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입법'하는 법원…삼권분립의 위기
이광선 변호사의 '노동 프리즘'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행정권은 정부에,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하여(제40조, 제66조, 제101조) 삼권분립주의에 입각하고 있다. 그래서 국회는 법률을 제정하고, 사법부는 법률을 적용하며, 행정부는 법률을 집행한다. 그런데 노동분야에서는 법원이 사실상 입법에 가까운 판례를 선고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행정심판기관인 노동위원회에서도 새로운 법리를 만드는 등 이런 현상에 동조하고 있다. 법률에서 모든 상황을 규율할 수 없기에 판례가 법률의 조항을 해석하여 구체적인 사건에 적용을 할 수 있지만, 법률 조항의 구체적인 해석을 넘어 새로운 입법으로 볼 정도의 판례나 노동위원회 판정은 그 사정이 다르다. 특히, 법률을 변경하는 경우에는 입법예고를 하고, 변경되는 법률의 내용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경우 특정 조항의 적용시점을 유예시키는 등의 조치를 통해 사회 혼란을 최소화하고, 원칙적으로 소급입법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새로운 판례가 선고될 경우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형성해 온 사실관계(법률관계)에 그대로 적용이 되므로 사실상 소급해서 효력이 미치는 등 법률개정보다 사회에 미치는 혼란이 더 크다.
법원이 사실상 입법에 가까운 새로운 판결을 선고하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 제94조는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받으면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할 수 있도록 하여, 통일적인 근로조건을 형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변경된 취업규칙은 근로자 개개인의 동의를 받을 필요없이 유효하다(대법원 2008. 2. 29. 선고 2007다85997 판결 등).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과반수 동의를 받았더라도 변경된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개별 근로계약이 있으면 그 개별 근로계약이 우선된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19. 11. 14. 선고 2018다200709 판결). 위 판결에 따르면 유리한 개별 근로계약이 있을 경우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려면, 근로자 과반수 동의 외에 개별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해지는데, 이는 사실상 새로운 입법에 가깝다. 이는 근로기준법 제94조에서 근로조건의 집단적 형성 방법을 명시한 취지와도 맞지 않을 뿐더러 기존 판례와도 배치된다.
또한, 판례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시 과반수 동의 대상이 직접 적용을 받는 근로자로 보았다가(대법원 2004. 1. 27. 선고 2001다42301 판결 등), 해당 취업규칙을 직접 적용받는 대상 뿐 아니라 적용받을 가능성이 있는 대상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고 입장을 변경했다(대법원 2009. 5. 28. 선고 2009두2238 판결). 이로 인해 기존 판례를 신뢰했던 많은 기업들이 당시 판례에서 따라 직접 적용받는 근로자들 과반수 동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판례의 변경으로 인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무효라는 판단을 받게 되었다. 판례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시 과반수 동의를 받지 않은 경우에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을 경우 유효하다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지 않은 법리를 약 45년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갑자기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을 폐기하면서 '집단적 동의권 남용'이라는 새로운 법리를 창설했다.
그 외에도 대법원은 대학 시간제 강사의 강의료 사건에서 남녀고용평등법상 '동일노동가치 동일임금'의 원칙을 언급하며 기존 판례에서 ‘동일가치의 노동’을 ‘당해 사업장 내의 서로 비교되는 남녀 간의 노동’을 기준으로 한다는 설시와 달리 '당해 사업장 내의 서로 비교되는 노동’을 기준으로 한다고 설시하여 ‘남녀 간의’ 부분을 빼 버렸다(대법원 2019. 3. 14. 선고 2015두46321 판결). 그런데 남녀고용평등법은 그 입법목적을 '고용에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제1조). 그런데 위 판결의 취지가 남녀고용평등법상 '동일노동가치 동일임금'의 원칙을 남녀 간의 노동이 아닌 부분까지 확대하려는 것이라면, 이는 분명 남녀고용평등법을 입법한 입법자의 의도를 넘어선 새로운 입법에 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사법부에서의 준(準)입법적 활동 뿐 아니라 행정심판기관인 노동위원회에서도 사실상 입법 기능을 하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2021. 6. 2. 원청(C사)이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이 되므로(실질적 지배력설) 단체교섭을 해태한 것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 결론의 타당성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 결정은 현행 노동조합법상 교섭창구단일화 절차 조항에 배치된다. 노동조합법에서는 복수노조가 있을 경우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고 교섭대표노조가 단체교섭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29조의2). 그런데, 원청이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이 된다면, 해당 하청노조는 원청 사업장에서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 교섭대표노조가 되어야 하는데, 하청노조가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도 거치지 않았고 교섭대표노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원청이 하청노조에 대해 단체교섭 의무가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런 문제가 제기되자, 2022. 12. 30. 중앙노동위원회는 D사 사건에서 원청의 하청노조에 대한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하면서도, 하청노조는 하청 사업장에서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쳤으면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나름대로 현행 노동조합법의 교섭창구단일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노동위원회의 그러한 해석에는 법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노동위원회가 그런 해석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 의문이다. 노동위원회는 원청의 하청노조에 대한 단체교섭 상대방을 인정하려는 시도를 했고, 그 과정에서 현행 법률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가 제기되자 무리한 해석을 한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이미 국회에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포함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소위 ‘노란봉투법’)이 계류 중에 있다. 물론 개정 법률안의 내용도 문제가 있지만, 원청이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은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하지, 행정심판기관인 노동위원회가 할 역할이 아니다. 심지어 최초로 원청의 하청노조에 대한 단체교섭 상대방을 인정한 C사 사건은 이미 중앙노동위원회가 동일한 당사자를 대상으로 원청은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이 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음에도(중앙노동위원회 2018. 7. 2.자 중앙2018교섭46 결정), 갑자기 2021년에 기존 결정을 뒤집고 새로운 해석을 한 것이다.
법률 조항이 모든 상황을 규율할 수 없기에 법원이 법률을 해석하여 구체적인 적용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범위를 넘어서 사실상 입법과 유사한 효과를 가져오는 판결례나 노동위원회 결정은 선고 즉시 곧바로 사회에 적용되므로 그 결론의 타당성을 별론으로 하더라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고, 기존 법령이나 판결례를 신뢰하고 법률관계를 형성한 자들에게는 불의타(不意打)가 된다. 이처럼 법률의 단순 해석이 아닌 사실상 입법의 기능을 하는 것은 입법부인 국회가 법률 개정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헌법의 취지에도, 사회에 미치는 혼란을 최소화하는데 부합할 것이다.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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