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소 도와달래서 1200만원 내고 왔는데…이게 뭡니까?”

조해람·김지환 기자 2023. 7. 1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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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약속 : 대우조선 파업, 1년 뒤(하)
숙련공에 적정임금 약속하며 데려왔지만
막상 오니…‘베테랑’ 용접공도 최저시급
“노동조건 개선 대신 ‘더 싼 인력’ 땜질”
지난 1일 경남 거제에서 스리랑카 출신 조선소 사내하청 용접공 A씨(40대)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조해람 기자

“제가 오히려 궁금한 게 있습니다.”

지난 1일 경남 거제에서 만난 스리랑카 출신 40대 용접공 A씨는 인터뷰 도중 기자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올해 초 조선업 E-7(전문취업인력) 비자로 거제의 조선소 사내하청업체에 들어와 일하고 있다. 정부가 조선업 인력 대책으로 E-7 비자를 대거 확대하면서 한국과 연이 닿았다.

그는 두꺼운 근육질 손을 펼치며 질문을 이어갔다.

“우리는 고국 조선소에서 10년도 훨씬 넘게 용접을 하다가 한국에 왔습니다. 자격증도 많고 다룰 줄 아는 기계도 다양하죠.”

비슷한 시기 E-7 비자로 입국해 거제 조선소 사내하청업체에 취업한 B씨(40대)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A씨가 계속 말했다.

“스리랑카에서는 (경력을 인정받아) 신입보다 몇 배는 많은 임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는 6개월차 초보와 똑같이 최저시급을 받고 있습니다. 이게 맞는 건가요?” A씨의 말이 끝나자 B씨가 덧붙인다. “여기서 반년 일했는데도 한국에 오기 위해 진 빚을 조금도 못 갚고 있어요. 반년 동안 공짜로 일한 기분입니다.”

“조선소 밖에서는 이 정도 숙련공이면 돈 더 받아요. 다른 스리랑카 출신 지인들도 그렇고요.” A씨와 B씨의 말을 통역하던 C씨(40대)가 거들었다. 그 역시 E-7 비자로 조선소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했다가 업체의 폐업으로 조선소 밖 부품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다른 데는 안 그런데, 이상하게 조선소 문만 들어오면 (임금이) 이렇게 되더라고요.”

지난달 28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옥포조선소에서 배들이 건조되고 있다. 조해람 기자

‘한국이 사람을 구한다’

A씨와 B씨, C씨는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됐을까.

장기 침체를 겪던 조선업은 2021년쯤부터 다시 호황을 맞았지만, 정작 조선소엔 배를 만들 사람이 없었다. 생산 대부분을 담당하던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떠났기 때문이다. 조선업이 불황에 빠졌던 7년 동안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은 30%가 삭감됐다. 위험하고 힘든 노동에도 급여가 최저임금 수준으로 고정된 탓에 많은 숙련공이 일을 그만뒀다. 2015년 조선업계에서는 18만7652명이 일했는데 2021년 그 수는 9만9858명으로 반 토막이 났다.

정부와 업계는 떠난 숙련공들이 되돌아오도록 하청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대신, ‘더 값싼 인력’을 대거 들이기로 했다. 한 축은 일당을 높게 쳐 주는 대신 고용이 불안정한 재하도급(물량팀·아웃소싱)이었다. 다른 한 축은 이주노동자였다.

정부는 이주노동자 도입을 계속 확대했다. 2022년 4월, 정부는 조선소 용접공·도장공의 E-7 비자 할당 인원수를 폐지하고 내국인의 20%까지 고용을 열어 줬다. 지난 1월에는 이 비중을 30%까지 늘렸다. 2023년 4월 E-9 비자(비전문취업) 2만5000명 중 5000명을 조선업에 배정했고, 2020년 약 2000명이던 E-7 비자 인력 쿼터는 지난 6월 3만명까지 늘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적어도 쿼터가 부족해서 외국인이 못 들어온다는 얘기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숙련공인 E-7 인력에게 전년도 국민총소득(GNI)의 80%에 해당하는 임금을 주도록 하는 규제도 완화했다. 중소·벤처·비수도권 중견기업에 한해 GNI의 70%까지 임금을 내릴 수 있도록 허용했다. 지난해 기준 GNI의 70%는 연 2954만원(월 약 246만1700원)으로, 월 소정근로시간인 209시간으로 환산하면 시급은 약 1만1778원이다. 조선소 하청 숙련공의 평균 시급(1만1660원)과 비슷하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울산시 현대중공업 영빈관에서 열린 조선업 원하청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조선소가 사람을 구한다.’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퍼진 소문은 스리랑카의 한 조선소에도 밀려들어 왔다. 스리랑카는 코로나19로 인한 관광산업 붕괴와 경제정책 실패,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로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았다. 총리가 경제 파산을 공식 선언했고, 분노한 시위대는 대통령궁을 점거했다. 시민들은 부패 대통령을 끌어내렸지만 파탄 난 경제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경제위기로 생계가 어려워진 스리랑카의 숙련공들은 한국으로 눈길을 돌렸다. A씨와 B씨, 이미 한국에서 몇 년 일해본 C씨는 스리랑카 에이전시의 문을 두드렸다. “스리랑카는 지금 이코노미(경제)가 너무 안 좋아서 사는 게 힘들어요. 빨리 한국에 오고 싶어서 비자랑 서류도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C씨가 말했다.

