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무역 성래은 부회장 “난 공장집 딸, 스승은 아버지”
부친 성기학 회장에게 배운 경영철학 담아내
50년 '흑자' 비결…'공사분리' 공장식구 챙긴 덕
2·3세 경영인, 꽃길만 걷는다는 것은 오해
늘 '공장 딸' 강조, 21년간 현장 곳곳 누벼
성래은(45) 영원무역 그룹 부회장이 어려서부터 아버지 성기학(76) 회장에게 귀에 못 박히도록 들은 말이다. 아버지를 따라 자주 갔던 성남 공장에서 원단을 갖고 놀았던 기억은 아직도 또렷이 남아있다. 성래은 부회장은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로 알려진 영원무역 창업주 성기학 회장의 세 딸 중 차녀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2002년 영원무역에 입사해 2016년 영원무역홀딩스 대표이사로, 2022년 그룹 부회장에 올랐다.
성래은 부회장은 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공장 딸’을 강조해 온 아버지 의중에 대해 “지금은 경영자로서 공장과 구성원을 잘 대표하라는 뜻으로 이해한다”며 “가족(직원) 모두를 대표하는 자리로서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성기학 회장의 ‘영원무역 기업 철학’ 담다
그가 최근 아버지에게 배운 경영철학을 담은 첫 책 ‘영원한 수업’(은행나무출판사)을 펴냈다. 책은 성 회장 곁에서 경영인의 태도와 본질을 배우고 체득한 성 부회장의 생생한 경영 수업 노트다. 앞으로 100년 기업을 준비하는 그의 다짐이자, 오랜 기간 한 기업의 경영인으로 살아온 아버지에 대한 딸의 진심 어린 존경과 헌사다.
월화수목금금금 일하는 게 “내 숙명”이라고 말하는 그가 그간의 많은 특강 요청을 마다하면서도 고심 끝에 책을 낸 이유는 뭘까. 주말 오후 시간을 활용, 집필하는 데만 약 5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성 부회장은 “내년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성기학 회장님에게 배운 경영 수업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그의 곁에서 보고 듣고 배운 한 사람으로서 기업 철학을 기억하고,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대한 자기 생각도 소신껏 밝혔다. 성 부회장은 “전문경영인 제도를 도입한 기업은 기업구조가 투명해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기적 성과에만 치우쳐 회사의 장기 성장에 부정적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어느 쪽이 더 나은지, 더 바람직한지 단언하기 어렵다. 영원은 오너 경영을 택했다”고 책에 썼다.
1974년 이래 적자 없는 영원…“공사 구분하라”
영원무역은 1974년 창립 후 49년 동안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그 비결을 두고선 “(아버지인 성기학 회장이) 회사와 개인을 철저히 구분하고 회사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 결과”라고 했다.
어린 성 부회장이 아버지를 도와 영수증을 분리한 작업이 한 예다. 법인카드가 없던 시절 회사 일로 쓴 영수증에는 법인, 사적으로 쓴 영수증에 개인이라고 적으면 되는 일이었다. “회삿돈을 어떤 이유로든 개인 용도로 손대지 말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은 성 부회장의 경영 철칙이 됐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은 항상 정직해야 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가장 효율적인 경영 방법’이라는 얘기다.
성 회장의 지론은 또 있다. “사양기업은 있어도 사양산업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섬유업이 반도체나 IT산업에 비해 덜 주목받긴 하지만 “인간에게 꼭 필요한 의식주 중 하나인데 어떻게 사양산업이 되겠는가”는 반문이다.
“섬유업은 특히 많은 것에 영향을 받아요. 세계정세는 물론 국가 간 관계, 날씨까지 모든 것이 변수로 작용하죠. 한순간도 느슨해지면 안 되는 게 우리 일입니다.” 일별, 주별, 월별, 분기별, 연도별로 촘촘하게 잡힌 일정을 수행하면서 ‘번아웃’(심신이 지친 상태)이 온 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스스로 터득한 일이었다. “번아웃은 여러 번 왔던 것 같은데, 아직 삶의 긴장을 잘 유지하고 있죠. 오늘 할 일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내일 엄청난 일이 몰려올 것을 미리 상상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가르침도 도움이 됐죠.”
회사 경영은 곧 아버지 이해하는 일
성래은 부회장에게 경영은 곧 아버지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동시에 일에 매진할수록 아버지는 닮고싶은 스승이자, 존경의 대상이더라고 고백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역할과 책임이 늘었고, 저도 책임있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게 자연스러웠죠. 내게 맡겨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자는 결심이 있습니다.”
성 부회장 자신만의 철학도 생겼다. “내 결정의 결과는 내가 책임진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도울 수 있는 상황과 자리에 있을 때 도와라. 그리고 그런 상황이 지속될 수 있도록 내 일을 열심히 하라”고 가르쳤다며 “나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왔고, 그 도움을 베풂으로써 사회의 선순환이 이뤄진다고 믿는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하지 않고, 조언을 소중히 듣는다”고 말했다.
여성 경영인으로서 이야기도 전했다. “성차별을 듣고 자라지 않아 ‘여자’라는 성인지를 모르고 살아왔죠. 그런데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남자 경영인은 없는데, 여성 경영인은 있더라고요. 남의 기준이나 기대(비교)에 따라 일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소중히 여긴다면 성공적인 경영인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아버지인 성 회장은 둘째딸의 첫 책을 건네받은 뒤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궁금해 물었다. “책을 예쁘게 포장해 회의 중간, 쉬는 시간에 살짝 드렸죠. ‘어, 그래. 책 나왔구나. 읽어볼게’라고 하시며 서류가방에 넣으셨어요. 저 역시 쑥스러운 마음이 커 ‘꼭 안 읽으셔도 되어요’라고 했죠. 하하. 이틀 뒤 전해듣기론 ‘(책에 나온 일화들이) 다 기억나는구나’라고 얘기하셨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김미경 (midor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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