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병 39만원에 팔아요”…양주 인기 업고 성행하는 꼼수 ‘위스키 리셀’
불법 감추는 꼼수 위스키 리셀, 인터넷서 암암리에 성행
“글렌드로낙 21년 공병·빈 병 39만원에 팝니다. 자세한 내용은 채팅으로 하겠습니다.”
지난 10일 국내 한 중고 거래 플랫폼에 ‘빈 병’을 판다는 글이 올라온 지 몇분 만에 거래가 완료됐다. 글렌드로낙은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되는 200년 전통의 싱글몰트 위스키로, 21년산 면세점 판매가는 24만원 수준. 증류소가 1996~2001년 가동을 중단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작년 병입된 위스키 몸값이 치솟았다. 작년 병입된 술은 1996년 이전에 숙성된 원액으로 제조돼 숙성연수가 술병에 표기된 것(21년)보다 길어 소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게시물은 ‘공병’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실제로 거래가 이뤄진 건 마시지 않은 술이다. 주류 판매 면허가 없는 개인이 거래하는 것이 불법이니 공병이나 포장 상자를 판다고 글을 올린 뒤 문의하면 마시지 않은 술을 판매하는 전형적인 ‘위스키 리셀(resell·재판매)’ 방식이다.
최근 고가 주류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오랜 숙성이 필요해 공급량이 한정된 위스키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이런 상황을 악용해 불법인 위스키 리셀을 재테크 수단으로 삼는 경우 역시 늘고 있다. 애주가들 사이에서는 “술을 마시지도 않을 거면서 물량을 가져가 가격만 더 높인다”는 불만이 나온다.
◇ ‘불법’임에도 개인간 꼼수 주류 거래 성행
현재 리셀 시장에서 거래되는 술은 그렌드로낙 외에도 야마자키·맥켈란·히비키·발베니 등 다양하다. 모두 위스키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술이다. 그러나 개인 간 주류 거래는 엄연히 불법이다. 조세범 처벌법에 따르면 면허 없이 주류 등을 판매한 사람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에 공병 등을 판매한다고 글을 올린 뒤 실제로는 개봉하지 않은 술을 판매하는 방식의 꼼수 리셀이 늘어나고 있다. 한 중고 거래 플랫폼에는 야마자키 12년 공병을 36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직접 판매자에게 연락해 “빈 병이 아니라 마시지 않은 술을 파는 게 맞냐”고 묻자 판매자는 “그렇다”고 답했다. 야마자키 12년은 몇 년 사이 중국인들이 물량을 싹쓸이해 가격이 치솟은 술이다. ‘야마자키를 마시고 싶으면 일본이 아니라 중국으로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몸값이 높아지면서 2007년 5만원 안팎이면 사던 가성비 위스키가 최근 국내에서는 30만~40만원을 호가할 정도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에는 위스키 동호회 간판을 내건 ‘리셀방’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입자 1000명인 한 네이버 밴드에는 ‘위스키 같이 맛보고 나누자’는 설명과 달리 위스키 리셀이 이뤄지고 있었다. 위스키 사진·이름을 올려 문의하면 개봉하지 않은 위스키를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위스키는 히비키·아벨라워·스프링뱅크·아란·카발란 등 다양했다.
불법인 위스키 리셀이 성행하는 것은 공급량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 때문이다. 중장년층은 물론 MZ세대들 사이에서도 위스키가 유행처럼 번졌지만 물량이 부족해 매번 ‘오픈런’(매장 문을 열자마자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대기하는 행태) 사태가 빚어진다는 소식이 들리자, 술을 마시지 않을 사람들도 물량을 확보해 웃돈을 얹고 애주가들에게 되파는 재테크가 늘어난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 싱글몰트 위스키’라는 간판이 붙은 김창수 위스키의 경우 소비자가격은 22만~25만원 수준이지만, 지난 2월 오픈런 사태 이후 100만원 넘게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히비키 17년은 2018년 7월 단종 이후 품귀현상을 빚으면서 국내 리셀 시장에서 최대 100만원까지 거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애주가들 사이에서는 리셀러가 달라붙으면서 안 그래도 비싼 위스키 가격이 더 올랐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일부 리셀 업자들은 위스키를 박스째 사는 ‘박스 떼기’로 매점매석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위스키 시음을 취미로 하고 있는 직장인 이 모(33) 씨는 “컬렉터들이 비싼 돈을 주고서까지 술을 사는 건 어쩔 수 없다”면서도 “오직 되팔기 위해 술을 사는 건 엄연히 불법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위스키 품귀현상에 따른 리셀 시장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위스키의 경우 십수 년 이상 숙성을 해야만 판매할 수 있어 신발·가방처럼 수요가 폭발한다고 한번에 물량을 풀어 리셀 가격을 낮추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주류수입협회 관계자는 “리셀러들이 자신들 수익을 위해 가격을 더 높여 판매하면서 가격이 더 상승한 측면이 있다”며 “특정 에디션 위스키의 경우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수요·공급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니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위스키 특성상 숙성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필요하다고 한 번에 대량 생산할 수가 없다”며 “리셀을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고, 리셀을 통해 브랜드가 알려져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소비자·도매상·수입사에 따라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리셀 단속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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