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2024 美 대선… 암호화폐 놓고도 맞섰다
● 케네디 주니어, 비트코인으로 바이든과 각 세워
● 백악관, ‘비트코인 채굴세’ 부과 방안 발표
● 드산티스, 암호화폐 옹호하며 트럼프 공격
음모론 설파하는 케네디 주니어
2024 미국 대선의 본격적인 막이 오른 건 4월 25일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연임 도전 깜짝(?) 발표를 한 날이다. 1942년 11월생으로 80세 고령인 바이든이 이번 임기만 마치고 물러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던 상황이다. 오죽하면 출마 선언 직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바이든이 다시 당선되면 추가 4년 임기를 끝까지 마칠 것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당시 백악관 대변인은 "그건 그가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가 논란이 일자 "당선되면 임기를 완료할 것"이라고 추후에 정정하기도 했다. 출마 선언을 하지 않을 경우 레임덕이 급속도로 심해질 수밖에 없어 어느 시점에 중도 포기할 심산으로 '위장 출마'를 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남아 있다. 그렇지만 어찌 됐든 현직 대통령이 연임 도전을 선언한 만큼 민주당의 1순위 대선 후보는 바이든이다.그런 케네디 주니어가 당내에서 현직 대통령 바이든과 각을 세우는 사안 중 하나가 CBDC다. CBDC에 대한 반대는 비트코인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다. 그는 5월 4일 트위터에 CBDC에 반대하는 이유를 담은 장문의 글을 올렸다. 러시아 같은 독재국가에서만 정적(政敵) 탄압을 위해 은행계좌를 동결하는 금융 검열을 하는 게 아니라 미국에서도 2010년 페이팔, 비자, 마스터카드가 국무부 요청에 따라 위키리크스에 대한 송금을 중단하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 캐나다에서 일어난 사건도 거론했다. 정부의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정책이 강압적이라고 비판하는 캐나다 트럭 운전사들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캐나다 정부가 관련된 사람들의 은행계좌를 동결한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 기업 고펀드미(GoFundMe)는 미국인들이 캐나다 시위대를 지원하기 위해 모은 돈의 송금을 막았다. 케네디 주니어는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정부가 검열 통제할 수 있는 디지털화폐) CBDC에 반대한다. CBDC는 돈줄을 끊어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정부의 파워를 엄청나게 증폭시킬 것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비트코인을 지지한다. 사람들이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거래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세계적으로 대중 저항운동의 생명줄이 돼왔다. 특히 (독재정권의 인권탄압이 극심한) 버마 같은 나라에서 말이다."
바이든은 親CBDC, 反비트코인?
케네디 주니어는 5월 19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2023 비트코인 콘퍼런스에 연사로 등장했다. 그는 CBDC를 반대하고 비트코인을 지지한다는 기존 언급에서 한발 더 나갔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자산을 검열 통제를 받지 않는 개인지갑에 보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바이든 정부가 비트코인 채굴에 최대 전기요금의 30%를 징벌적 성격 세금으로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데 반대하며 전력 사용에 차별을 두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암호화폐에 적대적인 정부 정책을 뒤집어 미국이 비트코인과 다른 암호화폐의 글로벌 허브가 되도록 만들겠다"는 말도 덧붙였다.바이든 정부의 CBDC와 비트코인 정책을 들여다보면 케네디 주니어가 왜 대립각을 세우는지 이해할 수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공식 웹사이트뿐 아니라 제롬 파월 의장의 연설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의회에서 법을 만들고 정부가 나서지 않는 한 연준이 자체적으로 CBDC를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며 CBDC를 발행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백악관은 시간이 지날수록 CBDC 추진 의사를 강하게 밝히고 있다. 3월에 백악관이 의회에 제출한 대통령경제보고서(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는 바이든 정부의 CBDC 정책 방향을 명료하게 보여줬다. 보고서는 "암호화폐는 투기 수단이고 경제적 혜택도 없으며, 기존 화폐를 대체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현행법으로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면서 연준이 통제하는 CBDC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백악관은 같은 맥락에서 비트코인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비트코인 채굴에 전력이 낭비된다는 주장을 강하게 펼쳤다. "암호화폐 채굴에 전력을 사용하는 건, 사용 전력이 재생에너지에서 나왔든 어디서 나왔든 그 자체가 낭비이기 때문에 환경에 해롭다"고 주장하는 알렉스 드브리스(Alex de Vries)의 주장을 인용할 정도였다.
