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뉴 뺨치는 오리건 쉐할럼 와인을 아십니까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최현태 2023. 7. 1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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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밸트’ 북위 45도 미국 오리건주 빼어난 피노누아·샤르도네 생산/콜린 클래멘스 윌라맷 밸리 최고 산지 쉐할럼 마운틴서 장인 정신으로 소량 생산/와인 스펙테이터 100대 와인 세차례 선정/부르고뉴 빌라쥐급 와인과 거의 흡사

윌라맷 밸리 풍경.  출처 오리건 와인 보드
눈을 감고 와인잔에 코를 깊숙하게 갖다 댑니다. 비강을 파고드는  우아하면서도 스파이시한 화이트 페퍼.  과하지 않은 미묘한 깨 볶는 향. 신선한 모과, 파인애플향. 침이 살짝 고이는 신선하면서 부드러운 산도. 길게 이어지는 피니시. 흠... 블라인드 테이스팅이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전형적인 부르고뉴 샤르도네이군요. 아마도 빌라쥐급인 몽라셰 아니면 뫼르소일겁니다. 당연한 눈빛으로 레이블을 가린 블라인드 천을 벗깁니다. 그런데 아뿔싸. 부르고뉴가 아니네요. 미국 오리건주 샤르도네라니! 놀랍네요. 몽라셰와 뫼르소가 울고 갈 맛입니다. 오리건 최고의 피노누아와 샤르도네를 생산하는 윌라맷 밸리(Willamette Valley)의 아주 작은 와인산지 쉐할럼 마운틴(Chhehalem Mountains). 장인 정신으로 부르고뉴 빰치는 와인을 빚는 콜린 클레멘스(Colene Clemens)를 만나러 오리건으로 떠납니다.
오리건 위치.    출처 오리건 와인 보드
콜린 클래멘스 싱글빈야드 샤르도네
◆시간·떼루아를 한잔에 담는 오리건 와인

프랑스 와인의 심장 보르도와 프랑스 남부산지를 대표하는 론. 이탈리아 ‘와인의 왕’ 바롤로의 고향인 피에몬테. 이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뛰어난 포도가 생산돼 ‘와인 밸트’로 불리는 북위 45도에 걸쳐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에도 이런 산지가 있습니다. 바로 오리건주와 워싱턴주입니다. 오리건주는 북위 42∼46도, 워싱턴주는 북위 45∼49도입니다. ‘Small production. High quality. Big impact.’ 오리건 와인을 홍보하는 ‘오리건 와인 보드(Oregon Wine Board)’ 홈페이지에 적힌 이 문구는 오레곤 와인의 위상을 한 마디로 보여줍니다.

와인밸트와 오리건 위도. 출처=오리건 와인 보드
오리건 생산 포도품종 비중.    출처 오리건 와인 보드
와인 스펙테이터 2021년 90점 이상 비중과 평균소비자가격.  출처 오리건 와인 보드
아주 소규모로 임팩트 있는 고품질의 와인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담겼네요. 실제 오리건 와인은 미국 전체 와인 생산량의 1%에 불과하며 오리건 와이너리의 70%는 일년에 5000케이스(6만병) 미만을 만듭니다. 그럼에도 2015년과 2016년 유명매체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90점 이상을 받은 와인이 20%라는 점은 오리건 와인들이 얼마나 뛰어난 품질인지 말해 줍니다. 특히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2021년 90점이상을 받은 와인 비중은 오리건이 67%로 가장 높고  프랑스(63%), 캘리포니아(58%), 이탈리아(53%), 워싱턴(53%), 호주(46%), 스페인(41%) 순입니다. 하지만 평균 소비자 가격은 오리건 61달러로 프랑스(110달러), 캘리포니아(93달러), 이탈리아(85달러) 보다 낮습니다. 그만큼 가성비가 뛰어난 프리미엄 와인을 생산한다는 얘기입니다. 오리건은 포도나무 한그루당 수확량을 대폭 줄여, 맛과 향의 집중도가 뛰어난 포도로 만드는 프리미엄 와인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오리건 와인 산지.    출처 오리건 와인 보드
오리건 와인산지.    출처 오리건 와인 보드
오리건 산지별 생산 비중.   출처 오리건 와인 보드
◆오리건 대표 산지 윌라맷 밸리