오랫동안 배를 만들어 온 이들에게 ‘기량 테스트’는 큰 어려움이 아니었다. ‘돈’이 가장 큰 문제였다. 에이전시에 내야 할 수수료만 한화 약 1200만원, 항공료는 별도였다. A씨와 B씨는 은행에 집을 담보로 맡기고 대출을 받았다. 집과 차를 팔아서까지 한국에 온 이들도 있다고 했다.

생계를 위해 고국을 떠난 가장들은 인천공항에 도착해 거제행 버스에 올랐다. 스리랑카에서만 최소 180명 이상이 한국 정부를 믿고 거제에 왔다. 조선소에서 일하면 한국에 올 때 진 빚을 갚으면서 가족의 생계도 잘 챙길 수 있을 거라고 모두 믿었다.

임금명세서는 그 믿음을 배신했다.

지난 1일 경남 거제에서 스리랑카 출신 용접공 A씨(40대)와 C씨(40대)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조해람 기자

데려올 땐 ‘적정 임금’, 막상 오니 ‘최저임금’

A씨와 B씨, C씨는 숙련공으로서 ‘GNI의 70%(2022년 80%)’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업체들은 연장노동을 포함하는 ‘꼼수’로 서류상 금액만 기준에 맞췄다.

A씨와 C씨가 지난해 스리랑카에서 작성한 근로계약서에 월급은 GNI의 80%인 ‘270만원’으로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 금액은 기본급 191만4400원과 연장수당을 더한 금액이다. 기본급은 최저시급인 9620원으로 계산됐다. 여기에 정해진 연장근무 월 52시간을 더해서 추가수당 70만원을 붙여야 270만원이 되는 구조다.

즉 실제 이들의 ‘통상임금’은 올해 완화된 GNI 70%(월 약 246만1700원·시간당 약 1만1778원)에도 한참 못 미치는 최저임금이다. GNI 기준은 기본급으로 맞추는 것이 원칙이다. 법무부는 “임금 요건 심사 시 원칙적으로 기본급을 기준으로 요건을 충족해야 하며 예외적으로 통상임금도 인정한다”고 했다. 하지만 해당 업체들은 비정기적 수당인 연장노동수당으로 해당 기준을 맞춘 ‘꼼수’를 썼다. 숙련공에게 약속된 월 270만원은, 근로계약서에 적힌 ‘주 5일 하루 8시간’으로는 절대 벌 수 없다.

A씨와 C씨가 한국에서 새로 쓴 근로계약서에는 ‘통상임금’이 월 270만원으로 돼 있다. 법무부의 임금 심사 기준을 통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이들은 스리랑카 근로계약서 기준대로 최저시급과 연장노동수당을 받고 있다.

지난달 28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옥포조선소에서 선박들이 건조되고 있다. 조해람 기자

업체에 일이 없으면 휴업수당도 받지 못해 수입이 깎인다. 조선소의 악명 높은 ‘무급 데마찌(무급휴업)’다. 근로기준법상 휴업수당을 줘야 하지만 조선소에서는, 특히 이주노동자에게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A씨는 약 150만원만 받은 달도 있었다. 이들이 통상 본국에 매달 50만~60만원을 송금하는 것을 고려하면 한국에서 월 100만원으로 생활해야 한다. 원청-사내하청-재하청이라는 ‘삼중구조’에 이주노동자까지 더한 ‘사중구조’다.

반대로 일이 많으면 꼼짝없이 장시간 야근·특근을 해야 한다. 주말도 없이 매일 10시간 이상씩 일한다. 사장의 눈 밖에 나면 재계약을 하기 어려우므로 이들은 장시간 노동을 감내한다. “조선소 일 힘든 거 알고 오긴 했어요. 그런데 힘든 만큼 월급을 줘야죠.” A씨의 말이다.

적은 임금만큼이나 힘든 점은 언어 소통이다. 외국 인력을 ‘빨리빨리’ 공급하는 과정에 한국어 교육은 제대로 없었다. 조선소는 ‘뛰면 죽는 곳’이라고 불릴 만큼 위험물이 곳곳에 널려 있다. 그러나 언어 소통이 안 되는 탓에 이주노동자들은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다. 이주노동자들은 휴대전화 통역 앱으로 한국 정주노동자들과 겨우 대화하고 있다. 안 그래도 힘든 일에 소통까지 안 되니 이중고다.

