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울진 봉평리 신라비' 1행 끝 글자는…"뜻 없는 연습 글자"
"위치 공교롭지만, 내용·글자 수 맞지 않아"…향후 관련 연구 주목
(경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신라 법흥왕(재위 514∼540)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국보 '울진 봉평리 신라비'는 고대사를 밝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자연 돌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쓴 비석에는 약 400자가 빼곡하다.
그 속에는 당시 울진 일대가 신라의 영토로 들어갔다는 내용부터 6부(六部) 성립, 법흥왕의 율령 반포 등 역사 기록을 입증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제1행의 끝 글자는 정확한 판독이 어려운 글자로 꼽힌다.
글자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훼손된 흔적이라는 주장부터 한자 '오'(五) 자로 봐야 한다는 견해까지 의견이 다양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고고학을 전공한 박홍국 위덕대 연구교수는 "제1행 끝 글자는 한자 '오'('二'와 '㐅'를 합친 글자로 '五'와 뜻과 음이 같은 것으로 봄) 자로, 연습을 위해 새긴 글자"라고 12일 밝혔다.
박 교수는 이처럼 연습용으로 새긴 글자를 '연습 각자'(練習 刻字)라고 명명했다.
그는 "서예가들이 글을 쓰기 전 먹이 얼마나 번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점을 찍어 보는 것처럼 당시 1∼2글자를 연습으로 새겨보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현재 남아있는 신라 비석 9기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경주 남산 신성비(新城碑) 제1비를 보면 2·3행의 끝 글자 아랫부분, 4행 끝 글자의 맨 아래에 한자 '신'(辛) 자로 보이는 글자가 각각 새겨져 있다.
박 교수는 "비석을 성벽 안쪽에 세웠을 때 땅에 묻혔던 부분에 있는 글자"라며 "위쪽 비문 글자보다 1.3배 정도 크고, 획 내부도 깔끔하게 정리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신'자가 비문에 처음 나오는 '신해년'(辛亥年)의 첫 글자인 점에 주목했다.
남산 신성비는 신해년 즉, 591년에 성을 쌓았으며 축조 후 3년 이내에 성이 무너진다면 공사 관계자들이 법에 따라 벌을 받을 것을 서약하는 내용이다.
박 교수는 5천여 자가 새겨진 국보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大朗慧和尙塔碑)'에도 "왼쪽 상단 여백에 '거벌'(巨筏), '헌'(憲) 등 5개의 글자가 연습 목적으로 새겨졌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일부 비석은 눈에 보이는 비문 면에 연습용 글자를 새기기도 했다.
그는 경주에서 발견된 명활산성 작성비(作城碑)의 경우, 8행 아래에 한자 '야'(也) 자로 보이는 글자가 있는데, 간격을 두고 새긴 점을 볼 때 연습 각자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여러 사례를 볼 때 봉평리 신라비 제1행의 '오'자는 "가장 찾아내기 어려운 경우"라고 강조했다.
그는 "비문 내용 가운데 '가르침'(敎) 관련 부분을 보면 인명 뒤에 '매금왕', '갈문왕', '관등' 등이 따라 나온다. 제1행의 끝에 숫자 '오'가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문에 새겨진 글자 총수도 이런 주장의 근거로 들었다.
박 교수는 "제10행 41번째 부분은 글자를 뜻하는 '자'(字) 자로, 비문 글자 수를 적시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연습 각자를 제외하면 그 합이 398자로 (비문과) 맞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자는 새겨진 위치가 공교로웠을 뿐 결코 비문이 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연습으로 새긴 글자를 없애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글자를 새긴 뒤에는 획 안을 붉은 색, 검은색 등으로 칠했다. 칠을 하지 않은 글자는 '없는 글자'가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앞으로 비석에서 연습용 글자를 확인하는 사례가 더 나오리라 봤다.
그는 "연습 각자를 중점적으로 다룬 첫 연구 논문"이라며 "향후 새로운 비석이 발견됐을 때 비문으로 오인해 해석에 영향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연구 의의를 밝혔다.
박 교수의 연구 결과는 한국목간학회가 발간하는 '목간과 문자' 30호에 실릴 예정이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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