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 표본지 선정…인간이 바꾼 지질시대 담긴 캐나다 호수
학계 "1950년부터 새 시대"…내년 부산에서 인류세 여부 결정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인류가 지구 환경을 바꿔놓은 지질시대를 뜻하는 인류세.
그 특색과 변모 과정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곳으로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크로퍼드 호수가 선정됐다.
CNN방송은 11일(현지시간) 35명의 지질학자로 구성된 인류세 워킹 그룹(AWG)이 투표를 통해 9개 후보지 중 퇴적물에 인류의 핵실험 흔적이 남아있는 크로퍼드 호수를 인류세 표본지, 즉 국제표준층서구역으로 선정했다고 보도했다.
AWG는 2016년 인류세의 시작점을 핵무기 실험이 시작된 1950년께로 잡기로 정했고, 지난해 말에는 인류세 단위를 홀로세(Holocene)와 같은 '세'(epoch)로 규정할지, 홀로세에 속한 '절'(age)로 규정할지를 놓고 투표한 바 있다.
인류세란 '인간이 지구 환경을 예전과 완전히 다르게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라는 개념이다.
지구의 46억년 역사는 가장 큰 시간 범위인 누대(eon)부터 대(era)-기(period)-세(epoch)-절(age)로 나뉘며 현재는 '현생누대-신생대-4기-홀로세-메갈라야절'이다. 홀로세는 '마지막 빙하기 이후 현재까지' 1만1천700년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 사이에서 인류가 기후 등에 뚜렷한 변화를 가져왔고 그 흔적이 지각에 남아 지질시대를 바꿔야 할 정도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인류가 각종 광물을 채굴하고, 화석연료를 태워 온실가스를 내뿜고, 핵무기 등으로 방사성 물질을 방출, 지구 지질에 근본적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AWG 위원장 콜린 워터스 영국 레스터대 명예 교수는 "80억명의 인구가 모두 지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그 결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우리는 새로운 지구의 상태로 진입했으며 이는 새로운 지질 시대로 정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류세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표본지 후보로 ▲ 일본 규슈섬 벳푸만 해양 퇴적물 ▲ 캐나다 온타리오주 크로퍼드 호수 진흙층 ▲ 호주 플린더스 산호해 산호 ▲ 발트해 고틀란드 분지 해양 퇴적물 ▲ 남극 팔머 빙핵 얼음 ▲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빌호 퇴적층 ▲ 중국 지린성 쓰하이룽완 호수 진흙 ▲ 폴란드 수데테스산맥 늪지 토탄 ▲ 멕시코만 웨스트 플라워가든 뱅크 산호 등이 올랐지만 이 중 크로퍼드 호수가 선정됐다.
워터스 교수는 후보지 중 한 곳을 고르는 것이 매우 어려웠고 투표가 박빙이었지만, 크로퍼드 호수의 퇴적물이 인류세의 시작 시점을 특히 정확히 보여줬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크로퍼드 호수는 면적 2.4헥타르로 크진 않지만, 깊이가 24m에 달한다.
크로퍼드 호수의 지층에서 채취된 퇴적물에는 플루토늄과 같은 핵폭탄 실험의 지구 화학적 흔적이 발견되고, 이를 연간 단위로 표본 조사를 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크로퍼드 호수를 국제표준층서구역으로 선정한 AWG는 올여름 국제층서위원회(ICS) 산하 제4기층서소위원회에 인류세를 공식화하기 위한 제안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소위원회 60%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인류세는 ICS로 넘어가 또 투표에 부쳐지고, 여기서도 60% 이상의 찬성표를 받아야 비준을 위한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인류세에 대한 최종 결정은 내년 8월 부산에서 개최될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나올 전망이다.
인류세가 승인된다면 인류세는 4기의 세 번째 시대가 된다. 다른 '세'는 수백만년 동안 계속됐지만 홀로세는 1만년 정도로 특히 짧았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나 인류세 인정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롱비치 캠퍼스의 스탠 피니 지질과학 교수는 인류세의 시작 시점이 1950년께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 층서학적 기록이 인류의 수명 정도가 될까 말까 할 정도로 상대적으로 적다고 지적한다.
피니 교수는 "인간이 지구 시스템에 극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우리가 그로 인한 엄청난 결과에 직면하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이는 오랫동안 지속돼 온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또 인류세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현장 지질학에 의한 곳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인류세라는 용어가 유명해진 것은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천이 2000년 한 콘퍼런스에서 현재 지질시대를 인류세로 부르자고 제안하면서부터이기 때문이다.
피니 교수는 지구에 대한 인류의 영향을, 정확한 시작 날짜가 있는 공식 시대보다는 현재 진행 중인 지질학적 사건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지구를 변화시킨 인류의 활동이 소수 엘리트에 의한 것이므로 인류세 대신 '자본세'라고 명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워터스 교수도 AWG가 인류세를 공식화할 강력한 사실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새 지질시대를 명명하는 것은 "매우 보수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이 제안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대학교(UC) 산타크루스의 앤드루 매슈스 인류학과 교수는 인류세라는 용어가 이미 자연과학, 사회과학과 인문학에 걸쳐 논쟁을 시작하면서 그 중요성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 시대의 정확한 지질학적 시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전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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