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펠러 센터에 등장한 ‘숯더미’… K미술이 온다[김현수의 뉴욕人]
“이게 대체 뭐지?”
6일(현지시간) 뉴욕5번가를 지나던 사람들이 록펠러센터 앞 거대한 ‘숯더미’를 보고 멈춰 섰습니다. 높이 6.3m에 달하는 짙은 블랙의 숯이 전시돼 있으니 놀랄 수 밖 에요. 사람들은 작품 옆에 세워져 있는 작품 설명을 읽기 시작합니다.
‘작가 이배의 ‘Issu du Feu(불로부터)’라는 작품으로 거대한 숯을 수직으로 쌓은 것이 특징이다. 록펠러센터 채널가든에 작품을 전시한 최초의 한국 작가인 이배는 한국 문화의 유형화와 정제된 존재감을 탐험하고 있다.’
알고 보니 한국 이배 작가의 작품으로 경북 청도에서 공수한 숯더미라고 하네요. 국내 조현화랑과 록펠러센터는 이 작품 뿐 아니라 센터 내부에 박서보, 윤종숙과 한국계 작가 진 마이어슨을 소개하는 전시를 열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길, 삭스 피프스 애비뉴 백화점 건너편 록펠러 센터 채널 가든에 한국 작가의 ‘숯’이 놓여 있는 것이 기묘하게 어울리는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K-팝 열풍, K-클래식 이런 말을 들으면 좀 과장됐겠지, 일부 열혈 팬들이 있겠지 생각했어요. 2000년대 한국을 찾는 해외 CEO들을 인터뷰하면 하나같이 “한국은 테스트 마켓”이라며 한국 시장이 최고라고 서로 짠 것처럼 똑같이 말했는데, 그래야 한국인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도 깔려 있었거든요. 솔직히 패션쇼 한 번에 ‘한국의 멋에 세계가 반하다’이런 과장 기사도 많았었죠.
요즘 실제로 미국에서 느끼는 K문화의 대중화는 놀랍습니다. 뉴욕 길거리에서 저를 보고 “혹시 한국어를 쓰고 있느냐”며 한국 드라마 팬이라고 신기한 듯(?)말을 걸었던 미국인도 있었고, 심지어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는 어린이 한무리도 봤네요. 클래식계도 주요 콩쿨 상을 휩쓸고 있죠. 미국 모두가 열광하는 ‘열풍’의 의미가 아니라 호불호 상관없이 하나의 주류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반면 미술은 아직 K-미술이라고 하기엔 중국 일본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는 아쉬움도 적지 않았습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가보면 한국관은 중국이나 일본관에 비해 규모나 소장품 면에서 더 많은 후원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들게 합니다.
하지만 반갑게도 그런 아쉬움을 달래 줄 한국 미술의 존재감이 조금씩 커지고 있습니다. 5월 뉴욕 미술계가 들썩였던 아트페어 ‘테파프 2023’과 ‘프리즈 2023’에서 한국 갤러리들이 유독 눈에 띄더라고요. 현대갤러리는 파크 애비뉴에 위치한 테파프 전시장 2층 고즈넉한 단독 공간에서 한지를 태우고 겹겹이 쌓아 작업한 김민정 작가의 솔로 부스를 선보였습니다. 유럽 미국 갤러리들 사이에서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 추상화 같은 한국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어 바이어의 관심을 끄는 듯 했어요. 뒤를 이어 열린 프리즈 뉴욕에서도 현대갤러리의 유근택,휘슬갤러리의 박민하 작가 솔로 부스가 마련돼 있었습니다.
11월에는 한국 근현대 회화들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옵니다! ‘리니지(계보)’로 이름 붙여진 이 전시는 고대 작품 중심의 메트 한국 소장품과 국립현대미술관 및 리움미술관 소장품인 백남순, 서세옥, 김환기, 이우환, 이승택 화백의 20세기 회화 30여 점을 모아 한국 미술이 어떻게 이어져 내려왔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달 이 전시를 기획한 엘리노어 현 메트 큐레이터를 만났는데요. 그는 “광복 이후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는 한국과 미국, 프랑스를 오가며 새로운 정체성을 고민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며 전시회 타이틀을 ‘리니지’로 지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 침략과 전쟁, 신문물 등 격동의 시기까지 새로운 전통을 만들고 이를 이어가고 있는 한국 미술을 포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 큐레이터는 ‘선,사람, 장소, 물건’ 등 4가지 주제로 이번 전시를 구성한다고 했는데요, 예를 들어 ‘물건’ 테마에선 메트 소장품인 한국 도자기와 김환기 작가의 ‘달’, 바이런 킴의 ‘고려청자 유약 #2’ 을 함께 하나의 계보로 구성해 보여준다고 할까요. 고대에서 근현대로 뉴욕 메트가 보는 한국 미술은 무엇일지 기대도 되고,뉴욕인들이 보게 될 한국 근현대회화의 감상도 궁금합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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