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의 와인 이야기] 이탈리아가 숨겨둔 보물에 부르고뉴 피노 누아를 잊었다
이탈리아 와인 생산 지역이지만 '독일어'를 쓰는 지역이 있습니다. 알토아디제라는 곳입니다. 이탈리아 최북단에 위치한 트렌티노알토아디제(Trentino-Alto Adige)라고 불리는 자치지역 중에 남부 트렌티노는 이탈리아어를, 북부 알토아디제는 독일어를 주로 쓴다고 합니다. 트렌티노알토아디제는 오스트리아 땅이었지만 1919년 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로 넘어가게 됩니다.
알토아디제 와인 중에서 칸티나 칼테른의 '피노 네로' 와인은 이탈리아 와인의 숨은 진주 같은 와인입니다. 피노 네로는 와인 포도품종의 왕이라 불리는 '피노 누아'의 이탈리아어입니다.
칸티나 칼테른은 알토아디제에서 가장 큰 협동조합형 와인 생산자입니다. 1900년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어 이후 세 개의 와이너리와 합병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총 590명의 포도 재배자로 구성된 칸티나 칼테른은 590명의 소유주가 있는데 한 명의 소유주당 축구장 하나 크기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1인당 소유한 포도밭의 면적이 비교적 협소한 사례는 알토아디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칸티나 칼테른은 클래식-셀렉션-퀸테센스-쿤스트.스튁 등 4개 등급의 와인을 생산합니다. 클래식은 여러 포도밭에서 나온 포도로 만든 가장 기본이 되는 와인입니다. 셀렉션 등급은 선별된 포도밭에서 만든 와인입니다. 퀸테센스(Quintessenz)는 최고의 와인을 목표로 가장 좋은 포도밭에서 엄선된 포도로 만드는데 제임스 서클링, 로버트 파커 등 평가자들로부터 95~97점의 높은 점수를 받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쿤스트.스튁(Kunst.Stuck)은 좋은 빈티지에만 생산하며 그해 가장 뛰어난 포도 품종으로 소량생산한다고 합니다.
칸티나 칼테른은 알토아디제의 토착 품종인 스키아바(Schiava), 라그레인(Lagrein)뿐 아니라 피노 누아, 카베르네 소비뇽, 피노 그리지오, 게부르츠트라미너, 샤르도네 등 다양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알토아디제 시음행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와인은 칸티나 칼테른 피노 네로 리제르바 잘트너 2020입니다. '리제르바'는 이탈리아에서 2년 이상 숙성된 와인에 붙인다고 합니다. 칸티나 칼테른의 '잘트너'라는 이름이 붙은 포도밭에서 만든 셀렉션 등급 와인입니다. 마틴 클래머 칸티나 칼테른 세일즈 디렉터는 "피노 네로는 까다로운 품종이다. 양조도 까다롭지만 최고의 맛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클래머 디렉터의 설명에 따르면 알토아디제는 피노 네로를 재배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에 비해 가격 대비 품질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한다면 아주 고급 품질의 부르고뉴 피노 누아와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다고 합니다. 칸티나 칼테른의 피노 네로는 불고기 등 한식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이탈리아 와인인 알토아디제의 '피노 네로'를 숨은 진주라고 표현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바롤로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부르고뉴 와인과 비교해 볼 때 알토아디제의 피노 네로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탈리아 와인하면 '왕의 와인, 와인의 왕'으로 불리는 바롤로 와인이 먼저 떠오릅니다. 피에몬테 지역에서 네비올로 품종으로 만드는 바롤로 와인은 정말 맛있는 와인이지만 10~20년 이상 숙성이 돼야 거친 타닌이 부드러워지면서 바롤로 와인의 진가를 맛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에선 올드 빈티지 바롤로 와인을 쉽게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 와인들도 바롤로 와인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생산된 지 얼마 안 되는 영 빈티지 부르고뉴 피노 누아는 그랑크뤼 기준으로 한 병에 200달러가 넘습니다. 영 빈티지 부르고뉴 피노 누아의 신선함과 산도를 즐기는 소비자가 있기는 하지만 그 가격을 주고 부르고뉴 피노 누아를 마시는 게 망설여지는 게 사실입니다.
칸티나 칼테른의 '피노 네로'와 같은 알토아디제의 '피노 네로'가 프랑스 부르고뉴 피노 누아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는 와인으로 평가됩니다. 실제 알토아디제 와인 시음 행사장에 나온 다른 알토아디제의 피노 네로는 부르고뉴 피노 누아와 견줄 수 있을 만큼 맛이 좋았습니다. 영 빈티지 와인도 지금 당장 마셔도 좋을 만큼 균형이 잘 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알토아디제 와이너리의 피노 네로는 유난히 거친 타닌감이 이질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피노 네로보다는 이탈리아 바롤로 와인에 사용하는 네비올로만큼이나 타닌이 많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캐릭터가 장점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습니다.
알토아디제의 '피노 그리지오'는 유럽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프리미엄 화이트 와인의 대명사입니다. 달콤하면서도 쌉쌀한 맛이 특징입니다. 뉴질랜드 말버러 지역 와이너리인 오이스터 베이가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을 세계적인 수준의 화이트 와인으로 올려 놓은 것처럼 알토아디제의 '피노 그리지오'도 조만간 세계적인 경쟁력을 입증할 기회를 가질 것으로 예상해 봅니다.
칸티나 칼테른의 피노 그리지오 2021은 과일맛의 신선함이 뛰어나 식전주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산물하고도 잘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가장 기본인 클래식 라인 와인으로 복합미는 떨어지지만 아주 심플하고 쉽게 마실 수 있는 와인으로 평가됩니다.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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