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농성에 음식 보냈다 기소된 노조원들, 8년 만에···대법 “업무방해 방조 아냐”
고공농성을 벌이는 조합원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노조 간부들을 업무방해 방조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이 위축되지 않도록 업무방해 방조죄 적용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대법원이 재확인한 판결이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A씨 등 철도노조 간부 7명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에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검찰이 A씨 등을 기소한 뒤 8년 만에 나온 대법원 판단이다.
2014년 4~5월 철도노조 조합원 2명은 공사의 순환전보 인사 방침에 반대해 15m 높이 조명탑을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 당시 노조 측은 운전경로 및 차종 숙지가 중요한 운전 분야 등은 사고 위험이 있어 상시적으로 대규모 순환전보를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사측이 전보를 강행하자 전보 대상자였던 노동자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조명탑에 올라간 조합원들이 약 한 달 간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동안 A씨 등은 아래에 천막을 설치해 지지 집회를 열었다. 또 음식물과 책 등 농성자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위로 올려보냈다. 농성을 벌인 두 사람은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를 확정받았다. 그러자 검찰은 A씨 등을 업무방해 방조 혐의로 2015년 기소했다.
1·2심은 A씨 등의 혐의를 유죄로 보고 벌금형을 선고했다. 1·2심 법원은 A씨 등이 생필품을 올려보내고 지지 집회를 한 행위가 고공농성을 용이하게 하고, 결의를 강화했다고 봤다. 또 A씨 등이 농성 행위가 철도공사의 야간 업무를 방해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는데도 이런 행위를 한 점을 유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A씨 등의 행위와 농성을 한 이들의 업무방해죄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생필품을 올려보낸 행위 등이) 업무방해 방조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조명탑을 점거하는 과정에 A씨 등이 관여하지 않았으며, 천막을 설치하고 집회를 한 행위는 기본적으로 공사의 순환전보 방침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명한 노조 활동의 일환이라는 이유다.
대법원은 또 A씨 등이 음식물을 제공한 것은 고공에 설치된 좁은 공간에 장기간 고립돼 음식을 제공받을 경로가 없던 농성자들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 요구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측도 이런 상황을 감안해 물품 전달을 허용했다는 정황도 근거로 들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쟁의행위에 대한 업무방해죄를 함부로 확대해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법원은 “헌법이 정한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근로자나 노동조합이 노동3권을 행사할 때 제3자의 조력을 폭넓게 받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위법한 쟁의행위에 대한 조력행위가 업무방해 방조죄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때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 위축되지 않도록 성립 범위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기존 판례를 재확인했다.
시민사회에서는 쟁의행위에 대해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것 자체가 노동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비판이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헌법이 보장하는 파업은 본질적으로 업무방해 목적을 띠고 있음에도 사법당국이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아온 데 대한 문제의식이다. 그러나 헌재는 지난해 파업에 단순 참가한 노동자도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단을 유지했다.
나아가 쟁의행위에 단순히 지지·지원한 행위까지 방조범으로 처벌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이는 쟁의행위를 극도로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노동자들에게 조력하는 제3자도 헌법에 따른 표현의 자유 등을 보장받아야 마땅한데, 이를 저해한다는 것이다.
A씨를 비롯해 2010년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현대차 하청노동자 최병승씨 역시 2013년 업무방해 방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벌인 파업에서 연대·지지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최씨는 사측의 손해배상 소송 대상이 됐다. 대법원은 최씨의 사건도 이번 사건과 유사한 취지로 2021년 파기환송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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