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日서 비행장 짓던 조선인 노동자 3명 美공습에 숨져"

강민경 기자 2023. 7. 12. 16:0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7월 10일.

일본 간토 북부 도치기현에서 비행장 건설 공사에 동원됐던 조선인 노동자 3명이 갑작스러운 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사건 당시 일본 육군은 도치기현 도치기시의 한 마을에서 비행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마이니치신문은 아직 미군이 이 비행장을 왜 공습했는지 전말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민간 기록 통해 뒤늦게 사망 사실 알려져 2015년 추모비 건립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일제강점기 자료 공동 전시 '전쟁에 동원된 아동과 여성' 기자단 현장설명회에서 이영도 연구관이 자료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2020.8.13/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7월 10일. 일본 간토 북부 도치기현에서 비행장 건설 공사에 동원됐던 조선인 노동자 3명이 갑작스러운 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들의 78주기를 앞둔 지난 1일, 8년 전 세워진 추모비에 관계자들이 헌화했다고 보도했다.

사건 당시 일본 육군은 도치기현 도치기시의 한 마을에서 비행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현지에서 발견된 고문서에 따르면 이곳의 이름은 '시즈와 비행장'이었다. 미쓰비시전기가 군용 낙하산 시험을 위해 확보했던 소형 부지를 일본 육군이 사들였다.

본격적인 공사는 1945년에 시작됐고 지역 청장년층이 대부분 소집됐다. 개간과 정돈 등의 작업에는 징용 조선인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방공호와 격납고 등도 차츰 정비되고 시험 비행도 있었지만, 같은 해 여름 미군 비행기가 들이닥쳤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한 주민은 수기에 "공습은 7월 10일 아침 미 공군 함재기 3대가 저공 비행을 하며 폭탄을 투하한 뒤 기총소사하며 동쪽으로 사라졌다"는 글을 남겼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 주민은 "저녁에 비행장에 가 보니 기총을 맞은 사람이 있었고, 지름이 약 10여m가 되는 깔때기 모양의 폭격 흔적이 이곳저곳에 남아 있었다"고 회고했다.

시 여성사 연구회는 한 증언집을 인용해 "격납고를 (미군) 함재기가 폭격하러 왔다"며 "기총소사를 받아 1명이 사망하고 몇 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이후 조선인 징용에 관한 공문서가 공개되면서 도치기현 내 조일우호단체가 결성한 '도치기현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 조사단'이 1997년 조사에 착수했다. 이들은 인근 사찰의 기록 등을 토대로 조선인 노동자 최소 3명이 사망한 것을 뒤늦게 밝혀냈다.

사실이 확인되자 2015년 7월에 북한의 공민 단체인 조선총련(조총련)과 조일우호현민회 등이 추모비를 세웠다.

마이니치신문은 아직 미군이 이 비행장을 왜 공습했는지 전말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증언 기록을 보존하고 있는 후지오카시 역사민족자료관의 이시카와 유리코는 마이니치 인터뷰에서 "지금부터 사실을 파헤치는 건 어렵다. 지금 있는 자료를 정리해 다음 세대에 단서를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pasta@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