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내내 주변 곳곳을 ‘무지개 빛깔’로 물들이는 캐나다[플랫]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6월 서울 중구 정동길 한복판에는 무지개 깃발이 걸린다. 성소수자가 한 달 내내 자긍심을 뽐내는 ‘프라이드 먼스’를 맞아 주한 캐나다대사관이 대사관 건물 외벽에 거는 연대의 상징이다. 지난 6일 만난 타마라 모휘니 주한 캐나다 대사는 “프라이드 먼스는 캐나다의 국가적 캠페인”이라고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캐나다는 ‘전 세계 성소수자들의 강력하고 자랑스러운 지지자’를 표방한다. 각국에 주재하는 캐나다 대사관은 퀴어 축제에 참여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을 무지개로 물들인다. 주한 캐나다 대사관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지난 1일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해 미국·영국·독일과 공동부스를 차렸다. 캐나다의 상징인 단풍잎 그림과 함께 무지개 위로 ‘LGBTI’가 쓰인 스티커는 축제 당시 일찌감치 동날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 왼팔에 무지개 타투 스티커를 붙이고 축제를 찾았던 모휘니 대사는 “눈에 띄게 하는 것, 즉 가시화는 낙인과 차별에 대항하는 핵심 요소”라며 “그래서 캐나다는 퀴어 축제에 참여해 LGBTI와 함께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했다.
국가 차원에서 이토록 활발하게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연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휘니 대사는 “다양성이야말로 캐나다의 가장 큰 강점”이라면서 “다양성 없이는 캐나다가 현재 위치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프랑스 문화권과 영어 문화권이 공존하는 지점을 찾아야 했던 캐나다는 언어, 종교, 민족성 등 다양성을 포용해야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후 역사를 거치며 젠더 다양성의 중요함도 인식했다. 모휘니 대사는 “캐나다는 어느 집단이든 소외시킬 때 공동체 전체가 무너지고, 모두를 포용할 때 사회가 한발 나아간다는 점을 안다”면서 “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올바를 뿐 아니라 똑똑한 일”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최대의 퀴어 축제인 ‘프라이드 토론토’가 대표적인 사례다. 호주 시드니, 미국 뉴욕 등 세계 주요 도시의 퀴어 축제와 명성을 같이 하는 토론토 퀴어 축제는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관광상품이다. 모휘니 대사는 “퀴어 축제로 토론토가 빛나고 시민들이 많은 이점을 누린다. 동시에 퀴어 축제에 반대하는 이들조차 본인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퀴어 문화를 주류로 받아들이면서 이 문화가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도, 정치적으로는 큰 표심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올해 서울시는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하고 종교단체에 광장을 내어줬다. 이동환 목사는 퀴어 축제에서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공론화 했다는 이유로 교회 재판에 회부됐다. 캐나다에도 이렇게 퀴어 축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을까.
모휘니 대사는 “최근 몇 년 간 일부 퀴어 축제에서 점점 논쟁적인 분위기가 목격되기도 한다”면서 “이 때문에 토론토 프라이드 축제 주최 측은 보안 조치를 강화했고, 캐나다 정부도 퀴어 커뮤니티의 안전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향후 5년 동안 4950만 캐나다달러(약 483억원)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모휘니 대사는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캐나다에선 쥐스탱 트뤼도 총리를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이 퀴어 축제에 참가해 축제 자체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독립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를 제외하면 퀴어 축제에 참여한 정부 기관이 전무한 한국으로선 생소한 일이다. 모휘니 대사는 “총리와 장관들이 대수롭지 않게 축제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얻는 게 많다”며 “결코 어렵지 않은 행위만으로 포용의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했다.
차별금지법에 해당하는 ‘인권법’이 제정돼 있는 캐나다에서는 “종교적 신념을 근거로 폭력이나 증오를 선동하는 것은 법에 저촉된다”면서 “종교의 자유는 기본적 인권이지만 다른 이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다”라고 했다. 의견 차이가 있다면 혐오나 인신공격으로 발화되지 않는 선에서 사회가 어떻게 토론을 이어갈지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동성결혼을 합법화 하기까지 캐나다도 힘든 싸움을 거쳤다. 종교·보수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성혼이 전국적으로 합법화된 것은 2005년이었지만 성별 정체성이 인권법상 차별 금지 사유에 추가된 것은 2017년이었다. 모휘니 대사는 “결코 하룻밤 사이에 이뤄진 승리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면서 “법이 제정됐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캐나다는 법으로 규정된 내용을 실제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LGBTI 행동계획’을 시작했다. 모든 정책이 성소수자의 관점에서 포용적인지 고려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유죄 선고를 받았던 이들의 범죄 기록을 말소했다. 트뤼도 총리는 2016년 과거 유죄 판결을 받았던 이들에게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2007년 차별금지법이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고, 지난 5월에서야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혼인평등법이 국회에 발의된 한국으로선 법제화 이후에 무엇이 필요한지 참고할 수 있는 지점이다.
주한 캐나다대사관은 올해 한국과의 수교 60주년을 맞아 더욱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한국 학교 교장과 장학사들을 초청해 성소수자 학생에게 포용적인 환경을 만드는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성소수자 이슈를 논의하는 외교관들의 대화 채널을 주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오는 11월에는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의 주빈국을 맡아 캐나다의 ‘인사이드 아웃 LGBT 영화제’의 작품과 감독, 인권운동가 등을 초빙한다.
▼ 김송이 기자 songyi@khan.kr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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