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도 문제 안 써도 문제" 지방의회 의원정책개발비의 맹점
지역 정책개발 연구 위한 예산
4곳 중 1곳 한 푼도 집행 안 해
편성 않거나 턱없이 낮은 곳도
편성해놓고 안 쓰면 제도 불신
집행 후 결과 미공개도 문제
내용·결과 투명하게 공개해야
2020년부터 지방의회 의원들에게 의원정책개발비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 의원정책개발비란 의원연구단체에 정책개발 연구용역을 의뢰할 때 쓰라고 만든 예산이다. 그런데 예산을 편성했지만 한푼도 집행하지 않은 지방의회가 4곳 중 1곳이다. 그렇다고 이 예산을 집행한 곳이 '잘했다'는 건 아니다. 이들 역시 투명성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지방의회 의원정책개발비(이하 의원정책개발비)'라는 걸 들어본 적 있는가. 2019년 7월, 행정안전부가 '2020년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 기준'에 새롭게 신설한 예산 항목이다. 지방의회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건데, 지방의원 1명당 최대 500만원을 지원한다. 2005년부터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정책개발비를 편성하고 있는데, 이를 지방의원에게도 확대 적용한 거다.
지방의회사무국이 편성하는 의원정책개발비는 의원연구단체의 정책개발 연구용역에 한해 사용할 수 있다. 공청회ㆍ세미나ㆍ간담회 등의 비용으로는 사용 불가다. 지방의회의 의원연구단체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지방의회가 정책개발 내용에 따라 매년 새롭게 선정한다.
당시 전문가들은 "전국 지자체 중 지방의원들의 연구 활동을 지원하는 자치법규를 둔 곳은 절반에 불과하다"면서 "전담 보좌관도 없이 자치법규 입법, 정책대안 제시, 행정사무 감사, 예ㆍ결산 심사 등 다양한 의정활동을 수행하는 지방의원들을 위한 매우 의미 있는 제도"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럼 이 제도를 도입한 지 4년차에 접어든 현재, 의원정책개발비는 목적에 맞게 잘 쓰이고 있을까. 통계를 먼저 살펴보자. 지자체 본예산서, 최종예산서, 결산서 등을 토대로 의원정책개발비 현황을 연도별로 살펴봤다.
그랬더니 의원정책개발비의 본예산 편성액은 2020년 129억원에서 2021년 148억원, 2022년 149억원, 2023년 169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같은 기간 1인당 의원정책개발비도 343만원에서 439만원으로 확대됐다.
본예산 대비 집행률도 오르는 추세다. 2020년 44.4%였던 집행률은 2021년 67.9%로 올랐다. 2022년은 결산이 진행 중이어서 최종 수치는 알 수 없다. 다만, 본예산과 최종예산을 비교해보면 최대 집행률은 70.2%에 달할 전망이다. 다만, 전제가 '최대치'여서 이보다 떨어질 가능성은 적지 않다. 본예산 편성액도 늘고 집행률도 오름세이니, 의원정책개발비의 정책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속을 보면 그렇지 않다. 의원정책개발비 예산을 편성했지만 한푼도 집행하지 않은 지방의회는 2020년 107곳, 2021년 62곳, 2022년 61곳(추정치)으로 여전히 숱하다. 수가 줄고 있다는 건 다행이지만, 전국 243개 지자체 중 25.1%(4곳 중 1곳)가 예산을 한푼도 쓰지 않고 있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지방의회사무국이 예산을 아예 편성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2023년 서울 동대문구, 부산 해운대구, 울산 북구, 강원 횡성군, 강원 양구군, 전남 곡성군 등 6곳이다. 이 가운데 울산 북구와 강원 횡성군은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각각 4000만원, 3500만원을 편성했지만, 나머지 4곳의 지방의회사무국은 의원정책개발비를 아직까지 편성하지 않았다.
특히 서울 동대문구와 강원 양구군은 제도가 도입된 이후 단 한차례도 의원정책개발비를 편성하지 않았다. 부산 해운대구를 제외한 5곳은 지방의회 자치법규에 정책연구개발비 지급 규정조차 없었다.
예산 편성도 안 한 지자체 6곳
예산을 편성했다고 하더라도 유명무실한 경우도 있다. 편성액이 형편없이 낮아서다. 일례로 2023년 기준 광주 남구와 전남 신안군의 지방의회사무국이 편성한 의원정책개발비는 각각 400만원과 500만원으로 1000만원이 채 안 됐다. 사실상 정책개발 연구용역에 충분하지 않은 예산을 편성한 거다.
또하나 눈여겨볼 점은 기초의원의 지역 의제 발굴 역량이 광역의회 의원보다 떨어진다는 점이다.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의 1인당 예산 편성액과 예산 집행률을 살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2023년 기준 광역의원의 1인당 의원정책개발비 예산 편성액은 494만원으로, 기초의원의 1인당 예산 편성액(421만원)보다 73만원 더 많았다.
집행률은 2021년 결산 기준, 광역의회가 94.7%, 기초의회는 이보다 36.7%포인트나 낮은 58.0%에 불과했다. 이 말은 광역의원들이 지역에 필요한 정책과제들을 더 많이 발굴해 연구 예산을 편성했고, 이 예산을 더 잘 썼다는 의미다. 기초의원들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혹자는 예산을 편성했어도 안 쓰면 더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예산을 편성해 놓고 안 쓸 거면 애초에 그런 제도를 만들 이유가 없다. 당연히 예산 미집행은 제도의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의원정책개발비는 언급한 것처럼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연구과제를 발굴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는 데 쓰라고 편성하는 예산이다. 관련 예산을 아예 짜지 않거나 편성하고도 집행하지 않는 건 지역민들을 위한 정책을 발굴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뜻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들의 몫으로 남는다. 의원정책개발비 집행을 더욱 활성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편성 후 안 쓰면 제도 불신 확산
물론 의원정책개발비를 책정해서 쓰는 게 만사는 아니다. 투명성을 담보해야 하고, 결과도 명쾌하게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의원정책개발비를 받아놓고 내용과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곳들이 수두룩하다는 건 문제다. 일부에서 전체 지방의원들의 정책개발 연구용역을 통합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 건 이 때문이다.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성현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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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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