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구입 늘자 6월 가계대출 5.9兆 증가…잔액 ‘사상 최대’
2분기에만 12조4000억원 늘어
‘내 집 마련’에 주담대 7조원 급증
“집값 하락세 둔화·대출 규제 완화 여파”
디레버리징 물 건너갔나
지난달 가계가 은행에서 빌린 돈이 5조9000억원 늘면서 가계대출 잔액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최근 주택구입이 늘면서 주택담보대출이 7조원 급증한 영향이 컸다. 은행 가계대출은 1년 9개월 만에, 주택담보대출은 3년 4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정부의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 집값 하락세 둔화, 금융당국의 대출금리 인하 요구 등이 2분기 부동산 투자 회복세를 주도하고 대출 수요를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조만간 금리 인상이 멈추고 최근 집값이 바닥을 다졌다는 기대감도 ‘내 집 마련’을 위한 영끌(모든 대출 수단을 동원해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 부추긴 것으로 분석된다. 은행권 가계대출이 2분기에만 12조4000억원 늘면서 1분기에 나타난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 축소)은 사실상 중단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이 12일 발표한 ‘2023년 6월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5조9000억원 늘어난 1062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4월부터 3개월 연속 증가해 잔액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증가폭은 2021년 9월(6조4000억원) 이후 1년 9개월 만에 가장 컸다.
가계대출의 약 77%를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큰 폭 늘면서 가계대출 증가를 주도했다. 지난달 주담대는 주택구입 자금 수요 확대, 입주물량 증가, 전세자금대출 증가 전환 등에 힘입어 7조원 늘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초기인 2020년 2월(7조8000억원) 이후 3년 4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이다.
윤옥자 한국은행 금융시장국 시장총괄팀 차장은 “주택거래가 지난해의 부진했던 흐름에서 벗어나 연초부터 회복하고 있다”며 “주담대 관련 규제가 상당폭 완화된 데다, 정책모기지론 취급이 증가한 점이 주택구입 관련 자금 수요를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전국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올해 1월 1만9000호, 2월 3만2000호, 3월 3만5000호, 4월 3만4000호, 5월 3만7000호 등으로 증가 추세다. 윤 차장은 “주택거래가 2~3개월 시차를 두고 주담대 수요로 이어지고 있는데, 지난 3~5월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거래량이 늘면서 가계대출 증가 압력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아파트 입주물량과 전세자금대출이 늘어난 점도 주담대 수요를 부추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차장은 “6월 입주물량이 4만2000호로 전월(2만8000호)보다 크게 늘면서 가계의 잔금마련 수요가 증가했고, 5월까지 감소했던 전세자금대출도 6월에 소폭 늘면서 주담대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반면 기타대출은 1조1000억원 줄면서 감소 흐름을 이어갔다. 앞서 5월에는 여행, 가정의 달 소비 등으로 자금수요가 늘었는데, 지난달에는 이런 계절적 요인이 사라지면서 기타대출 감소폭도 전월(-500억원)보다 확대됐다. 기타대출은 높아진 금리 수준 등의 영향으로 2021년 12월부터 지난달까지 19개월 연속 감소세를 지속했다.
이로써 올해 2분기(4~6월) 은행 가계대출은 12조4000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진행된 디레버리징 흐름은 자취를 감춘 모습이다.
한국은행은 우리 경제가 장기적으로 침체에 빠지지 않으려면 그동안 과도하게 불어난 가계부채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창용 한국은행은 총재는 “가계부채는 중장기적으로 상당한 위험 요인이기 때문에 완만한 부채 축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최근 가계부채 축소 흐름이 둔화하면서 금융시스템의 잠재 취약성도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이종렬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가계부채가 계속 증가하면 금융불균형이 누증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대출 비율이 더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행은 현재 100%를 웃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80% 수준까지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도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와 한국은행의 통화긴축 정책이 엇박자를 내면서 가계대출이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금통위원은 “지난해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세계 각국에서 가계부채 둔화 흐름이 나타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디레버리징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기준금리 인상이 가계부채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주택시장 연착륙 목적의 정책 시행으로 가계대출이 늘어나면서 정책 간에 상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지난 5월까지 주택거래가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가계대출도 7월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 차장은 “주담대는 시차를 두고 증가할 가능성이 높지만 입주물량, 전세자금수요,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은 불확실하기 때문에 7월 가계대출 동향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지난달 은행 기업대출은 5조5000억원 늘었다. 6월 기준으로 증가폭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두 번째로 컸다. 6개월 연속 증가해 잔액은 1210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대기업 대출은 기업 운전자금 수요 등으로 2조4000억원 증가했다. 중소기업 대출은 은행의 완화적 대출태도 등의 영향으로 3조1000억원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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