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튀르키예 경제파탄 막으려 '친구' 푸틴 손절한 듯
바그너 무장반란도 영향준 듯…러와 '특수관계' 포기할지는 의문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러시아에 사실상 등을 돌리고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지지한 배경에는 결국 경제난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와 회동하고 스웨덴의 나토 가입 동의 절차를 빨리 진행하는 데 전격 합의했다.
그동안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완강히 반대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입장 선회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커다란 외교적 타격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푸틴 대통령이 에르도안 대통령을 "친구"라고 호칭하는 등 각별한 친밀감을 보여왔고 에르도안도 그동안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한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외의 행보다.
이와 관련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현지시간) "터키의 경제난이 에르도안으로 하여금 푸틴과 멀어지게 했다"며 "그(에르도안)가 나빠진 경제를 부양할 방법을 찾다가 미국 및 미국의 서방 동맹국들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전 발발 이후에도 튀르키예는 외화를 획득하기 위해 서방의 비판에도 러시아에 무기를 팔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러시아와 거래로 얻는 자금만으로 자국 경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지적한다고 WSJ이 전했다.
튀르키예의 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40% 가까이 기록하는 등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지난 10년간 자국 화폐인 리라화 가치는 90% 이상 하락하며 환율 방어를 위한 중앙은행 준비금이 고갈되는 등 경제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튀르키예가 2021년 이후 2년 넘게 금리 인하 기조를 고수하는 잘못된 경제정책을 편 데다 지난 2월 남동부 지역을 강타한 지진이 경제난을 가중했다.
이스탄불에 있는 싱크탱크 경제외교정책센터(EDAM)의 시난 울겐 소장은 "튀르키예가 심각한 경제적 압박을 받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 때문에 튀르키예가 무역 및 재정 파트너들과 관계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도 이날 에르도안 대통령이 스웨덴의 나토 가입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신호라며 그 배경으로 권력 유지에서 저돌적인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과 튀르키예의 경제 문제를 꼽았다.
NYT는 "(에르도안의) 입장 선회는 통제되지 않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대규모 부채, 대지진 피해의 복구 비용 급등의 압박으로 튀르키예 경제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나왔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에르도안)가 러시아와 무역을 유지하려고 애쓴 것처럼 서방 국가들과 좋은 경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튀르키예 경제난 외에 '스트롱맨'으로 통해온 푸틴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의문점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서방과의 관계 재정립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WSJ은 지난 24일 러시아 민간기업 바그너그룹의 무장 반란이 발생한 뒤 에르도안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이 약해졌다고 여긴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근 외교적으로 러시아를 난처하게 하는 행보를 잇달아 보였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7일 이스탄불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할 자격이 있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명분으로 삼는 나토 가입 문제에서 우크라이나에 손을 들어주는 듯한 발언이었다.
그다음 날 젤렌스키 대통령은 결사적 항전 끝에 러시아군에 붙잡힌 뒤 튀르키예에 머물고 있던 전직 마리우폴 주둔군 지휘관 5명과 함께 귀국했다.
이에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아무도 우리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 합의에 따르면 이 우두머리들은 분쟁이 종식될 때까지 튀르키예에 남았어야 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실리외교를 추구하며 서방에 다가선 모양새지만 오랫동안 우방인 러시아와 외교에도 계속 신경을 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직 튀르키예 고위 외교관인 지낸 굴루 게제르는 WSJ에 튀르키예가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러시아와 특수관계를 포기하지 않은 채 서방과 관계를 강화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시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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