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은 ‘후식형’, 손열음은 ‘참여형’…앙코르 10인10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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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피아니스트 임윤찬(19)이 스위스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자 미하엘 잔데를링)와 협연을 마치고 앙코르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작품 ‘레퀴엠(진혼곡)’ 가운데 ‘라크리모사’를 피아노로 편곡한 곡이었다. 직전에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에 이어 모차르트 곡을 연거푸 연주한 것. 두 곡 모두 라단조 조성에 진한 슬픔이 배어 있다. ‘라크리모사’는 ‘눈물겨운’이란 뜻의 라틴어다. 본 공연의 여운과 뉘앙스를 앙코르에서 이어가려는 ‘본선 연장형’ 또는 ‘여운 증폭형’ 앙코르 전략이다.
임윤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앙코르는 메인 요리 뒤에 나오는 디저트와 성격이 흡사하다. 기름진 요리를 먹었으면 입에 착 달라붙는 달콤쌉싸름한 후식이 제격이다. 두 곡의 모차르트에 이어 임윤찬이 선사한 두 번째 앙코르는 드보르자크의 ‘유머레스크’. 숙연한 분위기의 앞선 두 곡과 전혀 상반된 성격에 누구나 쉽게 흥얼거리는 곡이 흘러나오자 청중석에서도 살짝 웃음이 번졌다. 그야말로 ‘후식형 앙코르’였던 셈. 임윤찬의 세심한 앙코르 선곡이 돋보인 연주회였다.
이튿날인 29일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4)이 같은 공연장 무대에 올랐다. 임윤찬에 앞서 2017년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연주자다. 서울시향(지휘자 미하일 플레트네프)과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끝마친 그가 청중을 향해 앙코르곡을 설명했다. 오랜 지인이 지난해 작고했다는 사실을 그날 공연에 참석한 부인으로부터 전해 듣고 고인이 좋아했던 브람스의 ‘인터메조’를 즉석에서 앙코르로 골랐다고 했다. ‘추모형’ 앙코르다.
전쟁이나 재난재해, 대형 사건·사고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추모형 앙코르’를 생각보다 자주 접하게 된다. 지난달 24일 케이비에스(KBS) 교향악단과 협연한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는 우크라이나 희생자를 기리는 뜻에서 조지아 작곡가 이고르 로보다의 ‘레퀴엠’(진혼곡)을 앙코르로 들려줬다. 지난해 11월 빈 필하모니를 이끌고 내한한 지휘자 프란츠 벨저뫼스트는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는 의미로 바흐의 ‘에어’(G 선상의 아리아)를 본 공연에 앞서 먼저 연주했다. 청중에게 박수도 삼가달라고 요청했고, 긴 묵념까지 했다. 공연 뒤에 연주한 앙코르는 빈의 왈츠였다. 처참한 참사 와중에 공연하면서 춤곡을 연주하는 게 민망했던지 “빈의 왈츠는 그저 가벼운 음악이 아니라 정신과 문화를 담았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지난 4일엔 피아니스트 조성진(29)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리사이틀을 열었다. 대전, 부천, 울산, 강릉으로 이어지는 전국 투어의 첫 공연이었다. 헨델과 슈만, 브람스 등 본 공연을 마친 그는 앙코르로 라벨의 ‘거울’ 중 2곡을 들려줬다. 이어지는 다른 지역 공연의 본 프로그램에 들어있는 곡을 살짝 소개한 ‘예고편’ 앙코르였다. 프란츠 벨저뫼스트와 빈 필하모니가 지난해 내한 공연에서 연주한 앙코르는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차이설른 왈츠’였다. 그 곡을 올해 빈 필하모니의 신년연주회에서도 공연했으니, ‘예고편 앙코르’였던 셈이다.
11일 저녁 롯데콘서트홀에서 국내보다 독일에서 주목받는 피아니스트 윤홍천(41)이 국립심포니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했다. 그의 앙코르 선곡은 쇼팽의 ‘왈츠 7번’. 쇼팽에 이어 쇼팽을 연주한 ‘본선 연장형’이다. 이날 지휘자 토마시 네토필은 스메타나의 오페라 ‘팔려간 신부’ 서곡으로 시작해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6번’에 이어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무곡 8번’을 앙코르로 선사했다. 지휘자 네토필과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모두 체코 출신이니, ‘자국 문화 전파형 앙코르’라 하겠다.
이와 비슷한 성격의 ‘애국심 고취형’도 있다. 내한 연주자나 연주단체들이 한국의 민요나 가곡을 앙코르로 선택하는 경우다.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는 2017년에 이어 지난 5월 공연에서도 한국어 발음을 표기한 악보를 보며 서툰 한국어로 ‘동심초’를 불렀다. ‘아리랑’과 ‘그리운 금강산’은 내한 연주단체들이 자주 선곡하는 앙코르다. 한국 청중에 대한 ‘팬 서비스’ 성격도 담겨 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37)는 청중의 신청곡을 연주하는 ‘청중 참여형’ 앙코르를 가끔 선보인다. 앙코르를 듬뿍 연주해 ‘앙코르 퀸’으로도 불리는 그는 자신의 에세이집에서 앙코르를 ‘진짜 음악회’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 5월 서울예술의전당 독주회에서 그는 “스승께서 앙코르는 4분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지만 오늘은 넘겨야겠다”며 모차르트의 가단조 환상곡(k.475)을 연주했다. 본 프로그램에 있던 모차르트의 가단조 소나타(k.457)와 짝을 이루는 곡이니, 이 역시 ‘여운 증폭형’에 해당했다.
지난 5월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한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 올리비에 라트리도 청중의 신청을 받아 즉석에서 앙코르를 연주했다. 신청곡으로 뽑은 곡은 블랙핑크 지수의 솔로 곡 ‘꽃’과 ‘어머님 은혜’. 대형 파이프오르간을 통해 이 곡들이 흘러나오는 순간 터져 나오는 청중의 환호를 막을 수 없었다. 2017년 내한 때도 그는 즉석에서 뽑은 곡은 ‘애국가’와 ‘카카오톡 알림음’을 연주했다.
‘물량 공세형’ 앙코르도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첫 독주회를 연 중국 피아니스트 유자왕(36)은 무려 12곡의 앙코르를 선사했다. 1부, 2부에 이은 3부 공연을 방불케 했다. 피아니스트 키신도 내한 공연 당시 10곡을 연주한 적이 있다. 조성진도 47분에 이르는 쇼팽의 발라드 4곡 전곡을 앙코르로 연주한 적이 있다. 대체로 홀로 무대 위에 오르는 독주회가 ‘앙코르 인심’이 후한 편이다.
이와 반대로 앙코르가 없는 공연도 드물지 않다. 연주한 곡의 여운과 잔상을 그대로 살리려는 취지다. 무겁고 장중한 ‘레퀴엠(진혼곡)이나 말러의 교향곡 6번 ‘비극적’ 등의 곡을 연주한 뒤엔 앙코르를 생략하기도 한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나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 등 ‘장엄한 환희’로 마무리되는 곡을 연주한 뒤에도 대체로 앙코르를 하지 않는다. 앙코르가 무의미한 ‘사족’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연주 시간이 1시간을 넘나드는 말러나 브루크너의 대형 교향곡을 연주한 뒤에도 대체로 앙코르를 생략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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