윌라맷 밸리(Willamette Valley)는 오리건 피노누아 생산량의 88%를 담당하는 대표 산지로 전체 오리건 포도밭의 69%(1만1008ha)가 윌라맷 밸리에 몰려 있습니다. 와이너리는 700개 넘습니다. 피노누아가 70%로 가장 많고 피노그리 16%, 샤르도네 8%이며 리슬링, 피노블랑, 게뷔르츠라미너, 소비뇽 블랑 등 다양한 화이트 품종과 시라, 메를로, 가메 등 레드 품종도 1% 미만으로 조금씩 재배합니다. 

서쪽 코스트 산맥, 동쪽 캐스케이드 산맥으로 둘러싸인 윌라맷 밸리는 세계 최고의 와인 재배 지역 중 하나로 꼽힙니다. 코스트 산맥이 비구름을 막고 캐스케이드 산맥이 동부 오리건의 극심한 사막기후에서 포도밭을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코스트 산맥이 가로 막고 있지만 바다에서 내륙으로 길게 뻗은 지형인 ‘밴 두저 코리더’를 통해 태평양의 서늘한 기운이 잘 들어 옵니다.

윌라멧 밸리 와인산지.    출처 오리건 와인 보드
윌라맷 리버.     출처 오리건 와인 보드
북부 윌라맷 밸리 토양 종류와 분포.    출처 오리건 와인 보드
여름 최고 기온 섭씨 25도, 최저 기온 11도일 정도로 서늘한 지역입니다. 하지만 포도가 자라는 여름은 일조량이 아주 풍부합니다. 9월에는 더운 낮시간이 빠르게 줄고 대신 밤이 길어지면서 서늘한 기온이 이어져 산도가 좋은 포도가 생산됩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수확 시기에 보르도 보다 강수량이 적을 정도여서 좋은 포도 재배에 아주 적합한 환경입니다.  

4000년전 빙하가 녹으면서 발생한 미줄라(Missoula) 호수의 대홍수로 모든 토양이 쓸려 내려오면서 윌라맷 밸리가 형성됐는데 덕분에 미네랄이 풍부한 포도가 생산됩니다. 또 최근까지 화산활동이 있던 지역이라 화산토가 많고 바다가 융기한 땅이라 석회질과 칼슘이 매우 풍부합니다.

윌라맷 밸리 서브 AVA
북부 윌라맷 밸리 서브 AVA.    출처 오리건 와인 보드
◆쉐할럼 빈야드에서 태어난 콜린 클레멘스

오리건에는 모두 23개 AVA(American Viticultural Areas)가 있고 그중 윌라맷 밸리 AVA에만 11개 서브 AVA가 포함돼 있습니다. 쉐할렘 마운틴(Chhehalem Mountains), 던디힐(Dundee Hills), 에올라-아미티힐(Eola-Amity Hills), 로렐우드 디스트릭트(Laurelwood District), 로워 롱 톰(Lower Long Tom), 맥민빌(McMinnville), 마운트 피스가·포크 카운티·오리건(Mount Pisgah·Polk County·Oregon), 리본 릿지(Ribbon Ridg), 투아라틴 힐(Tualatin Hills), 밴 두저 코리더(Van Duzer Corridor), 얌힐-칼튼(Yamhill-Carlton)입니다.이중 2006년 지정된 쉐할럼 마운틴 AVA가 윌라맷 밸리에서도 최고의 피노누아와 샤르도네 생산지로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콜린 클래멘스 와인들
콜린 클래멘스 세일즈 매니저 디아나 토마스(Dyana Thomas)
와인 스펙테이터 100대 와인에서 세차례나 선정된 콜린 클레멘스가 바로 쉐할렘을 대표하는 와이너리랍니다.  콜린 클레멘스의 연간 생산량은 8000케이스(9만6000병)에 불과해 미국내에서 거의 소비되고 국내에는 비니더스 코리아를 통해  350케이스(4200병) 정도만 수입됩니다. 대표 와인은 윌라맷 밸리 피노누아 100% 와인 돕 크릭(Dopp Creek), 마고(Margo), 애드리안(Adriane), 빅토리아(Victoria·미수입) ,싱글빈야드 샤르도네입니다. 한국을 찾은 콜린 클레멘스의 세일즈 매니저 디아나 토마스(Dyana Thomas)와 함께 콜린 클래멘스의 매력을 따라 갑니다.
돕 크릭.
◆와인 스펙테이터 100대 와인 3차례 선정

