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은행, 벤처·스타트업 인수 가능해진다… ‘금산분리’ 완화 속도

김보연 기자 2023. 7. 1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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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생산업 뺀 모든 업종 인수 가능
비금융업 진출 전면 허용 ‘네거티브’ 방식
자회사 지분 출자 한도 15%에서 상향 조정
경영권 확보 가능한 수준까지 확대할 듯
최근 시중은행들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과 알뜰폰 외에 다양한 비금융 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조선비즈DB

금융 당국이 은산분리(은행과 산업자본의 분리) 규제를 대폭 완화해 금융지주사 및 은행이 비금융 혁신 벤처·스타트업을 인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현재 금융지주사와 은행은 비금융사의 지분을 각각 5%와 15%까지만 보유할 수 있는데, 이 규제를 대폭 완화해 은행의 비금융사 인수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에 플랫폼 인수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영역을 확대해 온 해외 금융사와 대조적으로 국내 은행은 은산분리에 발목이 잡혀 있자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금융 당국이 마련한 방안이다. 은산분리 일부 완화를 통해 상품 제조·생산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금융사의 자회사 출자 가능 업종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방식의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12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금융지주사와 은행 등이 비금융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은산분리 등 금융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에 대한 막바지 논의를 진행 중이다. ‘안 되는 것 빼고 다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금융 당국은 대기업·중견기업, 일반 제조업 등 은산분리의 대원칙을 훼손하거나 금융사와 시너지를 내기 힘든 업종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 투자를 허용할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사가 인수할 수 있는 지분율 한도는 업종이나 투자 기업에 따라 다르지만,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풀어줄 전망이다. 금융권에선 현행법상 지주사는 비상장 자회사의 지분 50% 이상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이 수준까지 지분 투자 규제를 풀어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금융 산업과 중소기업, 수출기업, 취약 소비자들에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업종을 포괄적으로 허용해 이를 금융사가 발전시켜 나가도록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라며 “하반기 중 금융지주법, 은행법, 공정거래법 관련해서 개정안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금융사가 부수 업무로 영위할 수 있는 사업이나 자회사 출자가 가능한 업종이 포지티브 방식으로 법령에 나열돼 있다. 이 때문에 신한은행의 배달애플리케이션(앱) 사업 ‘땡겨요’와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 ‘리브엠’은 금융 당국의 규제 특례(혁신금융 서비스) 지정을 통해 예외적으로만 허용되고 있다. 그조차 최대 사업 기간은 5년 6개월로 제한된다.

금융 당국은 위험 총량 한도를 설정해 자기자본 대비 전체 비금융 자회사에 대한 출자 한도를 제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예컨대 위험 총량 한도를 1%로 규정한다면 자본금 30조원의 금융사는 비금융 자회사에 3000억원까지 출자할 수 있다. 금융지주사와 은행이 막대한 자본력으로 문어발식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를 고려한 장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작년 7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앞서 금융사들은 각종 금융규제 탓에 불리한 환경에서 빅테크와 경쟁하고 있다며 규제 완화를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달라고 지속적으로 건의해 왔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포지티브 리스트를 확대하는 것보다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 출자 가능한 업종을 큰 폭으로 늘리고, 비금융사 출자 한도를 50% 이상으로 끌어올려 지배주주로 신사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제도가 완화돼야 한다”고 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7월 취임 당시 “금융사의 혁신을 지연시키는 규제가 무엇인지, 해외 및 빅테크 등과 불합리한 규제 차이는 없는지 살피겠다”며 “금산분리, 전업주의 등 과거의 전통적 틀에 얽매여 구애받지 않고 과감히 개선하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도 “금융과 비금융 간 융합을 통해 새롭고 혁신적 서비스가 출시될 수 있도록 금산분리 규제를 정비해 3분기 중 발표하겠다”고 했다.

비금융사에 대한 투자 범위가 확대될 경우 국내 금융사가 가장 먼저 검토할 수 있는 사업으로 정보통신(IT) 및 플랫폼 서비스 등이 꼽힌다. 또 전자상거래 분야와 함께 여행 상품, 항공권, 식당 예약 플랫폼과 협력해 연계 금융 상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고객 부동산에 대한 임대 관리 서비스를 금융사가 제공하는 방식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사업 모델로 거론된다.

금융 당국은 해외 사례를 참고해 다양한 사업 모델을 검토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해외 금융사가 하는 만큼 (국내 금융사도 진출할 수 있게) 허용하겠다는 것이 논의의 기본 원칙이다”라고 했다. 해외 금융사들은 다양한 생활 밀착형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인도 최대 은행인 인디아스테이트은행(SBI)은 쇼핑 플랫폼 YONO(요노)를 통해 금융 상품뿐 아니라 여행 및 레저, 교육, 패션 등의 분야의 전자상거래 업체 100여곳의 상품을 판매한다.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은 대표 앱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부동산, 주택 리모델링, 교육, 여행 및 레저, 자동차, 헬스케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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