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대에선 "여성인권 증진" 외치는 한국, 국내에선 "안티 페미 대통령"?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여성폭력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국제연합(UN, 이하 유엔)은 여성폭력을 "남성과 여성의 권력 차이"에서 비롯하는 젠더 기반 폭력(Gender based violence)으로 정의한다. 어떤 폭력이 성별이나 성정체성에 대한 사회구조적 차별에서 기인하고 있다면, 그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투자다. 사회의 구조를 바꿀 정도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의 투자.
이 같은 '투자'를 성사시킨 국제적 프로그램이 있다. 2018년 유럽연합(EU)이 500만 유로 규모의 투자를 감행하면서 구성된 유엔(UN) '스포트라이트 이니셔티브'(Spotlight Initiative, 이하 SI)다. SI는 유엔과 국제사회가 '인류 최대의 공동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17개 지속가능한 개발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중 다섯 번째 항목인 '성평등' 구현을 위해 만들어졌고, 그중에서도 젠더 기반 폭력의 근절을 구체적인 목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22년 발간한 연간 보고서에서 △전 세계 15세 이상의 여성 중 3분의 1 이상이 자신의 인생에서 신체적 또는 성적 폭력을 경험하고 있고 △여성폭력에 의해 소모되는 경제적 비용이 매년 1조7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불평등이 낳는 여성폭력은 여성의 사회참여를 위축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다시 불평등을 심화한다. 이는 곧 전 사회의 잠재소득 상실로 이어진다. 때문에 SI의 활동분야는 성평등으로 한정돼 있지만, 결국 다른 모든 개발목표(SDGs)와도 연결돼 있다. 올해 말 첫 번째 투자금액의 소진을 앞둔 SI가 '더 많은 국가의 더 많은 투자'를 호소하고 있는 이유다.
여성폭력 대응을 위한 '투자'의 문제는 근 몇 년간 한국 내에서도 화두가 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부터 논란이 된 여성가족부 폐지 이슈는 지난해 국회에 제출된 2023년 예산안에서 디지털성범죄 대응 정책 등에 대한 예산 삭감 논란으로 구체화됐다. 지난 1월 제4차 국가별인권상황정기검토(UPR) 당시 미국·영국·캐나다 등 회원국들은 여성폭력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이 '여가부 폐지 이후엔 축소될 수 있다'는 취지의 우려를 정부에 쏟아내기도 했다.
여성폭력이란 무엇인가? 여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여성폭력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동향을 국내 독자들에게 좀 더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지난달 27일(한국시간) <프레시안>과 김민선 SI 컨설턴트가 화상인터뷰를 진행했다. SI와 국내 언론 간의 공식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룹 내 유일한 한국인 멤버인 김 컨설턴트는 현재 SI 내 자금운용 및 파트너십 등 분야에서 코디네이션 업무를 맡고 있다. 국내 독자들에겐 아직 생소할 SI의 여성폭력 근절 활동과 더불어,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관련 이슈에 대한 의견을 함께 물었다.
아래는 주요 인터뷰 내용이다.
역대 최대 규모의 '성평등 이니셔티브' …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해"
프레시안 : 반갑다. 먼저 유엔 스포트라이트 이니셔티브(SI)에 대한 소개가 듣고 싶다. 국내에선 생소한 이름이다.
김민선 : SI는 프로젝트 성격으로 발의된 일종의 프로그램이다. 2017년도부터 국제연합(UN)과 유럽연합(EU) 내에선 여성폭력에 관한 대규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고,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일을 수행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국제 NGO는 유엔이었다. 2018년 유럽연합이 500만 유로 규모의 투자금액을 지원하면서 유엔 SI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우리는 SDGs를 기반으로 한 이니셔티브로 불린다. SDGs란 유엔에서 제정한 총 17가지의 지속가능한 개발목표를 말하는데, SDG 5번 항목인 성평등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니셔티브가 SI라고 봐주시면 되겠다. 성평등 중에서도 성폭력, 젠더 기반 폭력에 좀 더 초점을 맞춘 이니셔티브고, 성폭력에 관한 단일 규모의 투자론 SI가 가장 큰 규모라고 알려져 있다.
