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익명성 뒤에 숨은 악플에 연 35조 낭비

박민 2023. 7. 1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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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댓글, 허위사실 확산 및 혐오 조장
유명인, 일반인·기업 등 대상 가리지 않아
우울증이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기업은 허위 댓글에 회복 불가능한 손실
규제 있지만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 그쳐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 조치 시급”

[이데일리 박민 기자] ‘연 35조 3480억원.’

악의적으로 허위 사실을 퍼트리는 악성 댓글, 일명 ‘악플’로 인한 피해를 사회·경제적 비용으로 환산한 금액(연세대 바른ICT연구소 집계)이다. 이는 우리나라 최대 광역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의 한해 예산(2021년 순계예산 기준, 35조4485억원)과 맞먹을 정도로 막대한 사회적 손실을 낳고 있다. 특히 일부 피해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큼 부작용이 심각하고, 기업의 경우 심각한 경제적 피해까지 안기고 있지만 정작 규제와 처벌은 턱없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온라인 댓글 도입의 취지인 ‘표현의 자유’는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는 자유가 아니다”라며 “악성 댓글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크다는 공감대가 확인된 이상 포털 및 커뮤니티상 무분별한 악성 댓글에 대한 규제 강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 무분별한 악성 댓글 근절 위한 실효성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악성 댓글 , 실제 처벌은 미미

현행법상 악성 댓글을 달아 적발되면 형법상 모욕죄로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정보통신망법상 사이버 명예훼손죄가 인정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이 가능하고, 허위사실 유포는 7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처벌은 미미하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 아래 무죄가 선고되거나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단순 일회성 악성 댓글로 처벌받는 경우는 사실상 없고, 댓글이 허위라 하더라도 비방 목적이 없었거나 공익성을 인정받으면 유죄 선고를 피할 수 있다. 악성 댓글을 삭제하고자 할 경우에도 피해자가 일일이 포털 등 사업자에 요청하고 직접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

이처럼 악플 행위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치다보니 인터넷 포털 및 게시판 등에 악의적 비방 또는 비하를 목적으로 작성하는 ‘악플’이 넘쳐나고 있다. 이로 인한 사회적 폐해도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추세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는 온라인 댓글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국민은 여전히 10명 중 9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일반인·기업에 무분별한 비방 포화

악성 댓글의 공격 대상은 유명인을 넘어 일반인도 가리지 않을 정도로 광범위하다. 지난해 12월 이태원 참사로 친구를 잃은 10대 생존자가 서울 마포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던 사례도 대표적이다. 그는 심리치료에도 계속되는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이 같은 선택의 배경에는 무분별한 악성 댓글이 있다는 후문이다. 숨진 참사 생존자의 가족은 “숨진 친구들을 모욕하는 듯한 댓글을 보면서 굉장히 화를 많이 냈다”며 “혼자만 살아남은 것이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비난 댓글을 보고 무너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참사 직후 인터넷 포털과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는 “놀러가서 죽은 것인데 애도하지 않겠다”, “죽어도 싸다” 등의 비방성 댓글은 물론, 이번 참사가 마약과 연관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가 담긴 악성 댓글이 무차별적으로 올라왔다. 한

이처럼 대다수 일반인도 인터넷과 SNS 등이 일상 속으로 깊이 파고들며 무분별한 악성 댓글의 타깃이 되고 있다. ‘참교육’이라며 신상 털기를 하거나, 한 번 악성 댓글이 달리고 나면 경쟁적으로 더 강하고 자극적인 댓글이 달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지난해 9월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가족 역시 악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희생자의 삼촌은 “한녀(한국 여성)가 죽는데 무슨 이유가 있느냐” 등의 댓글을 보며 “같이 숨 쉬고 같은 공간을 살고 있는 시민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며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기도 했다.

사회적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의 경우 기업 또는 기업인을 향한 무분별한 비방성 악성 댓글로 사회적 평판 하락 등 자칫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지난 2021년 한 직장인 SNS 사이트에 A기업 직원이 올린 글은 대표적 사례다. 작성자는 자신의 상사들이 ‘굉장한 꼰대’로 “마치 조현병 말기 환자들 같다”며 비난했다. 내용 중 특히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CEO의 여직원 성희롱 발언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해당 기업은 작성자가 허위 사실을 적시해 회사의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강력 반발했다. 조사 결과 글을 올린 직원과 CEO의 사무공간은 전혀 다른 건물에 위치해 있었으며, 두 사람은 만난 적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대행사가 돈을 받고 경쟁 업체를 비방하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올리다 적발되는 경우도 있다.

2019년 3월, 인터넷 육아 정보 카페 등에 “B유업 우유에서 쇳가루 맛이 난다”, “B유업 목장 인근에 원전이 있어 방사능 유출 영향이 있을 것” 등 특정 기업을 비방하는 댓글이 무더기로 올라왔다. 피해를 입은 B유업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경쟁 업체가 홍보대행사를 통해 50개의 아이디로 조직적 비방 댓글 작업을 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모 주류사가 경쟁사 소주에서 경유가 검출됐다는 의혹 글을 퍼나르거나, 온라인 입시교육업체가 댓글 전문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악플 20만여 건으로 경쟁 업체와 소속 강사를 비난한 사실이 적발돼 법원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터무니없는 허위 사실이라 할지라도 인터넷상에 퍼지게 되면 영업과 채용 등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된다”고 토로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도입해야”

이처럼 도를 넘는 악플에 21대 국회 들어 악성 댓글 작성자의 처벌 수위를 높이거나, 사이버 혐오·차별 정보 유통죄 신설 등 총 9건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어떠한 법안도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형사 처벌 강화 주장이 표현의 자유 약화 우려에 번번이 가로막힌 탓이다.

이에 따라 민사적 해결책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한 경고 효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미국 등 해외 국가들 역시 유사한 규제를 이미 시행 중이다. 미 플로리다 법원이 문제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 알선 사업을 하던 한 시민에 대해 ‘사기꾼’이라는 악플을 단 여성에게 무려 1130만 달러의 배상 판결을 내리는 사례는 유명하다.

법조계 한 종사자는 “온라인 댓글 내 악의적 허위 정보가 여과 없이 노출되며 야기되는 사회적 비용과 폐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에 번번이 막혀온 악성 댓글 규제 강화를 통한 대다수 시민 보호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민 (parkm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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