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귀’가 강요한 오정세의 숙명.. 조모 김해숙의 실체를 밝혀라?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3. 7. 12.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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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그들은 불안에 시달리는 인간들로 북적대는 세상 속을 조용희 활보한다. 인생에 대한 대가로 인생을 바치려는 인간들 틈을. 그리곤 마침내 그들이 제 앞에 당도해 있는 청구서를 열어봤을 때 흔쾌하게 채권추심에 나선다. 그들의 이름은 태자귀일 수도, 혹은 아귀일 수도, 뭉뚱그려 악귀일 수도 있다.

SBS 금토드라마 ‘악귀’가 슬슬 의도를 드러내며 나병희(김해숙 분)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가는 기분이다.

나병희는 해상의 친할머니이자 중현캐피탈 대표다. 시놉상 호화로운 저택에서 외부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으며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으로 설명돼있다. 외손자이자 유일한 핏줄인 해상에게도 가차 없긴 매한가지다.

6화까지 방송된 스토리를 훑어보면 현생 악귀의 시작점은 결국 나병희의 집이었다. 염해상의 회고에 의하면 그 집에서 해상과 아버지는 즐거웠지만 할머니 나병희는 차가웠고 어머니(박효주 분)는 불안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버지 장례 중 해상모는 어린 해상을 데리고 그 집에서 도망쳐 나온다. 마치 어린 산영(김태리 분)을 데리고 화원재를 도망치듯 벗어난 윤경문(박지영 분)처럼. 하지만 도피 중 해상모는 악귀의 손에 스스로 목을 매 숨진다. 그리고 그녀가 태우고 싶어했던 빨간 댕기는 우여곡절 끝에 민속학자 구강모(진선규 분)의 손에 들어가고 구강모 일가 역시 악귀에 휘둘리게 된다.

염해상의 분석에 의하면 악귀는 몸주의 소원을 들어주며 능력을 키워간다. 가령 보이스피싱범(김성규 분)을 죽인 것도 산영의 원망을 해소해 주고 그를 통해 힘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런데도 붉은 댕기를 만져 몸주가 되었던 해상모와 구강모는 죽이고 해상과 산영은 살렸다. 즉 해상모와 구강모는 죽일 이유가 있었고, 해상과 산영은 살려둘 이유가 있다는 말. 죽은 해상모와 구강모가 공통적으로 한 것은 배씨 댕기와 푸른 옹기조각 등 죽임을 당한 자의 기운이 담긴 물건들을 통해 악귀에게 금제를 걸려 했다는 점이다. 악귀로선 해원을 망치려는 그들을 두고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산영의 할머니 김석란(예수정 분) 역시 구강모의 메모를 통해 금제 방법을 알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제 방법은 마침내 염해상과 구산영도 알게 됐다. 그럼에도 이들을 살려 두는 이유는? 본인의 해묵은 원한을 푸는데 이들이 필요하기 때문 아닐까? 그 해원을 방해하려는 자들은 몸주건 뭐건 치워버리고.

악귀는 화원재를 정리하는 산영에게 속삭여 아귀도가 담긴 필름을 발견하게 한다. 산영이 스캔 파일을 통해 확인한 것은 그저 아귀도였을 뿐인데, 인화한 아귀도 사진 앞엔 해상집 유리창에서 보았던 김우진의 모습까지 담겨있었다. 결국 김우진의 사망을 조사해보라는 아귀의 청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김우진은 바로 나병희의 수족인 김치원(이규회 분)의 아들이다. 김우진은 동갑 친구 염해상과 한집에서 자라며 ‘주인집 아들’ 염해상을 시기·질투하다 죽어 아귀가 된 존재다.

그리고 문제의 나병희는 염해상이 죽은 엄마가 묻으려 했던 배씨 댕기와 푸른 옹기조각을 들이밀었을 때 발작적으로 분노한다. 그 물건들의 쓰임새가 무언지 명확히 아는 듯이.

복수귀인 악귀의 정체가 이목단이라면 그 서슬은 자신을 태자귀로 만든 최만월을 향해야 한다. 1917년생 최만월은 당연히 죽었다. 86세인 나병희는 1937년생이다. 혹시 나병희가 최만월의 딸인 것은 아닐까?

또 구강모(진선규 분)는 연애시절 윤경문(박지영 분)에게 장진리 얘기를 해주었다. “장진리라는 마을에서는 큰 흉사가 있을 때마다 태자귀를 만들어왔어요. 액을 막고 풍요를 가져다주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은 거죠.” 1958년 이목단이 살해됐을 때 나병희는 21세다. 혹시 수호신 태자귀를 필요하게 만든 흉사가 나병희에게 닥쳤던 것은 아닐까?

악귀는 구강모를 가장해 붉은 색 편지를 남겨 산영과 염해상을 끌어들였다. 아귀 김우진도 염해상에게 물었었다. “악귀는 굳이 왜 널 끌어들인 걸까?”

선을 좀 넘어보자면 우진부 김치원은 1959년생이다. 혹시 김치원이 나병희의 큰 아들인 것은 아닐까? 태자귀는 장자 보호를 위해 둘째를 희생양 삼아 만든다고 했다. 빙의된 구강모 역시 뱃속의 둘째를 사산시켰다. 이 부분은 좀 억지스러운 게 태자귀를 만들 것도 아니면서 둘째는 왜 죽였는 지 모호하다. 어쩌면 태자귀의 저주 때문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김치원이 큰 아들, 염해상의 아버지가 작은 아들, 그래서 희생양이 필요한 순간 둘째인 염해상의 아버지가 죽은 것은 아닌가? 또 그 전에 김우진이 먼저 죽은 것으로 보인다. 이 또한 동갑이지만 해상이 형이었던 건 아닌가?

7회 예고편서 금줄을 만들었던 무속인(문숙 분)은 “죽은 아이들을 위해서 경을 읊어달라고 하시더군요.”라 말했다. 그 부탁의 주체는 해상모로 보인다. 즉 우진의 죽음 후 집안의 비밀에 접근한 해상모가 마침내 남편까지 죽자 해상을 데리고 탈출을 감행한 것은 아닌 지 싶다.

그렇게 악귀는 손자 해상의 손으로 나병희의 음습한 과거를 까발기며 복수의 청구서를 들이밀려는 것은 아닐까하는 추론도 해본다.

드라마 ‘악귀’는 이렇게 깔아놓은 밑밥이 많아 얼기설기 스토리를 상상해 보는 재미도 쏠쏠한 작품이다. ‘그래서 결론은?’ 싶은 기대감도 회를 거듭하며 커져 간다.

작가 김은희의 필력이라면 이 복잡한 이야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습될 것으로 기대된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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