현재 아프리카, 남미, 카리브해, 태평양, 중앙아시아 등 5개 지역의 총 26개 국가에서 국가 규모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각 국가 내에서 자행되고 있는 성폭력이나 인신매매 범죄, 여성노동탄압 행위, 혹은 조혼과 여성 할례 등 여성폭력에 속하는 관행들이 근절될 수 있도록 하는 게 프로그램들의 구체적인 목표다. 법안의 강화, 사회의식 개선, 혹은 시민사회 역량강화 등 그 방식은 다양하다.
프레시안 : 지원대상 국가들은 어떻게 선정되는가?
김민선 : 선정 과정에 있어선 다양한 기준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2017~2018년 당시 자료조사들이 이뤄졌고, 당시 근무했던 직원들이 직접 각 국가에 방문해 유엔 국가사무소의 보고관들, 정책 입안자, 혹은 국가 내 시민사회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조사에 나섰다. 특히 유엔 내에 이미 존재하는 국가사무소의 자료들이 기반이 된 것으로 안다. 각 국가에서 작성된 자료들을 토대로 나름의 레이팅 시스템을 가지고 ‘여성폭력 문제들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국가들’을 선정했을 것이다.
프레시안 : 각 지역에서 보고되는 여성폭력에는 어떤 경향성이 있나.
김민선 : 지역마다 두드러지는 여성폭력의 형태는 다양한 편이다. 가령 아시아나 태평양의 작은 나라들에서는 인신매매 형태의 폭력이 두드러진다. 남미나 카리브해의 경우 소위 말하는 '페미사이드', 즉 여성 살인의 발생비율이 굉장히 높다. 아프리카에선 여성할례, 조혼과 같은 여성 대상 악습들이 여전히 빈번히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별 주요 프로그램도 조금씩 다른 양상을 띈다. 예로 아프리카 같은 경우, 다른 지역과 달리 프로그램에 쓰이는 지원금액의 최소 40%는 무조건 SRHR(Sexual, Reproductive, Health, Rife)을 위한 엑티비티에 사용돼야 한다. 즉 여성들이 자신의 성·위생 등과 관련된 권리를 지킬 수 있는 활동에 총 예산의 40%는 사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2022년 보고에 따르면 총 117만 달러 정도의 금액이 해당 활동에 사용됐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지 들어볼 수 있나.
김민선 : 예로든 아프리카에서의 프로그램을 말해보자면, 우선 기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성병 예방 등 성위생과 관련한 교육은 물론 조혼 같은 악습이 '왜 좋은 것이 아닌지'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이는 여성폭력 피해의 당사자들인 소녀·여성에게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가령 아프리카의 여성할례엔 지역의 종교 지도자가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친다. 즉 지역단위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고 설득하는 수많은 활동이 수반돼야 한다. 아이들이 외출하기 힘들었던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선 부모들에 의한 가내 할례가 빈번하기도 했다. 결국 아이 이전에 부모세대부터 교육이 들어가야 하는 문제다.
프레시안 : 이러한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결국 국가 단위의, 혹은 국제적인 규모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해 보인다. SI의 국가별 프로젝트도 그 투자의 결과물이다.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각 국가 혹은 국제사회 투자의 동향은 어떻다고 평가하나.
김민선 : 돈, 예산.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국제 개발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잘 해결되지 않거나, 제대로 가시화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충분한 투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엔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 같은 대형 국제이슈가 터진 상태지 않나. 전쟁이나 재난 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여성폭력과 같은 (다소 개별적인 단위의) 인권 이슈에 대해서는 국제 규모의 투자가 즉시 삭감되는 경향이 짙다.
실제로 최근 국제사회에서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고 있는 분야를 따져보면 우크라이나 현장 지원, 혹은 요즘들어 가장 '핫'한 국제 이슈인 기후변화 관련 펀딩 등이 있다. 반면 인권이라든지 여성폭력과 관련된 국제규모 펀딩은 줄어들고 있는 게 사실이다.
프레시안 : 여성폭력 문제에 대한 '투자의 활성화'도 SI의 주요 목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김민선 : 물론이다. 각 국가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프로젝트 자체가, 해당 국가의 여성폭력 관련 예산 증진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폭력이나 차별의 해소에는 당연히 돈이 필요하니까. 여성폭력 방지를 위한 법과 제도,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 그런 일을 하는 기관단체를 지원하는 일에는 국가의 예산이 들어간다. SI의 경우, 각 국가사무소들이 연간 결과보고서를 만들 때마다 각 나라의 여성폭력 관련 예산이 확대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얼마만큼 증진됐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있다.
