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망치는 리더의 탈선 '리더십 디레일러'

백승현 2023. 7. 1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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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
MERCER와 함께하는 'HR 스토리'

“발가락 때만도 못한… 지금, 네 존재 가치는 의미가 없다.” K에게 L이사가 퍼붓는 폭언이다. K는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의 한국지사에서 16년 동안 별 문제없이 근무했다. 그런데 장기근속 휴가를 다녀온 뒤 악몽이 시작됐다. 직속상사인 L이사 때문이다. L이사는 K에게 휴가를 갈거면 3개월치 급여를 줄테니 퇴사하라는 압박하고 다른 구성원 앞에서 비아냥거리듯 핀잔을 주었다.

폭언 뿐만 아니었다. 주말 업무 지시, 밤늦은 시간의 메시지와 전화는 물론이고, 노트를 찢어서 얼굴에 뿌리고 노트로 뒤통수를 가격하는 등 충격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K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들에게도 이어진 폭력적인 언행으로 인해 팀원들은 정신과 상담을 받는가 하면 줄지어 회사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L이사 계속 승승장구하며 조직에서 높은 자리로 올라갔다.

성공하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요건을 흔히 리더십 역량으로 부른다. 리더의 지향점이자 완성된 리더의 모습을 대변한다. 많은 조직에서는 지향하는 리더상을 토대로 리더십 역량을 수립하고 모든 리더가 이를 따르게 한다. 리더가 실패하는 이유는 이러한 리더십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가정한다.

그런데 역량이 우수한 리더라고 여겨지는 인물들도 상당한 수가 실패를 경험한다. 잭 웰치(GE의 전 CEO)와 마크 허드(오라클의 전 CEO)는 섹스 스캔들에 휘말렸다. 켄 레이(엔론의 전 CEO)와 버니 애버스(월드콤 전 CEO)는 성과를 불법으로 조작해 엄청난 파산 스캔들을 일으켰다. 데니스 코즐로스키(타이코 CEO)는 회사 돈으로 6000달러짜리 샤워커튼을 사고 아내 생일 파티를 위해 100만달러를 지불했다.

이런 사태가 이어지면서 리더가 실패하는 이유를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많은 연구를 살펴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만능으로 통하는 리더십 역량은 드물었다. 높은 성과를 내는 리더에게 보이는 공통 특성은 상황에 따라 제각각이었다. 반면 실패하는 리더에게는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성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필요한 요소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유발하는 요소를 자주 보이기 때문에 실패한다는 분석이다.

리더의 실패를 유발하는 요인을 리더십 디레일러(derailer) 또는 디레일먼트(derailment)라 부른다. 기차가 선로를 벗어나는 탈선사고에 빗대어, 리더로서 지켜야 할 선을 벗어난 탈선행동을 의미한다. 리더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과 성격 특성, 내재적 위험 등이 포함된 표현이다. <당신과 조직을 미치게 만드는 썩은 사과>의 저자 미첼 쿠지와 엘리자베스 홀로웨이가 전 세계 500대 기업의 리더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탈선하는 리더로 인해서 직원 중 50% 정도가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하고, 12%는 실제로 회사를 떠났다. 썩은 사과 리더로 인해 자신의 업무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하는 직원은 80%에 달했다.

왜 많은 리더가 명예와 지위, 부와 성공 등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며, 심지어 불법적인 탈선행동을 보이는 걸까? 리더의 탈선 과정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성공적인 리더 모습으로 평가받던 요소가 시간이 흐르면서 탈선행동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강한 추진력과 원대한 목표로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끈 리더는 자칫 지나친 포부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마찰을 일으킨다. 구성원의 능력을 활용하는데 능숙하지 못하고 안정적인 신뢰감을 주는데 문제를 드러낸다. 꼼꼼한 일처리와 장악력이 강점인 리더는 기존 성공방식을 고수하며 자칫 도전을 꺼려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조직을 전략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단기 목표를 채우는데 급급한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살갑게 대하고 사람 좋은 모습으로 조직을 이끌던 리더는 어느 순간 자신과 이견이 있는 사람을 서슴없이 배척하고 악의적인 음해를 서슴지 않는다.

