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죽인 죄수가 무대 위 철창에…한국 초연 연극 ‘테베랜드’

허진무 기자 2023. 7. 1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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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테베랜드>의 한 장면. 쇼노트 제공
연극 <테베랜드>에서 극작가 ‘S’를 연기하는 배우 정희태(왼쪽), 죄수 ‘마르틴’과 배우 ‘페데리코’를 연기하는 배우 이주승. 쇼노트 제공

죄수 ‘마르틴’은 아버지를 포크로 21번 찔러 죽여 존속살해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극작가 ‘S’는 마르틴을 인터뷰해 그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려 한다. 무대 위 철창을 설치하는 조건으로 실제 마르틴을 출연시킬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정부가 반대하자 마르틴을 연기할 배우 ‘페데리코’를 섭외한다. S는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연극에 ‘테베랜드’라는 제목을 붙인다.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끔찍한 예언을 피하려다 결국 예언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한 인물이다.

연극 <테베랜드>를 보러 지난 5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 들어서자 무대 위 거대한 철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르틴 역의 배우 이주승은 아직 연극이 시작하기 전인데 철창 안에서 농구공을 드리블했다. 이주승은 페데리코까지 연기해 ‘1인 2역’을 맡았다. S 역의 배우 정희태는 불쑥 나타나더니 객석을 향해 연극 <테베랜드>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앗, 착각이었다. 연극은 이미 시작했다. 그는 이미 정희태가 아니라 S였다.

S와 마르틴, 페데리코의 대화 주제는 신화(오이디푸스, 스핑크스), 문학(소포클레스, 도스토옙스키), 기호학(롤랑 바르트), 정신분석(프로이트), 종교(성 마르틴), 음악(모차르트, 호베르투 카를루스), 스포츠(농구)를 넘나들며 지적 유희를 보여준다. 배우의 대사량이 엄청나 관객도 집중력이 필요하다.

서사가 단순해 보이지만 다층적인 구조로 전개된다. 마르틴의 살인이 법적으로 존속살해일 수 있겠지만 윤리적으로도 존속살해일까. S가 마르틴이 아버지를 죽인 이유를 알아갈수록 두 사람의 관계도 미묘하게 변화한다. 두 배우는 차근차근 감정을 쌓아올려 관객의 마음에 천천히 스며드는 감동을 줬다. 특히 이주승이 연기하는 마르틴의 얼굴에선 닮아갈 아버지가 없어진 아이의 연약한 분노와 무참한 혼란이 보였다.

연극은 현실의 재현일까 창조일까. S는 “연극과 현실 사이에는 항상 거리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 거리는 점점 가까워져 나중에는 구분이 어려워진다. S가 대화하는 상대가 마르틴인지 페데리코인지 헷갈린다. S가 연출하는 가상의 연극 <테베랜드>는 관객이 관람하는 현실 속 연극과 포개진다.

연극 <테베랜드>의 한 장면. 쇼노트 제공

무대 구조가 특이하다.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은 일반적인 극장처럼 ‘액자틀 무대(프로시니엄 무대)’가 아니라 ‘원형 돌출 무대’로 설계됐다. 무대를 중심으로 객석이 180도 펼쳐진 구조여서 관객 위치에 따라 시야가 달라진다. 철창 위에 달린 스크린을 통해선 내부 폐쇄회로(CC)TV 화면이나 자료 사진을 보여줘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원형 무대가 몰입감을 높일 뿐 아니라 작품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연기가 정면을 향한 장면이 많아 양쪽 측면 객석 일부 관객은 시야가 다소 불편할 수도 있겠다.

<테베랜드>는 우루과이 극작가 세르히오 블랑코의 희곡이 원작으로 이번이 한국 초연이다. 연극 <그을린 사랑>으로 2020년 백상예술대상 연극상을 받은 신유청이 연출을 맡았다. 공연 회차에 따라 S는 배우 정희태, 이석준, 길은성이, 마르틴·페데리코는 배우 이주승, 손우현, 정택운이 연기한다.

오는 9월24일까지 공연한다. 공연 시간은 휴식 15분을 포함해 170분. R석 6만6000원, S석 5만5000원. 만 17세 이상 관람가.

쇼노트 제공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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