돕 크릭은 도멘 콜린 클레멘스를 대표합니다. 레드체리, 블랙체리 등 잘 익은 과일향으로 시작돼 세이지 등 허브향, 육두구, 정향이 따라오고 잔을 흔들면 서늘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피노누아의 특징인 숲속의 젖은 흙내음이 피어납니다. 이어 담배, 말린 장미가 어우러지고 실키한 탄닌이 매끄럽게 목젖을 타고 흐릅니다.  돕 크릭은 2017년 와인 스펙테이터 100대 와인 42위(2014빈티지)에 올랐고 2018년엔 무려 7위(2016빈티지)를 기록하며 콜린 클레멘스의 명성을 이끕니다. 오리건 와인은 일반 오리건, 윌라멧 밸리, 더 작은 서브 AVA로 나눌 수 있는데 서브 AVA에서 생산된 와인들은 가격대가 30∼40% 더 비쌉니다. 하지만 돕 크릭은 가성비가 뛰어난 점도 100대 와인에 선정된 이유중 하나랍니다.  

돕 크릭.
쉐할럼 빈야드 와인별 포도밭 위치와 클론.
콜린 클레멘스는 6개의 피노누아 클론인 바덴스빌, 포마르, 디종115, 디종114, 디종667, 디종777를 사용하는데 톱 크릭은 모든 클론을 섞어 와이너리의 정체성을 잘 표현했습니다.  피노 누아는 다른 품종을 섞지않고 단일 품종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피노 누아 한가지로 미묘하게 달라지는 맛을 표현하고 싶다면 다양한 클론을 조합하면 됩니다. 피노 누아는 변이가 상당히 잘되는 고대품종이라 이미 다양한 스타일의 클론이 존재합니다.
마고
마고(Margo)는 돕 크릭보다 좀더 복합미가 느껴지는 피노 누아로입니다. 불과 와인 설립 10년만인 2015년 와인 스펙테이터 100대 와인에  45위로(2012빈티지) 선정돼 콜린 클래멘스를 세상에 알린 와인입니다. 잘익은 체리 등 검붉은 과일향과 감초계열의 따뜻한 허브향이 어우러지고 다크쵸콜릿의 농밀한 질감이 매력적입니다. 가죽향 등 3차향도 잘 표현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무쌍한 맛과 향을 보여주기에 오래 와인을 마신 전문가들을 물론, 캐주얼하게 와인을 즐기는 이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애드리안
애드리안과 빅토리아는 싱글 클론으로 만든 리저브 와인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콜린 클래멘스는 포도밭 구역마다 다 다른 클론을 심기에 클론마다 미묘하게 다른 캐릭터를 온전하게 살릴 수 있습니다. 디종 115 클론 100%로 만든 아드리안은 딸기, 크렌베리, 라즈베리, 석류 등 서늘한 기후에서 재배된 피노 누아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합니다. 과일향이 좀 더 집중적으로 풍성하게 느껴지고 피니시는 우아하게 이어집니다. 과일향과 오크, 숙성향이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해 복합미가 뛰어납니다. 
빅토리아
미수입 와인 빅토리아는 디종 777, 디종 667를 블렌딩했습니다. 잔에 따르자 마자 다양한 향들이 폭발적으로 피어납니다. 라즈베리, 석류로 시작해 말린 블랙베리와 검은자두가 겹겹이 쌓이고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감초 등 향신료와 과하지 않은 바닐라 노트도 어우러집니다.  두 와인을 만드는 리저브 피노누아는 1에이커당 생산량이 2t에 불과합니다. 포도송이의 집중도를 최대한 끌어 올리려고 생산량을 통제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중간, 끝까지 모두 임팩트 있는 피노 누아를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애드리아과 빅토리아는 10∼15년 숙성 잠재력을 지녔습니다.
싱글빈야드 샤르도네
콜린 클래멘스 빈야드 샤르도네 2019는 싱글빈야드 와인으로 부르고뉴 샤르도네와 아주 흡사합니다. 미묘한 참깨향으로 시작해 은은한 화이트 페퍼향이 따라오고 아주 잘 익은 자몽, 복숭아, 살구와 열대과일 리치와 파인애플도 살짝 곁들여집니다. 구운 새우나, 랍스터, 로스트 치킨과 페어링이 좋습니다. 스틸탱크 30%,  새오크 25%, 나머지는 바리끄 보다 두배 사이즈인 450ℓ 펀천배럴에 나눠서 발효해 오크향이 튀지 않으면서도 깊이감을 줍니다.  
콜린 클래멘스 포도밭 전경
콜린 클래멘스 설립자 조 스타크(Joe Stark)
◆버려진 폐가에서 장인 정신으로 일구다