드브리스는 암호화폐 세계에서 논란이 큰 인물이다. 그는 로테르담 에라스무스대학(Erasmus Universiteit Rotterdam)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고 보험회사 ING 네덜란드 법인에서 시장 분석 업무를 하던 2014년, 취미(hobby project) 삼아 "비트코인 채굴에 전력을 사용하는 건 낭비이기 때문에 환경을 해친다"고 주장하는 블로그 디지코노미스트(Digiconomist)를 만들었다.(그는 스스로 블로그에서 "취미 삼아 만들었다"고 밝혔다.) 시간이 갈수록 비트코인 채굴에 친환경 재생에너지(주로 버려야 하는 잉여 전력)를 사용하고 있는 데 대해선 "어찌 됐든 쓸모없는 일에 전력을 사용하는 건 낭비이기 때문에 환경에 해롭다"는 식의 주장을 해왔다(유튜브 채널 인텔리전스 스퀘어드(Intelligence Squared)에 올라와 있는 린 올든(Lyn Alden)과의 논쟁에는 이런 부분이 잘 드러나 있다.) 드브리스는 현재 암스테르담자유대에서 암호자산의 지속가능성 연구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네덜란드중앙은행에서 CBDC의 효용성과 금융범죄 분석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공화당 유력 주자는 CBDC 반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이어 각종 대선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후보 2위를 달리는 이는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다. 압도적 1위를 달려온 트럼프에 맞설 공화당의 거의 유일한 경쟁자다. 그는 CBDC가 나올 경우 플로리다에서는 쓰지 못하게 금지하는 법안을 제안해 공화당이 다수인 주의회를 움직여 통과시켰다. 연준이 발행하는 미국 CBDC뿐만 아니라 외국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CBDC도 사용하지 못하게 금지하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그는 5월 12일 주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최종 서명한 뒤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밝혔다."정치적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러분이 힘들게 번 돈을 사용하지 못하게 통제할 권한을 바이든 정부와 대형 신용카드 회사들이 갖게 해서는 안 된다. 바이든이 추진하는 CBDC는 개인 금융에 대한 정부 통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용납하지 않겠다."
드산티스는 CBDC에 반대하는 동시에 암호화폐에 친화적인 정치인으로 꼽힌다. 그는 2021년 5월에는 주법(州法)에 가상화폐(virtual currency) 정의를 포함하고 개인이 면허 없이 암호화폐를 거래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내용의 법안에 서명했다.
드산티스의 CBDC 금지법은 공개적으로 바이든을 겨냥했지만 한편 트럼프를 공격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트럼프는 여러 차례 미국 달러를 신봉한다고 밝혀왔고,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언급도 해왔다. 그는 재임 기간이던 2019년 7월 11일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나는 비트코인과 다른 암호화폐의 팬(fan)이 아니다. 그것들은 돈이 아니며, 가치가 매우 불안정하고 아무런 기반이 없다. 규제받지 않는 암호 자산은 마약 거래를 포함해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할 수 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2021년 10월 야후파이낸스 애덤 샤피로(Adam Shapiro)와 인터뷰하면서 암호화폐 인기가 올라가는 상황에 대해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은 달러가 있다는 점이다. 나는 달러를 아주 좋아한다(I'm a big fan of the dollar). 나는 다른 화폐가 등장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달러를 해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가 암호화폐와 관련한 그동안의 입장을 유연하게 바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는 대중이 원하면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암호화폐를 비판해 온 트럼프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사진과 이미지를 담은 대체불가능토큰(NFT)을 발행해 판매했다. 4월 15일 코인데스크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NFT 판매로 최대 1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암호화폐에 대한 입장을 새롭게 밝히진 않았다. '변신의 귀재'답게 코인 친화적인 정책이 대중에게 먹힌다는 판단이 들면 눈치 보지 않고 말을 살짝 바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선거, 특히 대선에 나선 후보자의 공약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 표를 얻고,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말도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 대선후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명확한 건 있다. 암호화폐 위상이 높아지면서 역대 최초로 코인이 대선 이슈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그 중심엔 금융 편의성과 거래의 투명성이 중요한지, 아니면 금융거래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포함하는 개인의 금융 주권이 더 중요한지를 둘러싼 논쟁이 있다. CBDC와 비트코인이 2024 미국 대선판에 불을 붙이고 있다.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前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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