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퓨전] 세계 최고 핵융합장치 JET '은퇴'…英 "첨단 실험장치 'STEP' 개발 본격화"
“영국의 차세대 핵융합 실험장치 ‘스텝(STEP, Spherical Tokamak for Energy Production)’은 미국의 유인 달 탐사 계획 ‘아폴로’와 닮았습니다. 우리가 가진 기술의 최첨단까지 가본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스텝은 개발 과정부터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 기술을 도입합니다. 완성된 후에는 핵융합 에너지의 상용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폴 메스벤 영국원자력청(UKAEA) 스텝 개발국장은 11일 영국 옥스퍼드에서 열린 '핵융합공학심포지엄2023(SOFE2023)'에서 최근 구상이 마무리 단계에 돌입한 핵융합 실험장치 스텝에 대해 이같이 소개했다. 메스벤 국장은 “스텝은 산업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의 상업용 에너지를 생산할 것”이라며 “가까운 시일 생태계에 참여할 파트너 모집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핵융합 연구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영국이 새롭게 선보이는 실험장치 스텝은 이날 행사장에 모인 청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간 영국 핵융합 실험장치를 대표했던 ‘제트(JET, Joint European Torus)’가 올해 말 40년 만에 은퇴하게 되면서 스텝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유럽 내 협력기구인 유로퓨전(EUROfusion)과 UKAEA가 협력해 개발한 제트는 오랫동안 세계 최대 규모의 핵융합 연구장치로 가동하며 핵융합에너지 발전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이번 심포지엄의 부대행사인 제트 관람은 장치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한 각국 연구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1983년 건설된 제트는 당초 8년 동안 운영될 예정이었지만 예상을 웃도는 성과를 내놓으면서 운영이 연장됐다. 1991년 세계 최초로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통한 플라즈마를 생성하는 데 성공했다. 1997년 중수소와 삼중수소의 핵융합을 통해 21.7메가줄의 열에너지를 생산해냈다.
지난해에는 핵융합 반응 실험을 통해 5초 동안 약 59메가줄(MJ)의 열에너지를 생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강연에서 제트의 그동안 성과를 되짚은 페르난다 리미니 UKAEA 수석개발자는 “제트가 남긴 성과는 다음 세대의 연구에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라고 자평했다.
오랫동안 세계 최고의 핵융합 실험장치로 자리매김한 제트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의 개발이 진전되면서 자연스럽게 운영 중단의 수순을 밟게 됐다. 핵융합 반응을 위해 투입한 에너지 대비 출력에너지 비율을 나타내는 ‘Q’값을 살펴보면 제트의 기록은 0.33이다. ITER의 목표값은 10이다. 한 세대 이전의 기술로 개발된 제트가 ITER와 나란히 성과를 겨루기엔 역부족인 것이다.
제트의 뒤를 잇는 스텝은 최근 부지선정 작업까지 완료했다. 이날 스텝 개설 계획에 대해 발표한 댄 울프 UKAEA 스텝상용화 책임자는 “노팅엄셔주 북부 석탄발전소 부지가 스텝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것”이라며 “2050년 전 시범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첨단 핵융합 실험장치를 표방하는 스텝은 ‘지속 가능한 핵융합에너지 생성장치’를 목표로 한다. 이날 스텝의 기본 구상에 대해 발표한 조나단 킵 UKAEA 수석엔지니어는 “가동에 필요한 연료를 자급자족하는 구조로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발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AI를 활용해 최적의 설계전략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편집자주] 에너지는 경제성장, 국가안보와 직결됩니다. 석유 등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원은 일부 국가가 선점하고 있는 데다 탄소중립이라는 전지구적인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핵융합에너지는 꿈의 청정 에너지원입니다. 기술을 주도하는 국가가 에너지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수십년간 기술 확보를 위한 세계 각국의 노력들이 최근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이미 핵융합에너지 기술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도 2050년 핵융합에너지 실증 비전을 최근에 제시했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핵융합에너지 기술 확보를 둘러싼 전세계의 움직임을 짚어보고 기술혁신의 중요성을 공유하기 위해 '레디! 퓨전' 기획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옥스퍼드=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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