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학성 악플에 매년 35조 증발...사람도 기업도 병든다
이태원 생존자 악플에 극단선택
직장상사·경쟁사 근거없이 비방
“조금만 실수해도 조롱하고 비하당할 게 그려져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룹 ‘엑소’ 멤버 수호)
“(악플을 보니) 같이 숨 쉬고 같은 공간을 살고 있는 시민이 맞나 싶을 정도였어요.” (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가족)
주요 포털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타인에 대한 악의적 비방 또는 비하를 목적으로 작성하는 악성댓글로 인한 사회적 폐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악성댓글로 인해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변호사 선임비와 의료비 등 사회·경제적 비용만 연간 35조원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다.
▶악플에 쏟아붓는 사회적 비용, 기아 시총 맞먹어=악성댓글 피해가 심각한 사회적 피해로 떠오르면서 법조계·학계·경제계 등 사회 각계에서는 “무분별한 악성댓글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악성댓글에 따른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 역시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싣는다. 지난해 10월 연세대 바른ICT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악성댓글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간 최소 30조5371억원, 최대 35조3480억원이다. 이는 코스피 상장사 가운데 시가총액 순위 9위인 기아의 시총 35조5809만원(11일 종가기준)과 맞먹는 수준이다.
불안·우울로 인한 행복 상실 기회비용이 약 28조원에 달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스트레스로 인한 저하 기회비용을 비롯해 변호사 선임과 손해배상비용 등도 사회·경제적 비용에 포함됐다.
특히, 만 20~69세 인터넷 이용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절반 수준인 46.5%가 ‘악성댓글 피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가해자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답한 비중은 80.5%를 차지했다.
▶“죽는데 이유 있어?”...찌르고 헐뜯는 아무말 대단치=근거 없는 자의적 또는 악의적 잣대로 상대방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극단적 혐오를 조장하는 악성댓글로 인한 피해는 개인과 기업의 구분 없이 확산하고 있다.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기업이 경쟁력을 상실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지난해 12월 이태원 참사로 친구를 잃은 10대 생존자 A군이 서울 마포구 한 숙박업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 측에 따르면 A군은 참사 이후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심리치료를 받는 등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끊임없는 악성댓글에 스트레스를 받아 온 것으로 전해졌다.
A군의 가족은 한 방송사와 인터뷰에서 “숨진 친구들을 모욕하는 듯한 댓글을 보면서 화를 많이 냈다”며 “혼자만 살아남은 것이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비난 댓글을 보고 무너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들은 지금도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욕하거나 조롱하는 악성댓글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유족 34명은 지난해 ‘희생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막아달라’며 정부에 호소했다.
지난해 9월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가족 역시 악성댓글에 시달렸다. 희생자의 삼촌은 “한녀(한국 여성)가 죽는데 무슨 이유가 있느냐” 등의 댓글을 보며 “같이 숨 쉬고 같은 공간을 살고 있는 시민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유명인도 악성댓글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뮤지컬 ‘모차르트!’에 출연 중인 그룹 ‘엑소’의 멤버 수호는 최근 팬 커뮤니티 플랫폼을 통해 “제 뮤지컬이 대체 어디서 반응이 안 좋다고 그런 글을 마음대로 날조해서 쓰는지 모르겠다”며 “제가 조금만 실수해도 지금 이렇게 조롱하고 비하당할 게 그려지기에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해명했을 땐 늦어...” 피해 기업, 존폐 기로 서기도=악성댓글로 인한 피해는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2021년 한 직장인 SNS 사이트에 B기업 직원이 올린 글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작성자는 근무하는 회사 내 상사들에 대해 “굉장한 꼰대로 마치 다들 조현병 말기 환자들 갔다”고 비난했다. 특히 이 작성자는 “B기업 CEO(최고경영자)가 여직원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기업은 ‘작성자가 허위 사실을 적시해 회사의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후 조사 결과 글을 올린 직원과 CEO의 사무공간은 전혀 다른 건물에 있었고, 심지어 두 사람은 만난 적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대행사가 돈을 받고 경쟁 업체를 비방하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올리다 적발되는 경우도 있다. 2019년 3월에는 인터넷 육아 정보 카페 등에 “B유업 우유에서 쇳가루 맛이 난다”, “B유업 목장 인근에 원전이 있어 방사능 유출 영향이 있을 것” 등 특정 기업을 비방하는 댓글이 잇달아 올라왔다.
피해를 본 B유업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수사 결과, 경쟁 업체가 홍보대행사를 통해 50개의 아이디로 조직적 비방 댓글 작업을 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이외에도 모 주류사가 경쟁사 소주에서 경유가 검출됐다는 의혹 글을 퍼 나르거나, 온라인 입시교육업체가 댓글 전문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경쟁 업체와 소속 강사를 비난하는 댓글 20만여 개를 올렸다가 적발돼 법원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터무니없는 허위 사실이라 할지라도 인터넷상에 퍼지게 되면 영업과 채용 등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된다”며 “이미지 쇄신을 위해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도 피해가 온전히 회복되기란 쉽지 않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해 악성댓글 작성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사법부에서 명예훼손 혐의를 인정되더라도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는 사례가 많은 만큼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인 경우 그 행위로 인한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배상하게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대표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서재근 기자
likehyo8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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