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우울계는 또 무엇인가요? [내 아이 상담법]
우울감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우울계에 빠지는 아이들 증가
소속감 · 위로 느낄 수 있지만…
부작용 막을 기준 없어 한계
스스로 사랑하는 아이 돼야
편견 없이 경청하는 태도 필요
'우울계' 자신의 우울함을 드러내는 콘텐츠를 올리는 SNS 계정을 뜻하는 신조어다. 이런 계정에 접속하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현실을 어렵게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문제는 '우울계'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부모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왜 우울계에 빠져드는 걸까. 이런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울증을 겪는 청소년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 4월 10대 여고생이 서울 강남의 한 고층건물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장면을 SNS에 생중계하면서다. 세상을 떠난 이 여고생은 이른바 '우울증 갤러리'라 불리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5월에도 우울증 갤러리에서 만난 10대 두명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다행히경찰에 구조됐지만, 이후 우울증 갤러리를 폐쇄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필자는 직접 SNS에 생중계된 끔찍한 장면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투신하는 장면을 생중계한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 심정을 쉬이 짐작할 수 없었다.
물론 청소년 상담일을 하는 필자는 자살이나 자해 시도를 해본 청소년들을 자주 만난다. '1388 전화상담'을 이용하는 청소년 중엔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물을 한꺼번에 복용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털어놓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 직전에 전화를 걸어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최근 연이어 터지는 사건들은 또다른 차원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우울증 갤러리나 SNS 계정을 뜻하는 '우울계'에 의존하는 청소년들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우울함과 힘듦을 드러내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누군가는 현실 속에서 느끼지 못했던 소속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온라인 커뮤니티의 순기능은 청소년들이 집단상담할 때 나타나는 치료적 성과와 일부 일치한다. 다만, 이런 순기능을 유지하려면 적절한 조치나 기준이 필요한데 우울증 갤러리엔 그런 게 없다는 게 문제다.
예컨대 집단상담엔 집단리더가 있다. 집단리더는 자신과 구성원을 존중하고, 서로 간 지켜야 하는 규범을 정한다. 집단상담 과정에서 나올 만한 부정적인 감정표현이나 피드백은 허용하지만, 공격적인 언행을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아울러 서로 앞으로 나아갈 유익한 정보, 대인관계를 개선하는 데 적용할 정보들을 나누기도 한다.
반면 우울증 갤러리나 우울계에선 욕설이나 자해·자살 관련 세세한 방법, 극단적 선택을 부추기는 발언들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공감받고 싶어 우울계에 접속했거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을 이들에겐 좋지 않은 환경임에 분명하다.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일단 정부는 우울증 갤러리를 차단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5월 22일 "우울증 갤러리 게시판 전체를 차단하는 것은 과잉규제 우려가 있다"면서 "우울증 갤러리 운영자(디시인사이드)가 자율규제를 강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뭘 해야 할까. 필자는 유해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차단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본질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예컨대 자녀가 밤늦게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부모가 스마트폰을 압수했다고 하자. 이 경우 자녀는 공기계를 몰래 구입해서라도 어떻게든 스마트폰을 사용하려 할 것이다. 억지로 막으려고 한다면,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아낸다는 거다.
지금껏 청소년들을 유해 콘텐츠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각종 제도와 정책들이 도입됐다. 그럼에도 온라인상에는 우울계뿐만 아니라 도박, 마약, 성 관련 유해 콘텐츠가 넘쳐난다.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이런 콘텐츠에 접속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아이들이 언제, 왜 이런 콘텐츠에 접속하느냐다. 단순히 호기심 때문이라면 언젠가 스스로 판단해 접속을 멈출 것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유해 콘텐츠에 접속하고, 몰입하며, 끝내 위험한 행동까지 저지른다면 문제를 간과해선 안 된다. 그 안에 아이들이 충족할 만한 '무엇'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언급했듯 우울계에 청소년들이 빠져든 덴 이유가 있다. 우울계에서 자신의 게시물에 누군가가 댓글을 달아주는 것만으로도 현실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외로움을 덜 수 있어서다. 그것이 우울한 청소년들이 우울계에 접속하는 강력한 유인책을 제공한다는 거다.
필자는 우울계와 같은 커뮤니티가 순기능을 늘리고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어려움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나아지고 있는지 나누고 함께 기뻐하고 희망을 찾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물론 아이들 스스로 이런 자정작용을 하기 위해선 선제조건이 있다.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거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위험한 상황에 몰아넣지 않는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존중하려면 가족과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판단하지 말고' 귀담아들어줘야 한다. 아이들의 고민이나 꿈, 생각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현실적인지' 판단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아울러 괴롭고 힘들 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청소년 상담기관이 많다. 24시간 운영되는 1388 전화상담, 일시보호소, 채팅상담도 있다. 필자는 극단적인 생각을 했던 청소년들이 위기에서 벗어나 충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봐 왔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분명 희망은 있다.
유혜진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 더스쿠프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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