쏟아지는 물량을 ‘빨리빨리’ 쳐내야 하는 업체는 이들에게 쉴 틈 없이 고강도 노동을 강요한다. “스리랑카 조선소에서는 일 하나가 끝나면 좀 쉬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8시간 동안 계속 빨리빨리 하고, 8시간 넘겨 잔업도 해야 하는 게 (스리랑카와) 다른 점입니다. 한국 일하는 스타일도 잘 모르겠어요.” A씨가 말했다.

지난달 28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옥포조선소 내 기둥에 한화오션 로고가 적혀 있다. 뒤로는 옛 이름인 대우조선해양이 적힌 골리앗 크레인이 서 있다. 조해람 기자

땜빵처럼, 땔감처럼

이주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온갖 비인간적 차별까지 당하고 있다. “일이 고되다 보니까 무릎이나 허리가 아파서 병원을 몇 번씩 가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누가 허리 아프다고 하면 회사는 ‘고국 가라’고 나오니 눈치가 보이죠.” B씨가 말했다. 생계가 절박한 이들은 부당대우를 당해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한국 정부는 이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보단, 이들의 ‘이탈’을 금지하는 데 훨씬 많은 공을 들였다. A씨와 B씨, C씨는 고국에서 ‘이탈 금지 서약서’를 썼다. 사업장을 이탈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면 에이전시에 한화 약 2000만원을 줘야 한다는 서류였다. 가족과 스리랑카 공무원이 연대보증을 섰다. 서류 촬영은 금지됐다.

이 같은 조치에도 조선소의 고된 노동과 낮은 임금 때문에 많은 이주노동자가 이탈했다. 정부는 이번에도 처우를 개선하는 대신 이들의 사업장 변경을 제약했다. 오는 9월부터 E-9 비자로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는 같은 권역에서만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게 했고, 조선업 등 일부 업종은 ‘같은 업종 안에서만’ 사업장 변경을 허용했다.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 목소리를 내는 길조차 막혔다. 이들은 “노조를 하지 말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고 했다. 스리랑카 에이전트도, 한국에서 만난 교육 담당자도 같은 말을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노조가 하고 싶어도 하기가 어렵죠. 우리가 노조를 하게 되면 사장님들이 우리 고용을 취소할 거고, 그러면 우리는 돈을 벌 수 없겠죠.” C씨가 웃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도 조선소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고민이 깊다.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이주노동자를 위해 각국 언어로 번역한 홍보물. 금속노조 제공
지난달 28일 경남 거제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실에 이주노동자를 위해 각국 언어로 번역된 노동권 안내 책자가 놓여 있다. 조해람 기자

노동조건 개선 없이 ‘더 싼 인력’만 원하는 정부와 업계의 태도가 이런 상황을 낳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에서 조선업종을 담당하는 안종걸 전략조직부장은 “한국인 조선소 하청노동자들도 이주노동자들과 별다를 바 없이 열악한 처지”라며 “그런 저임금 조건을 계속 유지하면서 사람을 쓰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들여온 것”이라고 했다. 법무부는 ‘GNI 70%’라는 임금 최저선마저도 “고용 현장 상황 등을 고려해 추가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선업은 극도로 노동집약적이고 고숙련이 필요한 사업인데, 지금 조선산업은 노동을 자동화하고 인력도 저임금 단순노동인력으로 바꾸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이주노동자들의 임금 대책 계획이 없고요. 근본적으로는 정주노동자든 이주노동자든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임금을 대폭 올려야 합니다.”

한국인 숙련공들이 떠난 조선소에 저임금 이주노동자들만 ‘땜빵’처럼 채워지고 있다. 숙련공들을 떠나게 한 열악한 처우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는데, ‘땔감’처럼 사람을 수입해 호황의 불을 지핀다. 현실을 바꾸지 않는다면 이들도 조선소를 떠날 판이다. 이미 많은 이주노동자가 조선소를 떠나고 있다. 그때마다 계속 ‘더 싼 인력’만 투입하며 일손만 메꾼다면 조선업의 미래는 어디일까.

현재 조선 3사(HD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한화오션)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약 5100명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이 수를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다.

지난달 28일 경남 거제 옥포항 너머로 본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옥포조선소. 조해람 기자

▼ <녹슨 약속 : 대우조선 파업, 1년 뒤> 상편 보기

“떠나지 못한 네 사람은 지난해 6월2일부터 7월22일까지 51일간 일손을 놓았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구호와 0.3평 철제 케이지 농성으로 하청·비정규직의 현실을 전국에 알린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이었다. 파업 뒤 정부는 이중구조 개선을 약속했다. 조선소는 정부가 지금도 연일 강조하는 ‘이중구조 개선’의 첫 번째 시험대다.

파업 1년이 지난 지금, 약속은 지켜졌을까. 모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 대우조선 파업 1년···약속은 녹슬었고, 삶은 더 기울었다
     https://www.khan.co.kr/national/labor/article/202307061509001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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