리더십 디레일러는 단순한 약점이 아니다. 강점이 변질된 약점이다. 자신은 강점이라 여기지만 남들은 약점으로 바라보는 부분이 있다. 이를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 맹점이라 부른다. 맹점은 원래 눈의 망막에서 시세포가 없어 물체의 상이 맺히지 않는 부분을 가리킨다. 리더십 디레일러는 남들은 약점으로 느끼지만 리더 본인은 강점이라 착각하는 블라인드 스팟이다.

열기구를 탄 사람은 위로 올라 갈수록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다. 하지만 정착 가까이에 있는 열기구 밑부분은 보기 어렵다. 열기구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도 잘 보이지만 열기구에 올라탄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볼 수 없는 지점이다.

열기구에 올라탄 리더는 자칫 자신의 리더십과 강점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른 관점이나 경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신과 오만에 빠지고 만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직접적이고 진솔한 피드백을 받기 어려워진다. 리더로서 올바르지 않은 사고와 행동을 맹신하고 강력하게 밀어붙인다. 점점 현실과 괴리되고 자기 잇속을 챙기는 목표를 추구한다. 심지어 회사를 사적 이익을 얻는 도구로 활용한다. 자신은 올바른 리더십을 발휘한다 믿지만 실제로는 맹점이 점점 깊어진다. 맹점이 심각해지면 리더는 자신의 길에서 탈선한다. 이는 곧 리더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리더의 탈선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리더에게 나쁜 습관과 탈선 경향을 조기에 알려줘야 한다. 이에 주기적으로 리더십 디레일러를 진단하고 결과를 솔직하게 피드백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자신에 대한 뜻밖의 부정적 사실을 알았을 때 나타나는 감정적 반응은 'S→A→R→A'(사라) 4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는 '충격(Surprise)' 단계인데, 생각지 못했던 결과에 대해 깜짝 놀라는 단계다. 상당수의 리더는 자신이 생각보다 탈선 행동을 많이 한다는 사실을 마주하면 충격에 빠진다. 충격은 곧 이어 '분노(Anger)'를 느끼는 단계로 전환된다. 분노는 보통 실망감과 함께 찾아온다. 자신이 믿었던 구성원에게 배신감과 서운함을 느낀다.

분노의 시간이 지나면 '내가 정말 이런 탈선 행동을 했나?'라는 생각과 함께 '부인(Resist)' 단계가 찾아온다. '내가 얼마나 그들을 위해서 노력했는지 잘 모를 거야', '나를 제대로 볼 기회가 없어서일 거야'라는 자기 변명과 위로를 늘어놓는다. 이러한 단계를 모두 거치고 나면 마지막인 '결과 수용(Accept)' 단계로 흐른다. ‘자신들의 속내를 이렇게라도 표현하는 걸 보면, 실제로는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 '내가 이 결과를 볼텐데도 이렇게까지 피드백을 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언행을 되돌아보게 된다.

리더십의 변화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반추하는데서 시작한다. 결국 'S→A→R→A' 4단계를 거쳐야만 리더는 변화할 수 있다. 자신의 맹점영역이 어디인지 돌아보고 지난날의 언행을 솔직하게 인정할 때 개선 노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리더의 열 가지 강점이 하나의 탈선행동을 덮어줄 수는 없다. 리더는 자신의 강점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강점이 자칫 약점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자신감이 오만으로, 기민함이 의심 가득 찬 눈초리로, 재치가 빈정거림으로, 성실함이 완벽주의로, 친근함이 파벌주의로 변질되지 않는 최적점을 지켜야 한다. 우리 조직에는 리더의 탈선을 조기에 알려주는 경보시스템을 갖추었는지 되돌아보자.

김주수 MERCER Korea 부사장 / HR컨설팅 서비스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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