프레시안 : 지금까지의 결과는 어떤가.
김민선 : 2018~2019년 프로젝트 초기부터 지금까지 나온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다행히도 결과는 희망적이다. SI의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래로, 총 477개의 여성폭력 근절 취지를 가진 법안 혹은 정책이 통과됐고, 총 14개 국가에서 여성폭력 근절을 위해 할당된 예산이 기존의 10배 규모로 증가했음을 확인했다. 굉장히 좋은 결과물이라 평가할 수도 있겠다.
다만 (각 국가의) 예산의 경우 이전보단 나아졌더라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SI가 운용하고 있는 투자금액의 경우에도 올해를 끝으로 2018년에 투입된 초기 투자금액이 모두 쓰일 예정이다. 좀 더 규모를 키워서 다른 지원을 받아내기 위해 여러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1조 원 정도의 규모를 목표치로 잡고 있다. 그만큼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국제무대에선 "여성인권 증진" 외치는 한국, 국내에선 "안티 페미 대통령"?
프레시안 : 여성폭력은 한국에서도 주요 이슈다. 특히 여성가족부 폐지 등을 주요 공약으로 설정한 윤석열 정부의 출범 이후, 한국에선 여성폭력 대응 예산 삭감 등 성평등 관련 이슈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국의 상황에 대해선 인지하거나 생각하고 계신 바가 있을까.
김민선 : 한국은 SI의 활동 무대는 아니지만, 팀 내에서 한국 상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설명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SI가 한국에서 활동하지 않는 이유는 굉장히 단순하다. 한국은 유엔이 직접 도움을 주러 들어올 만큼 국제적으로 취약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유엔 분담금은 9~10위 정도였다. 경제규모로 보나 정부역량으로 보나 한국은 지원 받는 나라가 아닌 지원을 주는 도너 국가다.
물론 일본이나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 선진국으로 인식되는 국가들이 유독 성평등에 관련해서는 저조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맞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도 그렇고,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이 발간하는 성평등 관련 보고서를 봐도 한국은 여전히 성평등과 관련해 개선해야 할 부분이 굉장히 많은 나라로 지목되고 있다. (한국은 2021년 기준 WEF의 국가별 성평등 집계에서 102위를 기록했다. OECD 관련 통계에선 여성정치참여비율, 성별임금격차 등의 통계에서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편집자주.)
다만, 한국은 '충분히 자립적으로 상황을 개선해 나갈 수 있는 나라'라는 게 유엔 내의 인식이다. 사실 여성폭력, 성차별에 관한 문제들은 어느 국가에나 존재를 한다. 미국은 물론 북유럽 국가에서조차 50 대 50의, 완전한 성평등을 이룩한 나라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규모나 정부역량이 충분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충분히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최근 한국에선 여성폭력이 구조적 문제인가, 개인적 문제인가를 두고 자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 해 일어난 신당역 여성 살해사건, 인하대 성폭력·사망 사건 등을 두고 '개별 범죄를 여성차별 문제로 확대해선 안 된다'는 인식을 보이기도 했다.
김민선 : 이와 관련해서는 개인적인 생각보다는 최대한 유엔의 시각에서 중립적인 판단을 전해드려야 할 것 같다.
가령 한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비상임 이사국에 선출됐을 당시를 말씀드리고 싶다. 이사국으로 선출되기 위해선 해당 국가의 유엔 대사가 유엔에 출석해 '우리가 왜 이사국으로 선출돼야 하는지'를 발표한다. 한국 또한 외교부의 유엔 발표가 있었고, 그 자리에서 "(한국이) 여성인권 증진을 위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겠다"라는 말이 나왔다.
헌데 지금 국내의 상황을 돌아보면 어떤가. 외신들은 국내 상황을 두고 '안티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란 수식을 붙여 설명하고 있다. 그 대통령 정부 아래에서 일하는 누군가는 여성인권을 말한다. 한 정부 내에서 전혀 다른 의견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한국정부는 비동의강간죄를 신설하라는 유엔 인권위원회·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사항을 거부하기도 했다. 비동의강간죄에 대한 개인적인 찬반 여부를 떠나 말씀드리면 유엔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으로서의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여성인권을 옹호하고 있는데, 막상 개별 정부는 그 구체적인 대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프레시안 : 한국과 유엔의 관점이 다른 것을 생각해 보면, 여성폭력 자체에 대한 관점도 다소 그렇다. 여성폭력의 구조적 성격을 강조하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입장과 달리, 한국에선 여가부 내 각종 문건에서 '여성폭력'이란 개념어 자체가 삭제되며 논란을 빚었다.
