리아의 학살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폭정이 계속되고 있다. 반군 거점인 시리아 북부에 대한 탄압은 현재진행형이고, 자신이 마약 밀매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를 내쫓는 등 권위주의 행태도 여전하다. 그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부여한 국제사회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는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서 시리아 북부 주민들을 위한 유엔의 구호 작전 9개월 연장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유엔은 시리아 내전이 한참이던 2014년부터 튀르키예 남동부 밥알하 등을 거쳐 시리아 북부로 식료품과 담요 등을 육로로 지원하는 구호 활동을 펼쳐왔다. 안보리는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정기적으로 재승인을 해줬다.
하지만 전날 안보리 승인 유효기간이 만료되자 서방과 러시아는 충돌했다. 미국과 영국은 1년 연장을 주장했다. 반면 러시아는 6개월 연장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결국 스위스와 브라질이 대안으로 제시한 9개월 연장안을 놓고 표결이 진행됐지만, 러시아는 거부권 행사로 이를 부결시켰다. 이어 러시아의 6개월 연장안이 투표에 부쳐졌고, 러시아와 중국만이 찬성표를 던져 이 역시 폐기됐다.
외신들은 이번 안보리 회의가 표면적으론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줄곧 이어진 서방을 향한 러시아의 몽니처럼 보이지만, 이면엔 러시아를 등에 업은 알아사드 대통령의 ‘검은손’이 있다고 분석했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2011년 내전 발발 이후 러시아 정부의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았고, 러시아도 시리아를 중동 진출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뉴욕타임스(NYT)는 “서방과 러시아는 물밑에서 계속 협상을 해왔다”며 “러시아는 시리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 완화 없이는 재승인이 어렵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여전히 시리아 북부에서 활동하는 반군과 반정부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알아사드 대통령이 러시아를 앞세워 구호물자 보급을 차단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로 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이날 표결 후 “원조 대부분이 테러리스트에게 흘러가고 있다”며 “유엔의 구호 활동은 일종의 쇼”라고 날을 세웠다.
이에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는 ”러시아가 불량배처럼 행동했다”며 “러시아가 내놓은 6개월 연장안은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시리아인들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시리아인들은 우리에게 의지하고 있다”며 “러시아가 선의로 협상 테이블에 돌아오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월 시리아 북부를 강타한 규모 7.8 대지진을 계기로 유엔과 시리아 정부가 개통하기로 합의한 별도의 경로를 통해 오는 8월 13일까진 구호품 지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시리아 북부로 향하는 유엔 구호품의 85%가 이날 러시아가 거부한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전달된다는 점에서 약 400만명으로 추산되는 주민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언론 탄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는 지난 9일 “거짓되고 편향된 보도를 한 영국 BBC 특파원과 카메라맨, 라디오 특파원의 인가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BBC는 지난달 알아사드 대통령이 마약 ‘캡타곤’ 밀매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보도를 한 바 있다.
BBC는 성명을 내고 “우리는 공정하고 독립적인 저널리즘을 제공해왔다”며 항의했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올해 발표한 세계 언론 자유 지수에서 시리아는 180개국 가운데 175위에 그쳤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내전 발발과 반정부 인사에 대한 고문, 무고한 민간인을 겨냥한 독가스 공격 등 갖은 만행으로 2011년 아랍연맹(AL)에서 퇴출당했지만, 지난 5월 12년 만에 재가입하며 국제무대에 복귀했다. 휴먼라이츠워치(HRW) 등 인권단체는 알아사드 대통령이 제대로 된 사과 없이 면죄부를 받았다고 비판했지만, 그는 지금까지도 잔혹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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