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모르는 위기의 여당[오승훈의 시론]

2023. 7. 1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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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논설위원
총선 여론 ‘정부 지원 < 견제’
김기현체제 출범 후 요지부동
野 폭주 막기 급급, 위기감 없어
중간평가 선거戰 주체는 여당
공약·공천 제1책임도 당대표
책임감 보여야 지지층 돌아와

윤석열 대통령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하던 10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미국 방문 길에 올랐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윤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다지는 후속 작업이라지만, ‘시국이 어려운 이 시점에 왜’ 하는 생각이 앞선다. 당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이 같이 갔다. 서둘러야 할 현안, 특별한 일정이 있지는 않아 보인다. 자리를 비워도 더불어민주당이 계속 ‘똥볼’을 차주리라 기대한 건가.

한국갤럽이 지난 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내년 4·10 총선 전망은 ‘정부 지원론’이 38%, ‘정부 견제론’이 50%였다. 정부 지원론은 윤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도에 수렴됐다. 무당층에선 52%가 야당 승리를 원했고, 여당 승리는 20%에 그쳤다. 중도층도 여당 승리(32%)보다 야당 승리(55%)에 쏠렸다. 지난 3월 조사에선 정부 지원론(42%)과 견제론(44%)이 비등했으나, 4월부터 견제론 우세 구도로 전환돼 넉 달째 유지되고 있단다.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 논란과 김기현 대표 체제의 여당이 출범한 시점과 맞물린다. 그새 대통령의 잇단 외교 성과 등에 대한 호평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반면, 민주당은 대장동 재판·돈봉투 의혹·김남국 코인 의혹 등 악재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야당으로 기울어진 민심은 요지부동이다. 보수층은 방황하고 있고, 등 돌린 중도층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이 정도면 야단법석은 아니더라도 각성이라도 하는 척 위기감이 흘러야 하지만, 당 지도부에선 그런 기미조차 찾을 수 없다. 혹자는 내년 총선이 지난 대선의 연장전이라서 각 진영이 사활을 걸 수밖에 없고, 그러면 집 나갔던 지지층도 돌아올 것이라고 한다. 그 전망의 편안함이 부러울 정도다.

역대 선거에서 총선은 전망적 투표가 이뤄지는 대선과 달리 회고적 투표 경향이 있었다. 집권 3년 차에 치러질 내년 총선은 윤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가 될 것이란 얘기다. 집권 중반기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한 선거는 코로나19 와중에 치러진 2020년 제21대 총선뿐이다. 그런데,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 평가가 선거 구도의 최대 변수이기는 하지만 그 총선을 치르는 주체는 대통령이 아니라 정당이고, 여권의 대표 선수는 국민의힘이다. 대통령은 제아무리 인기가 높다고 해도 법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설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하면서도, “선거에서 정치적 중립성은 모든 공무원의 기본적 의무이고, 대통령은 당연히 공직자에 해당한다”고 했다. 전장을 지휘하는 사령탑은 여당 대표이고, 그 성패의 최우선 책임도 그에게 지워진다. 국민의 삶을 진전시킬 선거공약을 만드는 것도, 경쟁력이 큰 기성 후보와 정체성에 맞는 신인들을 발굴해 당을 일신하는 공천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차기 리더군을 키워 정권 재창출의 전망을 높이는 것도 당 대표가 책임자다. 이제 넉 달을 넘긴 김기현 대표 체제가 과연 그런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냉철하게 되짚어 보면 지난 3월 전당대회 이후 국민의힘발(發) 국가적 의제나 입법 사례는 찾기 힘들다. 대통령이 제기한 이슈를 따라 숟가락 얹기에 바쁘거나, 아니면 민주당 폭주 막기에 급급했던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일 청년정책 점검회의에서도 “선거공약을 120개 국정 과제로 정리해 99개 법안을 우리 당에서 제출했는데, 제대로 논의되거나 통과된 게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입법의 벽에 막혀 생긴 ‘시행령 정부’, 인사청문회 야당 몽니를 우려한 ‘차관 정부’란 비아냥을 듣는데 의석 부족 탓만 하고 있으면 내년 총선도 해보나 마나다. 과거 여소야대 때 여권이 모두 그랬던 것도 아니다. 정치 경험이 없는 대통령에게 여의도로 통로를 열어주고, 소수당의 조건을 딛고 나서서 다수당과 대치와 협상의 변주를 해내야 하는 주역이 여당이다.

국익과 민생에 화급을 다투는 일이라면, ‘여당의 장외투쟁’이란 초유의 일도 감행할 의지와 책임감이 있는 정당이어야 한다. 의견 차가 큰 협상에서 묘수를 찾아내고 타협과 양보를 끌어내는 일, 다시는 안 볼 것 같은 원수지간도 만나게 하는 일, 우리는 그런 것을 두고 ‘정치력이 있다’고 한다. 그게 돌아오지 않은 다수가 바라는 여당이다. 용산을 바라보며 안달이 난 여당이 아니다.

오승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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