김민선 : 어떤 말이나 언어를 사용하느냐는 어떤 현상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일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성평등과 관련해 생각해보면 유엔 내에서도 '특정 성별에 치우치지 않는', 즉 차별적이지 않은 언어를 쓰라고 지속적으로 권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의장'을 뜻하는 영어단어 '체어맨(chairman)'을 '체어퍼슨(chairperson)'이라고 정정하라는 식이다. 이렇게 중립적인 단어를 써야만 '(성차별) 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는 논의가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설정됐다.
여성폭력은 특정한 사회적 조건 아래 특정성별의 피해자가 양산되는 범죄 유형이다. 현상과 사건을 정확하게 명징할 수 있는 언어, 가령 '여성폭력', '여성차별'과 같은 개념어들이 (정부 공식 문건 등에서) 사라지고 부재하게 되면, 이러한 범죄를 개념화하기는 어려워진다.
개념화가 어려워지면 그 범죄를 이해하는 일도 어려워진다. 이해가 어려워지면, 해결도 어려워진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책이나 법안이 필요하고 이를 수립하기 위해선 분석적인 자료들이 필요한데, 개념어의 상실은 그 분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권·성평등은 전 지구적 과제 … 이슈에 눈감지 말고 '소프트 파워' 키워야
프레시안 :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에선 여성폭력과 관련한 '통계의 수집'이 부족하다는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이후 혐오범죄 대응이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관련기사 ☞ 계속되는 무차별 여성폭행 … 여성은 '때리고 싶고, 때릴 수 있는' 존재?) 올해 초엔 여성가족부의 성폭력 안전실태 데이터 공개가 미뤄지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김민선 : 결국은 여성폭력에 대한 개념적 논의가 선행되지 않고 있다는 게 메인 이슈다. (강남역 사건 당시처럼) 분명하게 여성을 타깃으로 한 범죄였지만 경찰이 '그냥 일반 범죄' 중 하나라고 인식하는 문제 말이다. 특히 관련 통계의 수집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SI가 프로그램을 진행할 땐 총 6가지의 핵심 구성요소를 설정한다. △첫 번째는 법안과 정책 △두 번째는 기관들의 역량 강화 △세 번째는 사회인식의 변화 △네 번째는 피해자에 대한 공공서비스의 지원 △다섯 번째는 데이터 △여섯 번째는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이다.
5번 항목에 왜 '데이터'가 있을까. 어떤 형태의 폭력이 어떤 식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대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히 수립돼야만, 그리고 이러한 데이터들이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이용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확산돼야만, 비로소 사회가 그 문제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SI는 이러한 시각으로 국가별 통계와 관련된 지원을 굉장히 많이 수행하고 있고, 실제로 그를 통해 만들어낸 긍정적 변화들이 매년 보고되고 있다. 가령 아프리카의 경우 페미사이드, 여성할례나 조혼과 같은 악습들이 어디서 얼마나 일어나고 있는지 수집하는 일부터가 강구책 마련의 시작이 된다. 그런 정보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공공 열람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어야 여성폭력 문제를 사회가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앞으로 한국정부, 혹은 한국사회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김민선 :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좀 더 큰일을 했으면 좋겠다. 국제적 이슈에 있어서 너무 전통적인 개발에만 몰입하는 게 아니라 말이다. 국제무대에서의 지위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존의 접근방식을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소위 말하는 기존의 '선진국'들은 여러 국제이슈에 대한 펀딩, 즉 '소프트 파워'를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지속시키고 있다. 우리도 그들이 어떤 국제개발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파악하고 발을 맞출 때다. 당연히 SI와 같은 국제개발목표 이니셔티브에 대한 투자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비상임 이사국으로서 우리는 이제 국제무대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힘을 가진 나라들이 가장 강력히 옹호해야 할 것은 인권이고, 한국은 북한인권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인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라이지 않나.
한국은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과 폭력에 관한 이슈들이 한국사회에서 더욱 활발히 논의됐으면 하는 기대도 가지고 있다. 갈등이나 혐오를 조장하는 방식의 논의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아고라가 생겨났으면 한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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