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은 필수, 믿음은 선택”…‘주작’과 뒤통수로 가득 찬 SNS

김은형 2023. 7. 1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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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좋·댓·구’와 드라마 ‘셀러브리티’
영화 <좋·댓·구>. 키다리스튜디오 제공

현대의 성공신화는 에스엔에스(SNS)에서 만들어진다. 100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는 여론을 좌지우지하고 100만 팔로워를 지닌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는 수백억원 가치의 기업가로 변신한다. 부와 인기로 직결되는 구독자·팔로워 수를 늘리기 위해 진솔하게 보이는 이들의 모습 뒤에서는 매일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진다. ‘떡상’하기 위해 경쟁자를 ‘저격’하거나 ‘까판’(인스타그램에서 특정인플루언서를 공격하는 계정)이 벌어지며 소문처럼 떠도는 ‘주작’(조작) 논란은 하루아침에 성공신화를 모래성처럼 무너뜨리기도 한다.

12일 개봉하는 영화 <좋·댓·구>와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오리지널 시리즈 <셀러브리티>는 현대인들의 또 다른 자아가 사는 세계인 에스엔에스 생태계를 신랄하게 보여준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의 인기 콘텐츠처럼 자극적인 맛이 강한 두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소셜미디어 판의 거대한 ‘주작질’에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함이 느껴진다.

영화 <좋·댓·구>. 키다리스튜디오 제공

‘좋아요’와 ‘댓글’, ‘구독’ 등 유튜버들의 인사말을 줄인 <좋·댓·구>는 영화 <올드 보이>의 오대수 아역을 맡았던 배우 오태경이 그 자신을 연기한다. 이제는 더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배우가 된 오태경은 유튜버로 활동하지만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영화 <올드 보이>의 ‘오대수’를 흉내 내며 구독자의 요구를 들어주는 새 콘셉트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던 그에게 한 구독자가 500만원의 후원금을 쏜다. 그리고 광화문 한복판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는 한 남자의 사연을 밝혀달라고 한다. 단순하게 보이던 일이 길어지고 피켓남의 가족과 지인이 등장하면서 유튜브 구독자는 순식간에 50만을 넘어 100만을 향해 달려가는데 갑자기 피켓남의 사연이 ‘주작’ 논란에 휘말리며 오태경은 ‘공공의 적’으로 비난받게 된다.

<좋·댓·구>는 영화 <서치>처럼 유튜브 화면을 통해 등장인물의 일거수일투족을 엿보는 듯한 스크린라이프형식으로 구성됐다. 오태경이 피켓남의 억울한 사연을 찾아 전했을 때 폭주하는 공감 댓글들, 숟가락 얹기 위해 앞다퉈 피켓남에 달려드는 경쟁 유튜버들, 유튜브 소동을 검증 없이 기사로 쏟아내는 언론들, 그리고 ‘주작’이 드러나며 증오의 표현장으로 바뀌고 마침내 폭파되는 계정 등 익숙하게 봐온 유튜브 생태계의 민낯이 숨 가쁘게 전개된다. 영화는 피켓남을 중심에 두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가 관객 모두가 당했다고 생각할만한 <유주얼 서스펙트>급 막판 반전까지 마련해 놓았다. 장르적 재미가 탄탄하기도 하지만 마지막 반전은 취향과 선택이라고 흔히 생각하는 소셜미디어 라이프가 사실은 얼마나 일그러진 삶의 반영인지 날카롭게 보여준다.

드라마 <셀러브리티>.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셀러브리티>는 “의심은 필수고 믿음은 선택”인 인스타그램 세상의 백일몽 같은 성공과 추락을 다룬다. 드라마는 한때 100만 단위 팔로어를 거느리며 현대판 신데렐라로 부상했다가 한순간 몰락한 서아리(박규영)의 ‘라방’(라이브 방송)으로 시작된다. 유명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이 하는 ‘라방’은 자신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방식 중 하나다. 화장품 방문판매원을 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던 서아리는 우연히 유명 인플루언서로 살아가는 고등학교 친구 오민혜(전효성)을 만나면서 별천지와 같은 인스타그램 세상에 발을 들여놓는다.

서아리의 시선을 통해 폭로되는 인플루언서들의 세상은 화려한 겉모습에 가려진 진흙탕의 투전판이고, 나른한 즐거움으로 포장된 치열하고 비정한 비즈니스의 세계다. 이들을 ‘셀럽’으로 떠받들며 돈을 벌게 해주는 ‘인친’(인스타그램 친구)은 ‘시녀’와 종이 한장 차이다.

<좋·댓·구>와 <셀러브리티>에는 각각 치트키 역할을 하는 익명의 구독자·팔로워가 등장한다. 주인공들의 성공에 도움을 주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를 치는 이들의 존재는 소셜미디어 세상에 빛과 그늘을 동시에 드리우는 익명성에 대한 씁쓸한 풍자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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