조 스타크(Joe Stark)와 아내 비키(Vicki)는 고품질 피노누아를 생산할 토양, 남향, 해발고도 등을 갖춘 이상적인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포도밭을 수년동안 찾아 나선 끝에 쉐할럼 마운틴 AVA와 리본 릿지 AVA 경계에 버러진 농가와 과수원을 찾아내 2005년 비키의 어머니 콜린 클래멘스에서 이름을 딴 와이너리를 설립합니다.  와인 이름 역시 가족 이름에 가져 올 정도로 가족의 사랑이 듬뿍 느껴집니다. 아드리안은 딸, 마고는 손녀이며 빅토리아는 비키 자신의 이름입니다. 콜린 클래멘스의 모든 와인 병에는 ‘MMJ’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는데 손주 맥스와 마고, 딸 아드리안 제튼의 이니셜이랍니다. 

와인메이커 스테판 고프(Stephen Goff)
2008년 오리건에서 비싸기로 소문난 피노누아 명가 보 프레레(Beaux Freres)의 세컨 와인 메이커로 6년 동안 활약한 스테판 고프(Stephen Goff)가 합류하면서 빠른 시간에 고품질 와인을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필라델피아 펜실베니아 대학교 4학년 때 팔라디움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고급 와인을 접한 고프는 1998년 책 출판업자 일을 그만두고 카레로스 크릭(Caneros Creek)에서 수확일을 하면서 피노 누아에 빠졌고 결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포도재배 및 양조 과정을 밟으면서 와인에 뛰어듭니다. 
쉐할럼 마운틴 토양.    출처 오리건 와인 보드
왼쪽부터 해양충적토, 화산토, 로에스.    출처 오리건 와인 보드
콜린 클래멘스가 최고의 와인을 빚는 배경은 조 스타크 부부가 공들여 찾아낸 포도밭의 토양도 큰 몫을 합니다. 쉐할럼 마운틴은 서쪽에 리본 릿지AVA, 동쪽에 로렐우드AVA가 붙어 있습니다. 지도에서보면 마치 아기공룡 둘리가 거꾸로 누어있는 모습이랍니다. 쉐할럼 마운틴은 화산활동으로 생긴 화산토(Volcanic Basalt), 리본 릿지는 융기된 해양퇴적토(Marine Sedimentary), 로렐우드는 수백만년 먼지바람이 쌓여 만들어진 로에스(Loess) 토양으로 이뤄졌습니다. 해양퇴적토에선 다크하고 풍부하며 구조감이 좋은 와인이 만들어지고 화산토에서는 조금 더 가볍고 섬세하면서도 예쁘고 우아한 와인 만들어집니다. 콜린 클레멘스는 셰할렘 마운틴과 리본 릿지에 경계에 있어 두 가지 특징을 모두 지닌 와인을 만들 수 있답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최현태 기자는…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olar),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등을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selles) 심사위원, 소펙사 코리아 소믈리에 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 상파뉴, 알자스와 이탈리아, 호주, 체코, 스위스,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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