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부트’와 ‘재탕’ 사이···돌아오는 옛 방송들
내가 ‘회귀물’(과거의 한 시점으로 돌아가게 되는 콘셉트의 장르물)의 주인공이라도 된 걸까. 요즘 텔레비전 리모컨을 돌리는 시청자들이 하는 착각이다. 10~20년 전 인기 프로그램을 새롭게 부활시킨 ‘리부트’ 열풍이 방송가에 불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SBS였다. SBS는 지난 5월 신규 예능 <강심장리그>를 선보였다. 2009~2013년 방영됐던 토크 프로그램 <강심장>을 2023년 버전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당시 사회자였던 방송인 강호동과 가수 이승기를 MC로 내세우고, 다수의 패널이 등장해 입담을 뽐내게 하는 등 <강심장>의 유산을 착실히 이어받았다. ‘강심장’(베스트 토커)의 선정 방식을 방청객 투표에서 온라인 대국민 투표로 바꾼 것을 제외하면 기존 방송의 포맷과 콘셉트는 거의 그대로다.
지난 7일부터는 <마녀사냥 2023>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을 통해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2015년 12월 약 2년5개월 만에 막을 내린 JTBC 예능 <마녀사냥>의 세 번째 시즌이다. 지금은 흔해진 연애 상담 예능의 원조 격인 프로그램으로 종영 7년 만인 지난해 8월 돌아온 <마녀사냥 2022>에 이은 것이다. MC 신동엽을 비롯해 ‘그린라이트를 켜줘’ ‘시민 참여’ 코너 등 기존의 큰 틀은 그대로다. 차이라면 송출 플랫폼이 TV가 아닌 OTT로 바뀌면서 성적 표현 등이 보다 자유로워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8월 시즌 2 공개 직전 기자간담회에서 홍인기 PD는 “MZ 세대로 불리는 요즘 청춘들이 어떻게 연애하는지 언제 괴로워하는지 심층적으로 다뤄보고 싶었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엠넷(Mnet)은 2000년대 인기 프로그램 3개의 리부트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 오는 19일 처음 방송되는 <엠넷 리부트>를 통해서다. 일반인 최초 리얼 데이팅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몰았던 <아찔한 소개팅>은 <아찔한 소개팅 Z>로, 가수 서인영의 대학 체험기를 그린 <서인영의 카이스트>는 <채령 대학가다>(가제)로 재탄생한다. 가수 DJ DOC의 정재용이 진행했던 차트 프로그램 <재용이의 순결한 19>는 <풍자의 순결한 19>로 돌아온다.
엠넷 측은 “2000년대 예능 특유의 원초적 재미는 살리면서 2023년도의 새로운 구성을 더해 완전히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리부트한다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인기 프로그램의 부활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OTT 서비스의 보편화 등으로 인해 악화한 방송 제작 환경을 배경으로 꼽는 목소리가 많았다. 한 지상파 방송사 PD A씨는 “방송 플랫폼이 힘을 잃고 워낙 많은 콘텐츠가 범람하고 있어서 (새로 론칭한) 프로그램이 대중에게 각인되는 것조차 힘들어졌다”며 “그래서 이미 네임 밸류를 가진 프로그램을 다시 가져오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PD B씨는 “제작비 투자 대비 성과가 좋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검증된 포맷을 쓰는 게 맞다고 본다”면서도 “현재 PD들에게 10~20대 때 보고 자란 프로그램을 직접 재현하고 싶은 욕구도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높은 인지도와 검증된 포맷을 지닌 프로그램의 부활이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SBS <강심장리그>는 2023년 트렌드를 반영해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는 포부와 함께 출발했지만, 다수의 연예인이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기존의 토크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시청률도 2%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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