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비인간적 존재’에 목소리 부여… 장애 가진 내겐 완벽한 장르”
홀로그램 교사·낡은 로봇 등
조금은 이상하고 불편하지만
가장 보통의 존재 드러내려해
글 곳곳에 희망의 메시지 숨겨
힘들었던 나 자신에 대한 위로
최의택 작가에겐 근육병(선천성 근이영양증)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휠체어 생활을 해온 그는 화상 키보드를 이용해 글을 쓴다. 마우스로 한 자 한 자 눌러써야 하기에 200자를 치는 데 5분이 걸린다. 그는 자신의 장애를 글로 풀어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존재가 지닌 약점을 다루기에 완벽한 장르”인 과학소설(SF)의 힘을 빌려서 말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유령에 비유했던 전작 ‘슈뢰딩거의 아이들’(아작)로 ‘문윤성 SF 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던 그의 신간 두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첫 단편소설집 ‘비인간’(읻다·왼쪽 사진)과 두 번째 장편 ‘0과 1의 계절’(요다·오른쪽)이 그것. 두 권의 책으로 최 작가는 자신이 ‘비인간’임을 자처한다.
소설집 ‘비인간’에는 여러 ‘비인간’들이 등장한다. 폐기를 앞둔 홀로그램 선생님, ‘나무’라는 이름의 유사 인격 컴퓨터 프로그램, 배터리가 방전된 낡은 로봇과 로봇을 고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노인 등. 조금은 이상해 보이고 불편하게 다가오는 존재들이다.
제목은 지난달 열린 ‘2023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였던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에서 따왔다. 최근 서면을 통해 만난 작가는 소설집 제목을 ‘비인간’으로 하자는 출판사 편집자의 제안에 가장 먼저 우려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대놓고 ‘비인간’임을 천명하는 게 자칫 소설 속 소수자들, 특히 장애인과 결부돼 그들을 비인간으로 매도하는 건 아닐까 우려됐어요. 하지만 그저 출퇴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사람들에게 테러리스트 운운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한국에서 더더욱 ‘비인간’임을 자처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런 마음으로 소설 속 비인간적 존재들을 내놓았습니다.”
작가는 지난달 난생처음으로 도서전 현장에도 다녀왔다. “폐인처럼 게임만 하는 건 싫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그가 세상을 향해 내디딘 또 한 걸음이다. 하지만 ‘비인간’을 호기롭게 내세운 행사였음에도 전동휠체어를 탄 채 행사장 곳곳을 누비기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했다. “부스의 상당 부분이 눈높이에 맞지 않았고 장애인용 화장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접근성은 좋았지만 사소한 점들로 인해 누군가는 배제된 거죠. 세세한 부분이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그는 장애를 ‘경험’이라고 이야기했다. ‘장애가 있어서 장애인’이 아니고 ‘사회적으로 장애를 겪어서 장애 경험자’가 된다는 것.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를 타게 된 사람, 태어날 때부터 다른 감각 체계를 구축해온 사람 모두 그냥 ‘장애인’으로 묶입니다. 그들은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지만 ‘장애인’으로서의 경험만큼은 똑같아요. 마치 해외 여행을 가서 만난 한국 사람끼리 차별 경험에 대해서만큼은 공감할 수 있듯이요.” 문턱이 높은 건물, 휠체어는 들어갈 수 없도록 좁게 만들어진 진입로 등은 장애인으로서의 ‘경험’을 하게 한다.
소설집 ‘비인간’에 수록된 단편 ‘시간역행자들’엔 장애를 고쳐주겠다는 외계인이 등장하고 이를 내심 반가워하는 정부가 나온다. “전 경험으로서의 장애를 고쳐주면 좋겠습니다. 가령 뇌파로 제어하는 컴퓨터가 개발돼 제 글쓰기 속도를 남들만큼만 올려준다면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겠죠. 하지만 단순히 절 외골격 슈트에 집어넣고 걷게 해준다면 신기하기는 하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리고 평생을 특정 감각이 없이 살아온 사람한테 ‘너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니까 우리가 고쳐줄게’ 하고 그의 감각 체계에 칼을 댄다? 전형적인 호러 영화의 시놉시스 같지 않나요?”
최 작가가 장애인을 비롯한 많은 ‘비인간’들의 이야기를 담는 틀은 SF다. 그는 “SF는 이야기 속 사회 체계를 완전히 작가가 제어할 수 있는 장르”라면서 “우리네 과학을 공유하며 그 기반으로 사회를 재설계해 봄으로써 현재 우리 사회를 비판적일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게 SF의 특장점”이라고 말했다. 정보라 작가의 글을 접한 뒤 본격적으로 SF를 쓰기 시작했다는 그는 “특히 한국 SF가 원래부터 비주류와 비인간적 존재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는 일에 앞장서왔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배운 제가 유사한 접근을 취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 같다”고 덧붙였다.
새 장편 ‘0과 1의 계절’은 작가가 마음먹고 장애를 다룬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은 핵전쟁이 일어난 뒤 어둡고 긴 겨울 상태가 계속되는 미래. 흰 눈과 혹한만이 존재하는 지구에서 다리가 성치 않은 ‘봄’과 눈이 보이지 않는 ‘현’이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암울한 미래 속, 작가는 곳곳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숨겨놓았다. 가령, ‘눈은 녹고 있었다’와 같은 문장으로. “글을 쓸 때 ‘이런 메시지를 던져야지’라고 의도하고 쓰진 않아요. 그럼에도 이 소설을 쓸 당시엔 정신적으로 힘들 때여서 스스로를 향해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봄은 올 거야’라고요.”
이 소설의 시작은 “기술 혁명은 조만간 수십억 인간을 고용 시장에서 몰아내고 막대한 규모의 새로운 무용 계급(useless class)을 만들어낼지 모른다”는 유발 하라리의 말이었다. 문자 그대로 무용한, 착취의 대상조차 되지 못할 무용한 이들이 그저 사람답게 살 수 있기를 바라며 작가는 이 소설의 가제를 ‘가장 보통의 존재’로 지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스스로를 무용한 존재라 느낄 모든 이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를 청했다. “참 어려운 일이네요. 음… 최소한 무용한 위로나 응원 같은 걸 하지는 않을래요. 그냥 함께 있겠습니다. 가만히요.”
작가와의 인터뷰가 끝나고, ‘비인간’의 사전적 정의를 다시 한 번 찾아봤다. ‘사람답지 아니한 사람’이란 첫 번째 뜻 뒤엔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이라는 두 번째 뜻이 있었다. 최 작가가 그려내는 모든 ‘비인간’은 사람답지 아니하다. 그러나 동시에 아름답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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